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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가렛 에드워즈 신작...근황.....gif
데뷔작 <몬스터즈>통해서색다른 SF괴수 크리쳐 장르를 보여준혜성같이 등장한 헐리우드 신예감독바로 가렛 에드워즈 감독그리고 또한번 가렛 에드워즈는2014년 <고질라>통해서몬스터버스의 개척을 확실하게 어필 시켜줌그리고 여기서 끝까지않는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또다른 SF신화 프랜차이즈<스타워즈 시리즈>부흥을 알렸던 작품<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통해서전세계 스타워즈팬들에게 최고의 감독으로 선사그리고 또한번 사고친 가렛 에드워즈 감독신작<더 크리에이터>이번엔 미래 AI인공지능이 발달한 시대속베트남 전쟁을 방불케하는 묘사와 연출부터 시각적 영상미를한층더 멋진 스케일로 만나는 SF블록버스터 신작따끈따끈한 로튼 평점까지그리고 국내최고의 영화평론가빨간안경 이동진이 극찬한 올해10월 화재의 신작2023년 10월 반드시 만나야할올가을 최고의 SF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있는<고질라><스타워즈 스토리: 로그원> 가렛 에드워즈 신작더 크리에이터
작성자 : ㅇㅇ고정닉
[명소소개] 뉴욕의 명소들
도시갤에 올렸던 명소시리즈 자료를 여기로 옮깁니다.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트랜디한 도시, 그리고 현재 세계경제와 패션,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뉴욕이란 도시를 정의하지면 세계금융의 중심, 세계경제의 심장부, 막강한 자본으로 모든걸 블랙홀처럼 빨아당기는 도시,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등으로 표현됩니다전세계 도시중 가장 많은 영화에 등장하고 그 안에 있는 컨텐츠 하나하나가 유명해지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 명실상부한 현시대 세계최고도시입니다전세계의 모든 인종이 섞여사는 코스모폴리탄의 상징과 같은 도시입니다뉴욕의 주요명소들을 맨해튼의 가장 남쪽에서부터 북으로 올라오면서 소개해보겠습니다자유의 여신상뉴욕뿐 아닌 미국전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입니다.엘리스섬의 이민자박물관초창기역사에서 미국으로 이민올때 꼭 거쳐야했는 관문섬에다가 만든 미국이민역사에 대한 모든것이 전시된 박물관입니다.거버너스섬요즘 뜨고있는 뉴요커의 힐링장소, 잔디에 앉아서 자유의여신상을 가깝게 조망할수있습니다월스트리트세계를 지배하는 미국금융산업의 중심이자 세계경제의 심장부, 뉴욕증권거래소와 연방준비은행 그리고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기업본사들이 몰려있는 곳관광객들에게는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황소상이 유명합니다트리니티교회금융가에 위치한 1697년에 지어진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모던한 빌딩숲인 로어맨해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입니다.원월드 트레이드센터첨탑포함 높이 541미터로 북미에서 가장 높은 빌딩, 뉴욕의 여러 전망대중 대서양을 바라볼수 있는 전망대를 갖고 있습니다.911 메모리얼파크911테러자리에 지어진 추모공원, 2개의 추모풀과 박물관이 있습니다.오큘러스9개의 지하철노선과 뉴저지도시철도가 연결되는 로어맨해튼의 교통허브시빅센터시청과 대법원등 공공기관들이 모여있는 뉴욕의 행정복합단지브루클린브리지뉴욕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다리로 뉴욕의 또 다른 랜드마크죠브루클린 덤보워싱턴스트리트가 시작되는 브루클린의 덤보에서 바라보는 맨해튼브리지는 요즘 가장 핫한 포토스팟입니다.리틀 이태리이탈리아이민자들이 모여사는 거리로 차이나타운과 함께 맛집투어로 인기가 높습니다소호뉴욕에서 가장 트랜디한 패션거리로 명품브랜드샵과 레스토랑이 몰려있죠워싱턴스퀘어 아치워싱턴스퀘어의 랜드마크로 조지워싱턴 대통령취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그리니치빌리지오헨리의 단편 <마지막잎새>의 배경이자 예술가의 거리, 런던의 그리니치 지역을 본따서 이름을 명명했다고 합니다첼시마켓과거 쿠키공장을 개조하여 뉴욕을 대표하는 식료품시장으로 변신한 곳으로 맛탐방하러 많이들 갑니다하이라인파크폐선된 철도부지에 생긴 공원으로 신흥여행명소로 인기 높습니다허드슨야드허드슨강변에 도시재생사업으로 만들어진 복합단지로 30허드슨야드, 베슬, 엣지전망대등이 인기 있습니다베슬허드슨야드에 생긴 벌집모양의 계단건물,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하네요인트레피드 해양우주항공박물관퇴역한 항공모함을 개조하여 만든 박물관으로 미국최초의 우주왕복선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콩코드여객기등이 전시되어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플랫아이언빌딩23번가 교차로에 위치한 특이한 모양으로 인기있는 빌딩으로 다리미를 닮았다고해서 이름이 붙여졌다네요메디슨스퀘어가든뉴욕닉스의 홈구장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관객이 많은 실내공연아레나입니다 지하에는 암트랙, NJ트랜짓등 장거리 및 통근열차가 운행하는 펜역이 있습니다.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931년 완공되어 시카고의 시어스타워가 나타날때까지 40년간 지구상 최고층 빌딩, 오리지날킹콩의 배경으로 자유의 여신상에 이은 뉴욕의 2번째 랜드마크뉴욕공립도서관워싱턴DC에 이은 미국에서 2번째로 큰 도서관이자 세계5대 도서관중 하나, 전세계로부터 3800만권의 책과 희귀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UN센터국제정치의 중심지, UN의 본부건물로 가이드투어신청을 하면 회의장등 내부시설 곳곳을 둘러볼수 있습니다크라이슬러빌딩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보다 더 오래된 뉴욕의 마천루중 가장 우아한 빌딩이라고 합니다그랜드센트럴역뉴욕의 중앙역이자 44개의 플렛폼을 가진 세계최대의 철도역, 영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타임스퀘어전세계인이 모이는 우주의 중심,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번화가,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을 상징하는 곳입니다록펠러센터19개의 상업,업무빌딩들로 구성된 맨해튼의 상징적인 복합단지로 전망대인 탑오브더락에서 보는 뉴욕야경은 필수코스입니다.라디오시티뮤직홀다양한 쇼와 이벤트가 펼쳐지는 록펠러센터내에 있는 세계최대의 홀공연장입니다.세인트패트릭 성당록펠러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북미에서 가장 큰 가톨릭성당, 뉴욕에서 가장 비싼 5번가 북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죠MOMA전세계 현대미술관중 가장 영향력있는 큰 곳으로 근현대작품들과 초현실주의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현대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카네기홀미국의 강철왕 카네기가 세운 세계적인 콘서트홀로 이곳에서 공연한다는것 자체가 음악가들에게는 꿈이죠플라자호텔나홀로집에2에서 케빈이 투숙했던 바로 그 호텔, 고풍스런 외관으로 호텔을 떠나 관광명소로도 인기 높습니다.링컨센터클래식,오페라,발레,연극등을 공연하는 종합예술센터로 우리나라로 치면 예술의 전당같은 곳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 뉴욕필하모닉 데이비드가펜홀,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줄리어드음대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센트럴파크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심공원이자 헐리우드영화와 미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죠워낙 방대하기때문에 공원내에도 명소들이 참 많습니다.아래는 센트럴파크의 주요명소들입니다베데스다분수 (센트럴파크)1873년에 세워진 센트럴파크의 가장 중앙부에 위치한 분수벨베데레성 (센트럴파크)19세기에 지어진 센트럴파크에 위치한 성모양의 건축물로 과거에는 뉴욕 기상대건물로 쓰였다고 하네요보우다리 (센트럴파크)센트럴파크의 여러다리중 가장 아름답고 포토스팟으로 가장 인기있는 곳, 활모양으로 생겨서 보우다리라고 합니다스트로베리필즈 (센트럴파크)영국의 전설적인 팝그룹 비틀즈의 아이콘 존레논이 총기사고로 사망한 부근에 기념하기위해 생긴 공간으로 매년 수많은 팬들이 찾아옵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뉴욕에 가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미국 최대의 미술박물관으로 세계 5대 박물관중 하나입니다구겐하임 미술관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위로 올라가면 있는 독특한 외관으로 인기있는 미술관이죠.원조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과 비교해보면 잼있습니다자연사박물관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런던자연사박물관과 더불어 세계3대 자연사박물관, 영화 <공룡이 살아있다>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있습니다루즈벨트섬이스트강에 떠있는 섬으로 과거에는 감옥이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거주지로 인기있습니다루즈벨트아일랜드 트램웨이맨해튼에서 루즈벨트섬을 갈때 이용하는 관광용 트램아폴로극장맨해튼북쪽 할렘가에 위치한 흑인들을 위한 공연장으로 루이암스트롱,스티비원더등이 이곳에서 공연했고 마이클잭슨이 데뷔전 그의 형제(잭슨파이브)들과 이곳에서 주로 공연을 해서 유명해졌습니다.양키스타디움뉴욕양키즈의 홈구장으로 2층 박물관에는 베이브루스를 비롯한 전설적인 선수들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브롱크스동물원미국 최대의 동물원중 하나로 1899년 개장한 이래 265에이커의 방대한 토지에 650종 4천마리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명소소개] 지중해연안 지역의 명소들도시갤에 올렸던 명소시리즈 자료를 여기로 옮깁니다.뜨거운 태양과 드넓은 포도밭,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 절벽과 고성 그리고 성당, 고풍스러운 거리와 낭만적인 골목...인생에서 한번쯤 가봐야할 명소중 지중해와 인접한 보석같은 지역,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지방, 남프랑스의 프로방스지방, 이탈리아의 아말피해안의 소도시와 명소들을 소개합니다먼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지방입니다.안달루시아지방은 북아프리카의 지브롤터와 지중해를 경계로 맞닿아있으며 유럽대륙에서 가장 남쪽이자 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고 하여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립니다.기후는 여름에 40도를 넘길정도로 뜨거워 올리브,포도,해바라기와 같은 많은 일조량의 필요한 농작물의 주재배지입니다지형적으로 서쪽으로는 비옥한 토지 동쪽과 남쪽은 산악지대가 펼쳐지며 사하라사막의 모래바람 영향으로 향후 50년후에는 사막화될꺼라는 전망이 있습니다역사적으로는 과거 페니키아의 카르타고와 로마제국의 땅이였으며 7세기에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 침입하며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이슬람의 지배는 14세기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스페인의 땅이 되어 이슬람과 기독교 양쪽의 건축물과 문화, 유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피카소의 고향(말라가)이며 플라멩고와 투우의 발상지로 유명합니다.플라멩고는 집시들의 춤으로 인도북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유랑하며 가장 서쪽 끝인 안달루시아지방에 정착한 집시들의 눈물과 정열이 서려져있습니다세비야안달루시아 최대도시인 세비야는 콜럼부스의 최초항해가 시작된곳으로 에스파냐광장, 세비야대성당, 이슬람식 정원인 알카사르궁전등 수많은 명소가 있습니다에스파니아광장로마의 스페인광장의 원조로 과거 CF에서 김태희가 플라멩고를 춘 곳으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수로와 다리는 마치 베네치아를 연상시키며 박람회가 개최되었던 곳입니다메트로폴 파라솔세비야의 새로운 명소로 버섯모양의 거대한 건축물입니다이베리아반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세비야는 여름이 너무 덥고 뜨거워 광장에 큰 나무들처럼 그늘을 주기위해서 만든 목재 건축물이랍니다.또한 세비야가 스카이라인이 낮기때문에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전망대역할도 한다고 합니다말라가안달루시아 지방에서 2번째로 큰 도시로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는 해안도시입니다.스페인을 대표하는 휴양도시중 하나로 뜨거운 햇빛과 야자수나무, 청아명한 하늘로 인해 태양의 해안으로 불립니다또한 피카소가 태어난 곳으로 피카소 관련 관광명소들이 많습니다.그라나다700년동안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이슬람왕국의 수도로 알함브라궁전으로 유명합니다과거 이슬람도시였던 역사로 인해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 아랍이민자들이 많으며 모스크들을 많이 볼수 있습니다알함브라궁전이슬람왕국이었던 그라나다왕국이 13~14세기에 건설한 아름다운 궁전으로 성채와 왕궁,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중들에게는 기타클래식인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코르도바의 로마다리로마시절의 유적으로 기원전 1세기에 아우구스투스황제의 명으로 건축이 시작되어 9세기경 무어인들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절벽도시, 론다해발 780미터의 깎이지른 절벽위에 만들어진 로마시대에 형성된 도시로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을 본뜬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으로 유명합니다누에보다리18세기협곡위에 건설된 다리로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합니다안달루시아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 명작소설의 배경이기도 합니다안달루시아의 올리브밭과 해바라기밭플라멩고춤을 추는 집시들플라멩고춤은 안달루시아의 집시들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하얀 건물들로 이뤄진 미하스와 올베라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하얀 집과 건물들이 많은 이곳을 하얀마을이라고 불립니다.하얀마을로 가장 유명한 프리힐리아니네르하 인근에 있으며 스페인의 산토리니라고 불립니다다음은 남프랑스의 프로방스지방으로 가봅니다.진짜 프랑스다운 프랑스를 만나고 느낄수 있는 곳이 프로방스지방입니다.프로방스지방은 역사가 깊고 산이 많으며 기후는 지중해의 영향을 받아 기후가 따뜻합니다.이곳에는 고대로마시대때부터 형성된 역사깊은 도시와 마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고흐,세잔, 카뮈등 수많은 예술가와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이곳에서 정착했고 일평생 가장 사랑했던 지역이며 <어린왕자>의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가 비행중 실종되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마치 동화속에 온듯한 프로방스의 거리 풍경아를로마시대에 건설된 도시로 원형경기장등 로마시대 유저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빈센트 반 고흐가 가장 사랑한 도시로 일생을 이곳에서 머물면서 <해바라기>,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수백편의 명화들을 남겼습니다.엑상프로방스로마시대 온천마을로 유명하며 이쁜 거리와 역사적인 문화유산들이 많습니다파주에 있는 프로방스마을이 이곳을 모티브로 만든거같네요고르드아비뇽에서 약 40km떨어진 산꼭대기의 작은 마을입니다천년전에 만들어진 마을로 고성과 돌길, 그리고 벽 등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세낭크수도원고르드마을에 위치한 12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으로 들판에는 수도사들이 벌꿀을 생산하기 위해 재배하는 보라빛 라벤더 밭이 유명합니다프로방스지방을 소개하는 책자의 표지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죠.프로방스지방에 펼쳐져 있는 해바라기와 라벤더 밭뤼브롱알퐁스도데의 단편소설 <별>의 배경으로 유명한 산악지역입니다뤼브롱산의 포도밭목동과 스테파네뜨아가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프로방스의 예쁜 마을 루르마랭아비뇽과 액상프로방스의 가운에 있으며 카뮈가 머물렀던 동네로 동화속같은 골목과 거리풍경이 여행객을 감성을 자극합니다.마르세유기원전 600년 그리스인이 세운 도시로 사진속에서 지중해를 내려보는 건축물은 유명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입니다.현 프랑스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바로 마르세유의 용병들이 불렀던 노래가 기원이라고 하네요.이프성마르세유의 관광명소중 하나로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백작>에서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가 누명을 쓰고 유배된 곳으로 유명한 기암성입니다또한 소설<철가면>의 배경이기도 합니다코트다쥐르해안의 휴양도시, 니스코트다쥐르해안은 마르세유에서 툴롱, 칸,니스,모나코등을 거쳐 이탈리아해안까지 이어지는 지중해해안지역으로 유명 휴양지들이 몰려있는 곳입니다.그중 니스는 가장 유명한 바캉스도시로 세계적인 휴양지입니다.과거 토플리스해변으로 유명하며 누드비치가 있습니다몬테카를로코트다쥐르해안에 있지만 프랑스가 아닌 모나코에 속하는 인구 1만5천명의 도시입니다.유럽을 대표하는 카지노/호텔도시로 자동차경주로도 유명한 곳이죠. 또한 이곳에는 전세계 억만장자들의 별장들이 즐비합니다마지막으로 이탈리아남부 아말피해안으로 가봅니다.아말피해안은 이탈리아남부에 위치한 해안으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지상 낙원 중 하나로 꼽히는 곳입니다.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서 절벽위에 집들과 레스토랑, 성당이 모여 있는 작은 도시들이 있습니다.아말피해안은 살레르노에서 라벨로 아말피를 거쳐 포지타노까지 이어집니다.여행자들 대부분은 소렌토에서 버스로 포지타노에 도착합니다.이탈리아북부의 5개 절벽마을인 친퀘테레와 종종 비교됩니다만 훨씬 아기자기하고 다이나믹합니다.소렌토고대로마시대때부터 휴양지였던 소도시로 아말피여행의 기점이 되는 도시입니다.발길이 닿는 골목 골목에서 오랜 역사를 느낄수있습니다카프리섬소렌토의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관광지로 섬전체가 용암으로 덮여있는 이색적인 풍경과 관광자원으로 여행객들에게 인기높습니다절벽위의 도시, 포지타노수많은 계단이 절벽위의 마을들을 연결하며 아말피해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입니다로마제국시대때부터 형성된 휴양지라고 합니다.아말피아말피해안의 중앙에 있으며 깊은 계곡입구에 위치한 도시로 중세부터 해상무역의 거점이었습니다.그래서 유서 깊은 건축물이 많고 대성당과 수도원, 그리고 광장이 유명합니다.라벨로라벨로는 해안선이 오밀조밀하여 경관이 좋기로 이름있는 휴양마을입니다매년 여름 라벨로페스티벌이 열립니다.살레르노아말피해안의 끝자락에 위치한 살레르노는 인구 15만으로 아말피해안의 도시들중에서 가장 큽니다이곳은 중세예술지역과 19세기 거리 그리고 다른 아말피해안의 도시에는 볼수없는 아파트블록지역이 있으며 항구가 굉장히 분주합니다.- [명소소개] 시카고&LA의 명소들도시갤에 올렸던 명소시리즈 자료를 여기로 옮깁니다대평원위의 마천루도시 "시카고"나이 지긋한 미국인들중에는 아직도 "미국 제2의 도시는 시카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시카고는 1970년대까지 부동의 제2도시였고 뉴욕과 더불어 현대 마천루를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북미 중앙대평원에 위치한 항공,철도교통의 요지이며 세계최대의 상업거래소가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도시입니다.미중부의 중추도시로써 역사가 깊고 가장 미국적인 도시중 하나이며 여행지로써의 매력은 LA보다 더 가치높은 도시라 볼수있습니다.자 그러면 시카고를 상징하는 명소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작성자 : NY런던파리고정닉
선사시대 한반도 농업이 느리게 발전한 이유
[시리즈] 고려, 조선의 경제 이해하기 · 조선이 읍성을 엉성하게 쌓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 조선의 선물경제는 어떻게 시장경제를 방해할까? · 조선의 선물경제는 왜 사라졌는가? · 고려, 조선의 경제 이해하기 : 시장경제와 재분배경제 · 고려, 조선의 경제 이해하기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농업사회는 본질적으로 자급자족적이지 않다. 전근대 한반도의 경제에 대한 묘사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되는 표현은 "자급자족적 농업사회"라는 표현입니다. 역사학자들은 고려나 조선을 포함한 중근세 한반도 경제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자급자족적 농업사회를 추구했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경제사학자들조차 마찬가지입니다. 이영_훈 역시 조선후기까지 소농사회가 자급자족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하죠. 이헌창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이 자급자족적 농업사회란 표현이 어느정도를 의미하는가입니다. 유통경제와 교역, 분업화가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도시화나 농촌공업이 발달하지 못해 자급자족적 성격이 강했다라는 일종의 상대적 의미인건지, 아니면 자급자족적 성격이 강해서 실질적으로 상업이나 공업은 의미가 없었다는 수준인건지 대중으로서는 혼란스럽죠. 그래서일까요?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추지 않은 경우 고려나 조선의 자급자족적 농업사회에서, 상업이나 수공업, 유통경제나 농업 이외의 산업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농업생산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역사학자들이나 경제사학자들이 이런 관점에서 "자급자족적 농업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한 자급자족적이다란 표현은 보다 유통경제가 발전한 다른 국가나 현대적인 시장경제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자급자족적이라는 이야기지 진짜로 농업사회가 자급자족적이어서 상업이나 수공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농업사회는 자급자족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근대 한반도의 농업사회는 자급자족적이어서는 성립될 수가 없었습니다. 한반도 역사에서 농업사회라는 표현은 해당 사회를 구성하는 생계경제의 핵심이 농경을 통한 곡물의 생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채집과 수렵이 주가 되면 채집수렵경제일거고, 농경의 비중이 어느 정도 증가하면 복합경제라고도 부릅니다. 농업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면 간단히 말해 주식이 곡물이 된다는 겁니다. 주식이 곡물이 되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농업사회에서 소금을 못 구하면 죽는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 상상도----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인 구석기 시대(기원전 12000년에서 250만년 사이의 시기) 인류가 섭취한 소금의 추정치는 침팬지와 유사할 것으로 추정되어 매일 나트륨 768mg를 섭취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인류학 연구는 구석기 시대와 유사한 수준의 생계경제를 가진 남미의 야노마미족이나 뉴기니의 아사로족이 거의 소금을 섭취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지만 않는다면 수렵을 통해 고기나 해산물을 먹을으로서 필요한 염분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경이 주가 된 사회에서는 별도로 소금을 조달하기 시작합니다. 인류학 연구는 다양한 수렵부족에서는 소금의 제조와 거래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농경부족의 경우는 소금을 만들거나 거래한다는 것을 확인해 왔습니다. 인류가 소금의 부족이 사망을 초래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염분의 결핍은 두통과 쇠약, 그리고 현기증이나 메스꺼움을 유발하며 이것이 지속되면 사망을 초래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소금의 부족이란 건 확인이 처음엔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소금을 핱고 있는 소들, 소금의 공급없이는 목축도 쟁기질도 불가능하다.---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유사하게 소금의 맛을 즐기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사육된 말은 사람의 5배, 소는 사람의 10배에 달하는 소금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얼마 안되어 학습했을 지도 모릅니다. 소금은 맛있고, 안먹으면 가축이 죽으니 시간이 지나며 그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겠죠. 조선시대에는 기근의 구황에 소금을 매우 중시했는데 이는 식량의 부족보다도 소금이 더 큰 사망 요인일 가능성을 추측하게 합니다. 기근으로 인해 곡물이 부족하게 되면 해당 지역에서 생계 유지를 초과하는 곡물의 잉여가 감소하여 필요한 소금을 구매하기 어렵게 됩니다. 곡물보다 먼저 소금의 공급이 먼저 끊길 가능성이 높아지죠.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굶주림보다 먼저 염분섭취가 부족해 사망했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농경을 생계유지의 핵심수단으로 삼는 농업사회는 반드시 외부에서 소금을 조달해야 하며, 대량의 소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수공업자와 이러한 소금을 내륙의 농업 촌락으로 운송하고 판매할 상인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자급자족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농업사회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채집수렵의 생계경제에서의 비중을 늘리거나, 해변가에만 정착해서 직접 소금을 생산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이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사회적 분업, 그리고 이 분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교환(Exchange)이 농업사회를 존재 가능하게 해주며, 그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아주 기초적인 요소임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기원전 5000~4000년 사이 유럽 지역의 소금생산의 고고학적 증거들--- 때문에 이미 신석기시대에 세계 각지에서는 소금생산의 흔적들이 유적으로 발견됩니다. 본격적인 농업사회로 이전하기 전에도 세계 각지에서 소금생산의 흔적들이 나타나며 일본의 경우에도 신석기시대인 조몬시대 후기에 함수를 끓인 흔적이 토기에서 발견됩니다. 개별적으로 필요한 소금 이상을 생산하는 유적의 존재는 이를 다른 집단과 교환하는 교역이 존재함을 알려줍니다. 교환이 존재해야 소금생산이라는 분업화가 가능하죠. ---평안도 남포 원읍의 소금생산 유적, 연합뉴스 참조---- 아쉽게도 한반도에서는 선사시대에 소금생산의 흔적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빠른 소금생산유적은 평안도 남포시에서 발견된 1~5세기 추정 유적들입니다. 몇가지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는데, 한반도의 경우 청동기시대까지 채집, 수렵, 어로의 비중이 매우 높았고, 해안에 위치한 취락이 많았기에 소금생산과 교환의 필요성이 적었을 수 있습니다. 유럽처럼 대륙에 위치하고 소금의 공급이 먼 해안이나 특정지역의 암염에 의존하는 경우와는 여건이 다릅니다. 유적 자체는 원삼국시대가 최초라고 하겠지만, 사실 그 이전에 소금생산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농경이나 목축이 소금의 필요성을 촉진했을테니까요. 을불은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1년 만에 그 집을 떠나, 동촌(東村) 사람 재모(再牟)와 함께 소금 장사를 하였다. 배를 타고 압록(鴨渌)에 이르러 소금을 내려놓고 강 동쪽 사수촌(思收村) 사람의 집에 머물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300년 8월, 미천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도망해 곤궁하게 지내다. 한반도에서 소금유통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구려의 미천왕에 대한 기록입니다. 3세기 후반에 소금을 유통하는 상인이 존재했고 수운으로 소금을 실어날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농업이 두드러지게 발전하면서 소금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당연히 민간유통망이 발전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금은 아주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생존의 문제니까요. 다만 소금생산의 분업화와 교환이 필요했다고 해서 농업사회의 생계경제에서 그 비중이 절대적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여전히 그 경제의 자급자족적 성격이 충분히 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생존에 필수적이긴 하지만 필요량이 곡물처럼 많은건 아니잖아요? 소금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면 농업생산은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간접적입니다. 필수적이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농업의 발전을 밀어붙이는 강력한 추진력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업과 교환은 한반도 농업에 있어서 이런 간접적 역할만 하지 않습니다. 아주 직접적이고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동했습니다. 농업사회, 특히 적어도 전근대 한반도의 농업사회가 결코 자급자족적일 수 없는 이유는 한반도가 철제 농기구의 도입 없이는 실질적인 농업사회로 발전하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왜 한반도는 농업사회에 도달하는게 오래 걸렸을까? ---지탑리 유적에서 출토된 돌보습---- 전근대 한반도에서 농경은 신석기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추정됩니다.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신석기 유적에서 탄화된 곡물과 석제 농기구가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3000~3500년 이전에 최초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농업사회가 성립된건 아닙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에 대한 고고학 연구는 당시 생업경제가 농업보다는 어로, 채집, 수렵의 비중이 훨씬 높았고, 농경의 비중이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알려줍니다. ---한반도 청동기시대 취락에서 출토된 어망추--- 이는 청동기 시대로 진전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비해 농업의 비중은 상당히 증가하였으나, 청동기 시대의 한반도인은 농경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식물과 조개류의 채집, 수렵, 가축의 사육, 어로활동의 비중이 컸고, 심지어 청동기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한반도 남부에서의 농경은 상당히 쇠퇴하고 채집, 수렵, 어로활동의 비중이 더 커지는 현상까지 나타납니다. 농경의 발전을 통해서 청동기시대 영남의 인구가 전기에 비해 후기에 대폭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초기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이렇게 발전한 취락은 급격히 붕괴합니다. 한반도 남부에서 농업사회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원삼국시대에 들어서야 가능해졌습니다. (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 저는 이런 측면에서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의 철제 농기구 보급이야 말로 한반도에 농업사회가 정말 제대로 정착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철제 농기구의 보급이 한반도에서의 농업사회 발전의 핵심 요인일까요? 농경이 최초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농기구는 목제나 석제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꾸준히 사용됩니다. 사실 이것은 일명 4대문명이라고 불리는 황하, 나일강,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전한 문명들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들이 청동기 사회에 진입했어도 농경에 사용되는 도구들은 석제거나 목제였습니다. 청동은 철기와 달리 구하기 어려운 도구이기 때문에 농경에 사용되더라도 낫과 같은 제한적인 도구에 한정되었습니다. ---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 벽화, 목제 쟁기와 소를 사용하여 경작을 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적어도 3~4세기 들어서야 시작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한반도의 우리 조상들보다 엄청나게 빠르게 농업사회를 발전시켰습니다. 위의 벽화와 같이 축력을 사용해 쟁기로 경작을 할 수 있었고, 대량의 곡물을 생산하고 많은 인구를 부양하며 도시를 건설하는데까지 이릅니다. 툭히 근동지방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철제농기구 없이도 농업사회를 정착시키고 인구를 부양하여 이미 기원전 3000년이 되면 도시와 국가가 만들어졌으며 분업과 교환이 이루어져 지중해 일대의 광범위한 교역망이 형성됩니다. 한반도에서는 서기 3~4세기에 가서야 축력으로 쟁기질을 하는게 가능해집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요?----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토양--- 4대 문명이라 불리는 곳들은 대부분 거대한 강변에 위치한 충적평야지대입니다. 거대한 강을 통해 상류에서 흘러내린 토양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서 쌓인 충적토(alluvial soil)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 묘사된 진흙 벽돌--- 이렇게 형성된 충적토에는 돌이 별로 섞여있지 않습니다. 4대 문명의 거점지역에는 대부분 석재가 부족하며, 이는 그들의 건축양상에도 영향을 줍니다. 충적평야지대는 건축에서 충적토를 사용하여 벽돌을 만듭니다. 그들이 석재를 사용하는 경우(피라미드?)는 보다 먼 거리에서 운송해와야 합니다. 이런 토양환경은 목제 농기구로도 쉽게 경작이 가능합니다.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땅을 깊숙하게 팔 수 있으며 심지어 축력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조상들도 이런 간단한 원리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목제나 석제 농기구를 사용한다면 충적토 지대를 경작하는게 합리적입니다. ----한반도 연약지반 분포---- 기본적으로 한반도는 산지와 구릉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산지지형의 비율이 49%이며, 구릉지의 비율이 32%, 평야 비율은 19%에 불과합니다. 위의 지도는 한반도의 연약지반, 즉 사질토와 같은 충적평야 지대의 분포를 보여줍니다. 빨간색으로 표현된 지역이 주로 하천변 충적토가 많은 지형일겁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에는 4대 문명의 발상지들처럼 광대한 충적평야가 발달되어있지 않습니다. 반면 한반도에 일반적인 지형은 산지와 구릉지, 계곡들 사이사이에 존재합니다. 이런 지형들은 산악지형의 암석들이 오랜 변형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다수의 대형암석, 깨진 돌과 암석 부스러기들이 존재하고 표토층의 깊이는 얕을 가능성이 높겠죠. 이런 지형을 목제 농기구로 경작한다고 하면 애로사항이 꽃피었을 겁니다.----기원전 3세기, 대전출토 추정 농경문 청동기에 묘사된 목제 농기구 따비와 괭이----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한반도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농경문 청동기에는 한반도의 전통적인 농기구인 따비와 괭이가 보입니다. 목제로 된 이런 농기구로는 충적토 지대가 아닌 지형은 경작하기 어렵습니다.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겠죠. 물론 한반도에 충적토 지대가 없는건 결코 아닙니다. 강변에 충적토지대가 존재하며 하천 곳곳에 범람원들이 존재합니다.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의 낮은 인구밀도를 고려할 때 충적토 지대는 농경을 발전시키기에 그렇게까지 부족한 넓이는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청동기 시대 한반도에서 농경이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들은 강변 충적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구릉지에도 경작유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규모가 작았던 반면에, 강변 충적지에 입지한 밭의 경우는 대규모로 조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경작지, 아니 안정적인 정착지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중기 이후에 농경이 쇠퇴할 이유가 있었죠.---한반도와 세계 강들의 하상계수 비교---- 한반도의 하상계수는 세계의 다른 강들과 비교했을때 끔찍할 만큼 차이가 심합니다. 최소유량과 최대유량의 차이가 300배에서 700배에 달하는데, 나일강이 30배라는걸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죠. 즉 갑자기 비가 내려서 범람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는 겁니다. 청동기시대의 강변 충적지대에 위치한 환호취락, 특히 남강유역의 대평리취락이나 다른 취락에서는 강물의 범람으로 파괴되고 재건된 흔적이 남아있으며 이런 취락이 버려진 이유로는 자연재해로 인한 홍수피해가 원인이었으리라 추측되기도 합니다. 청동기시대의 밭들은 주로 강변의 자연제방에 조성되고 강이 범람하여 폐기되고 다시 그 윗면을 밭으로 조성하는 경작양상을 보입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처럼 범람이 매우 정기적이고 하상계수가 낮을 때는 별도의 시비가 필요없니 새로 퇴적된 충적토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이지만 한반도의 하천에서는 지나치게 불안정한 경작방식입니다. 언제 범람하는지, 범람의 정도가 아예 경작지를 파괴할 정도인지 확실하지 않으니까요.---하천과 범람원, 배후습지의 양상--- 한반도에서 하천변 유역의 범람원이나 배후습지에 안정적인 농지를 형성하는 것은 제방을 비롯한 수리시설을 설치하고, 습지를 배수하는 대대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같은 경우 충적지가 넓게 분포되어 일단 먼저 다수의 농경취락이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한 다음 이 저습지에 대한 관개 및 개척에 들어갔습니다. 막대한 노동력과 자본투자가 필요한 이 과정을 거치며 도시와 국가가 발전합니다. 반면에 한반도의 신석기 사회나 청동기 사회에서는 이런 인구증가가 어려우니 이런 대규모 노동력과 자본투자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나일강보다 10배 이상 하상계수가 큰 하천의 저습지를 당시에 배수하고 제방을 쌓고 관개하는게 가능하겠습니까? ---2020년 전남 구례의 홍수, 댐이 있어도 홍수조절이 쉽지 않은 한반도입니다.--- 걸핏하면 범람하고 무너지지 않을까요? 백제가 등장한 이후에야 전라도 일대에서 충적평야지대의 개간이 시작되지만 저습지로 한반도의 조상들이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건 고려후기 들어서였습니다. 한반도에 청동기시대에 농경이 제대로 정착하기 어려울만한 이유가 있었던거죠. 한반도에서 충적평야라고 할만큼 대규모 하천 유역의 경우는 일제시대 가서야 본격적으로 개발이 가능해질 정도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 강남이 걸핏하면 범람해 물바다가 된 걸 생각해보세요. 심지어 조선후기 모내기를 위한 수전(水田)의 발달도 상당수는 평야지대로 내려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계곡 상류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대규모 하천의 수리가 까다로우니까 보다 수리가 용이하고 편한 높은 지형으로 가는거죠. 즉 한반도의 지리 및 기후환경에서 농업사회를 본격적으로 개막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충적평야의 개발이 아니라 표토층에 잔돌과 암석이 많은 산이 가깝고 큰 하천이 아닌 쫄쫄 흐르는 개천이 계곡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배산임수의 지형에 농지를 개척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형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반도에서 채집, 수렵, 어로행위가 농경과 함께 이루어지는 복합경제체제에서 농업중심의 경제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석기 시대에 이렇게 목제 농기구로 경작이 까다로운 지형에서는 고랑이나 이랑을 만드는게 아니라, 불을 질러서 경작지를 확보한 다음 종자를 파종할 구멍만 파고 대충 흙으로 덮는 방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도구의 차이가 별로 없는 청동기 시대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당연히 수확이 시원치 않았을겁니다. 이러한 요인은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청동기 시대에 채집과 수렵, 어로행위가 오히려 농업보다 더 노동생산성이 높은 경제활동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철제 농기구의 도입과 보급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돌과 자갈, 암석이 많은 토양을 경작하려면 목제나 석제 농기구로는 너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철제 농기구를 농민이 자급자족해서 구할 수 있습니까?한반도에선 분업과 교환 없이는 농업사회도 없다. 20세기초의 대표적인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Gordon Childe)는 인류사에 최초로 등장한 전업적 수공업자(Full-Time Craftsmen)가 청동 대장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여성 토기제작자(Potter, 선사시대 토기 제작자가 여성들의 가내수공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에 비해서 대장장이들의 작업이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다고 추정합니다. 농업과 겸업이 가능했던 토기제작과 달리, 청동을 다루는 수공업자는 전업적(Full-Time job)이었으리라고 추정하며, 이를 최초의 전문화(Specialization of Labor)의 상징이라고 묘사합니다. 게다가 사회적 분업도 심각하게 요구합니다. 구리와 주석은 지구상에서 철에 비해 훨씬 구하기 어려운 금속입니다. 청동기의 사용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분업을 요구하며 광대한 유통망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청동기는 분명 전문화(Specialization)을 통한 분업의 강화를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성에는 그다지 기여하지 않습니다. 워낙 귀한 물건이라 농기구로는 잘 사용되지 않거든요. 주로 무기나 사치품(고고학에서는 주로 위세품이라 부릅니다.)의 성격이 강합니다. 즉 철기의 등장과 보급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전문화(Specialization of Labor)를 통한 생산성의 증가를 견인할 수 있었습니다. 철기 제작은 청동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을 요구합니다. 구리의 녹는점이 1,085°C인 반면, 철의 녹는점은 1,538°C로 훨씬 높습니다. 주철로 녹여내는 정도가 아니라 불순물 많은 괴련철을 만들려고만 할 경우 1000°C 의 온도가 필요하며 풀무같은 보다 효과적인 산소의 공급 수단과 숯의 사용이 요구됩니다. 철광석을 제련하고, 여기서 얻은 철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만큼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련하는 작업은 청동의 가공에 비해서 훨씬 더 어렵습니다. 요구하는 노동력도 크고, 필요한 장비, 즉 자본도 더 많습니다. 또한 철광석의 확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철은 구리나 주석에 비해 훨씬 흔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데나 있는건 아닙니다. 난이도 있는 기술을 다루는 전문적인 대장장이집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가 필요로하는 원재료를 생산하고 유통시켜 공급해야만 합니다. 연료인 숯의 생산은 철광석보다 3배나 많이 필요하며 전문화가 요구됩니다. 즉 분업과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철제 농기구는 한반도에 출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분업과 교환이 발달하지 않는다면 철제 농기구는 한반도에 충분한 만큼 공급될 수가 없습니다. 취락민들이 채집, 수렵, 농경을 하던 도중 겸업으로, 또는 반전업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제작할 수도 있었던 석제, 목제 농기구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철제 농기구의 출현과 이를 통한 한반도에서의 농업사회 발전이야말로, 농업사회가 본질적으로 자급자족적이지 않으며, 자급자족해서는 결코 농업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그럼 어떻게 한반도에 철기가 보급되어 나갔는지 그로 인해 농업양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참고자료SB, Eaton 외 2명, "Paleolithic nutrition revisited: A twelve-year retrospective on itsnature and implications"Mark Kur_lansky, "Salt : A World History"Olivier Weller, First salt making in Europe: an overview from Neolithic timesV. Gordon Childe. "Man Makes Himself"국사편찬위원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양인호, "소금 생산 유적으로 본 1~5세기 초 평안도 지역의 소금생산"윤정국, "석기조성으로 본 신석기 시대 생업경제의 변동과 의미"김동일, "청동기시대 동북아시아의 생업경제(상) - 한반도와 요령, 길림지역을 중심으로"안승모, "동아시아 정주취락과 농경출현의 상관관계 - 한반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김성욱, "청동기시대의 어로활동"윤호필, "한국 청동기시대 농경의 개시 및 전개"배덕환, "대평리 방어취락의 성립과 해체"김도헌, 고대의 목제 기경구 연구"김동진, "농지개간 : 천방과 화전" http://www.koreanhistory.org/1808https://chriskresser.com/shaking-up-the-salt-myth-history-of-salt/
작성자 : lemiel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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