갑목은 십간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우두머리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굽힐 줄 모른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갑목의 성향이 실제 통변에서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니까 갑목의 정체성과 갑목 사주의 통변 사이에는 어느 정도 괴리감이 있다. 어떤 일간이 되었든 막상 통변에 들어가면 다른 일간의 통변과 비슷비슷해진다. 갑 일간 사주라면 갑 일간 만의 정체성을 잘 살리면서 통변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실제 사주 풀이에서 오직 갑 일간이기에 적용되는 특수한 통변성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다른 일간과 차별화되는 갑목의 성향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일간별 특징을 잘 공부할 수 있는 책은 난강망인데, 이 책에서 甲 일간이 계속해서 丁으로 단련된 庚을 맞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甲이라는 천간이 굽힐 줄 모르는 옹고집스럽기만 한 천간인 것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굽힐 때는 굽힐 줄 아는 것이 甲의 성향인 셈이다.

난강망은 좋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난강망에 경도되어 일간별 특수성을 부각시키는 해석에 대해서도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벽갑인정은 중요한 개념이지만 갑목만 보면 벽갑인정부터 논하려고 하는 자세는 이미 관법에 사주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대운을 지나치게 계절적으로 해석하는 자세도 그러하다. 난강망의 해석틀을 통해 더 잘 보이는 사주도 있는 것이지, 고수 흉내를 내려는 것 이외에 난강망이 만능 키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보편적인 명리의 정서에 호소할만한 목 일간 만의 차별적인 특성이란 건 어떤 것일까? 나는 목 일간이 가진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 토와의 관계를 꼽는다. 보통 일간은 지지의 인성이나 비겁에 두 군데 이상 통근하면 뿌리가 튼튼하다고 한다. 그런데 목 일간은 그렇지가 않다. 목 일간은 지지에 토가 있어야 뿌리가 튼튼하다고 본다.

종격이나 화격을 제외하면 목 일간이 단순히 수목이 튼튼한 것으로는 어딘가 공허하다. 목이라는 오행은 상승을 상징하는데, 상승하려면 어떤 명확한 받침이나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박차고 나갈 지면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풍상을 견디는 힘도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토가 있어야 가능하다. 토가 없으면 마음의 중심을 세우지 못하여 멀리 나아갈 수가 없고, 마음의 안정을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비전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목 일간에게 토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좋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첩첩산중의 고독한 나무로 토에 묻히는 양상이니 이를 매목埋木이라 한다. 재다신약의 구조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가 아닌 이상 목에게 토는 필수다. 아부태산 선생은 일간의 신왕함에 대하여 고난을 견디는 힘이라고 하였다. 목 일간이 토가 얕으면 풍상 앞에 픽하고 쓰러지거나 폭우가 오면 토사와 함께 쓸려 강으로 떠내려가는 나무의 형상이 되기 쉽다. 이런 나무에 대하여 고난을 견디는 힘이 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 일간은 토가 튼튼해야 고난을 견디는 힘이 강하다. 목 일간에게 토는 극하여 굴복시켜야 하는 것으로 재성이다. 재성은 일간의 힘을 분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간의 힘을 분산하는 재성이 있어야 일간이 튼튼해진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정복이란 행위를 통하여야만 자신의 존재성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재성은 육친으로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자식이 부친이 세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이야기의 반복이다. 이것은 다른 오행과 차별화되는 목 일간 만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변적인 특징이 역설적으로 자존심 강한 목 일간의 성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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