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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집트를 지배한 동양인 노예왕조
이름하여 맘루크 술탄국통일 이슬람제국인 압바스 왕조 때부터 점점튀르크인 노예들을 훈련시켜서 아랍인 대신에 군사력을 맡기기 시작함. 이들 노예군인을 맘루크라고 불렀는데점점 맘루크가 정치에도 관여하더니 나중에는 칼리프(이슬람 교황겸 황제)를 시해하고 실권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함덕분에 이슬람제국은 사분오열 돼서 쇠퇴했는데그나마 모로코, 스페인, 이집트 등지에 이슬람 왕조는 건재했고 이슬람 문명은 이어지고 있었음몽골이 쳐들어와서 중동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마침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실권을 잡고 있던 맘루크가 쿠데타로 아얘 나라를 세워버림근데 이 새끼들이 지리는게 집권하자 마자 몽골군을 계속 깨부숴서 서쪽 진출을 틀어막고, 몽골하고까지 동맹 맺으며 발악하던 십자군을 몰아내서 200년 지속된 십자군전쟁을 끝내버림그리고는 몽골군에 짖밟힌 바그다드의 칼리프를 납치해와서 카이로에 압바스 왕조를 부활시킴. 칼리프는 옛날 일본천황처럼 바지사장으로 두고 맘루크 술탄이 실권자로서 다스린 거임(쇼군처럼).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을 모두 지배하면서 명실상부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이 된거야초기의 맘루크 구성은 대부분 킵차크 튀르크인. 같은 계열은 카자흐족, 키르기즈족으로 얘들은 독립국가도 남아있지최고 전성기는 킵차크 튀르크 & 몽골 혼혈의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 그림 중에서 가운데 왕같이 생긴 사람이야. 맘루크 왕조가 권력암투가 극심해서 술탄 평균 재위기간이 5년인가 그랬는데 이 양반은 혼자 40년을 해먹고 자식들한테도 왕위를 물려주면서 거의 1300년대 이사람의 가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사실 맘루크 술탄국은 하나의 왕조가 아니라, 맘루크들끼리 뺏고 뺏기는 연속이었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일본의 바쿠후(막부)처럼 지극히 내부 다툼이었기에 민중의 삶을 크게 악화시키지는 않았고 맘루크 왕조는 엄청 경제적으로 번영했어맘루크 왕조 치하의 이집트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14세기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방문한 페르시아인 칼릴 알자히리는“페르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10개를 합쳐도 카이로보다 더 작다.”라고 탄식했으며1384년 카이로를 방문한 피렌체인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는“피렌체 인구 전체를 합쳐도 카이로 시내 한 곳의 사람들보다 더 적다.”고 했을 정도한차례 중간에 왕조가 튀르크계에서 체르케스계로 바뀌고(1384년) 흑사병으로 인구도 감소하면서 쇠락했는데15세기 후반 술탄 카이트베이의 안정적인 통치하에 힘을 회복하여, 킬리키아를 두고 벌어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중흥기를 맞았대체르케스인은 튀르크어족, 인도유럽어족,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어디에도 안속하는 독자집단이라는대. 러시아제국에 학살당해서 지금은 몇십명 안남았어.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쪽 동네인가봐. 체르케스인이 권력 잡은 후에도 맘루크의 정체성은 망할 때까지 '튀르크어'였다고 해. 궁정에서는 튀르크어를 사용했고다만 나랏일의 대부분은(행정, 사법 등) 아랍어로 이루어졌고, 동시기 타 이슬람권에서 페르시아어와 문화가 득세할 때 맘루크는 아랍어와 문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함 그러나 16세기에 들어 대항해시대를 맞은 포르투갈의 인도양 무역 잠식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1516년 신무기와 근대적 군대를 앞세운 오스만 술탄 셀림 1세에게 정복되었어다만 왕조는 멸망했어도 맘루크 군부는 건재했으며, 오스만 지배에 협력하면서도 종종 소요를 일으켰어맘루크 술탄국 때는 자식에게 맘루크 자리를 물려줄 수 없었고 술탄만 세습했는데, 오스만 통치하에서는 아얘 맘루크 가문을 형성하고 군벌이 더 막강해졌다 하더라. 오스만 총독이 암살당하거나 추방되는 일은 예사였을 정도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는 냉병기를 고집하다가 사망자 30:3000으로 쳐발리면서 크게 휘청거렸고19세기에 오스만 총독 메흐메드 알리(알바니아계)가 대숙청을 자행하면서 맘루크의 씨를 대부분 말렸어겨우 살아남은 후손 중에 하나가 카이로 나일강변에 맘루크 양식으로 저택을 크게 짓고 살고 있다고 하네. 이집트 가는 게이 있으면 함 방문해봐. 현지에서는 웨딩 명소라더라지금더 이집트 사람들 중에 터키식 이름이나 성씨를 가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해. 맘루크, 오스만 통틀어 튀르크의 영향이 거의 700년이나 지속되었으니긴글 읽어줘서 고마워!사진은 맘루크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그외 맘루크의 모습들맘루크 시대 풍경과 현존하는 건축물들맘루크 왕족의 후예인 Prince Naguib Abdullah Hassan Sharkas와 그의 저택이름하여 맘루크 술탄국
작성자 : 이슬람제국고정닉
나루토 그림체에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와 그 변천을 요약해줌.jpg
실베에 "키시모토가 애니제작진 편하라고 그림체 바꿨다"라는 출처를 알수없는 글을 보고 나도 아는 한도에서 써봄 1. 나루토 연재 전 -> 오토모 카츠히로 영향 (오토모 카츠히로의 아키라) (키시모토 마사시의 나루토 정식연재 전 그림) 나루토 단행본의 마사시 트리비아를 보면 오토모 카츠히로의 AKIRA에 큰 영향을 받고 그의 그림을 흉내내며 성장했다고 증언함 (오토모 카츠히로) (키시모토 마사시) 오토모 카츠히로는 청년지 작가였기 때문에 키시모토도 청년지스러운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이는 소년만화에 시도하는 키시모토에게 고민이 됨 그 와중에 접하게 된게... 2. 나루토 연재시작 -> 니시오 테츠야 영향 (니시오 테츠야의 닌쿠 애니 그림) (키시모토 마사시의 나루토 초기 그림) 마찬가지로 단행본 트리비아에 키시모토 마사시가 닌쿠 애니 오프닝을 보고 받은 충격과 그 이후 니시오 테츠야의 그림을 기반으로 나루토를 연재하게 되었다고 본인이 이야기함 https://youtu.be/8oJZkgkIiFM Ninku ~ Opening Sequence HDNinku ~ Opening Sequence HDyoutu.be(이게 닌쿠 오프닝인데 무려 니시오 테츠야 1인 원화라 더 대단한 영상임 참고로 GTO 1기 오프닝도 니시오 테츠야 1인 원화) 다만 나루토 초기 그림체는 보고있으면 지금 키시모토 그림체와는 괴리가 있고,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 있음 이런 와중에 또 키시모토에게 영향을 끼친게 3. 나루토 애니화 -> 또 니시오 테츠야 영향 (니시오 테츠야의 나루토 1극 극장판 포스터) (키시모토 마사시 나루토 컬러 페이지) 위에 키시모토 트리비아를 다 읽었으면 알겠지만 키시모토 마사시가 극찬한 닌쿠의 애니제작사 "피에로" 에서 나루토 애니화를 진행하고, 선망하던 니시오 테츠야가 기적적으로 나루토 애니의 캐릭터디자이너 역할을 맡았다 사실 키시모토 본인도 저기선 아직 쪽팔렸는지 안밝힌 사실이 있는데... (니시오 테츠야가 공동 캐디를 맡은 인랑) (니시오 테츠야가 원화로 참여한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사실 당시 니시오 테츠야는 이미 피에로 소속도 아니고, TVA도 그리지 않았다 그는 프로덕션I.G에 스카웃 되어 인랑, 공각기동대 같은 극장판 애니메이터로 활동하고 있었음 그래서 나루토 캐릭터디자이너는 니시오 테츠야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진행 중이었는데 키시모토 마사시가 꾹 참다가 "니시오 테츠야씨가 아니면 안돼!!!" 라고 땡깡을 피웠고, 피에로 측은 이미 스텝진이 정해진 상황에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반대했지만 키시모토가 너무 완강하니 그 옆에 있던 편집자가 "지금 우리 만화가 무시하냐? 굳이 점프 높은 분들 다 데려와야 되겠나?" 이런식으로 분위기 험악해지고 나서야 피에로 측이 니시오 겨우 설득해서 캐디직 앉히고, 원래 캐디는 강판하는 소소한 사건이 있었음 아무튼 키시모토는 니시오를 그만큼 존경했고, 니시오가 그려준 캐릭터디자인 설정화도 매우 좋아해서 오히려 원작자가 애니설정화를 참고해서 만화를 그렸다 원작자가 설정화를 참고할게 뭐있나 싶겠지만 만화와 달리 애니는 수백명이 넘는 인원이 하나의 레퍼런스를 참조해서 그림을 그려야하고 그 수백명의 애니메이터들을 납득시키기위해 모든 캐릭터의 형상, 소품 등의 디테일을 최대한 설정화에 녹여서 그려야한다 예를 들어 옷주머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는것도 만화는 실질적으로 꺼내는 묘사 없이 있다 -> 없다 2컷으로도 표현이 되지만 애니는 꺼내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시청자에게 보여줘야하는데 매화 옷에서 두루마리를 꺼내는 방식이 다르면 몰입도가 떨어지므로 윗그림처럼 포켓의 열리고 닫히는 방식, 두루마리 수납방식까지 모두 상정하고 설정화를 그려야한다 만화에서 잠깐 나오는 나가토 팔 변형기믹도 니시오 테츠야는 변형기믹의 원리를 상세하게 구현해놨다 이러니 키시모토도 이런 고품질의 자료들을 세계관에 참조하면 이득인것 잡설이 길었는데 그림체로 돌아가자면 원래 나루토 초기 그림체는 캐릭터 얼굴이 짧고 헤어의 질감이 더 스파이크가 많고 복슬복슬한 식이었는데(짤의 133화는 02년 8월 점프에 실렸음) 02년 8월 니시오 테츠야의 애니 설정화가 나왔는데 보면 얼굴형이 굉장히 입체적이고 볼륨감있게 그려진걸 알수있음 이후 키시모토 그림변화를 보면 헤어의 볼륨감 묘사방법이나 눈매 등이 점점 니시오의 설정화와 비슷해지는걸 알수있음 (2002년 7월 31일 니시오 테츠야의 설정화) (2014년 12월 점프에 게재된 나루토 228화의 한장면) 입매, 코 등 니시오 테츠야 특유의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양감을 많이 참조한걸 볼수록 알수있음 특히 하쿠 같이 극초창기 캐릭터들 비교하면 더 체감됨 원작 하쿠 니시오 테츠야 설정화 한참 뒤에 예토전생으로 다시 그린 하쿠 그래서 결론은 키시모토는 애니팀 편하라고 그림체 바꾼게 아니라 자기 롤모델이 애니에 참여해서 향후 본인 미술에도 영향을 받은거임
작성자 : 김상궁물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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