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미사토, 신지, 아스카 이 셋은 유사가족임. 미사토가 애들 둘의 엄마 겸 아빠고 신지랑 아스카는 남매 사이. 근데 알다시피 이 셋 다 실제 부모랑은 관계가 씹창났다는 공통점이 있음. 그래서 실제 부모와의 씹창난 그 영향을 각자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자기네 유사가족 관계에도 가져오게 됨.
1. 아스카는 엘리트인 엄마가 정자은행에서 엘리트 정자 받아다 낳은 시험관 아기인데, 그나마도 엄마가 에바 실험 중에 맛탱이가 가버려서 정줄 놓은 엄마만 보면서 자람. 근데 심지어 문제는 엄마가 정줄놓고서 왠 인형을 자기 자식이라고 착각해서 그 인형만 애지중지하고 아스카는 본 척도 안했음.
이게 아스카한테 트라우마가 됨. 그래서 아스카는 한편으로는 자기 능력을 뽐내면서 엄마한테 인정받으려고 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 따윈 필요없다고 자긴 이미 다 큰 어른이라고 과시하려고 함. 그래서 어른들한테 자주 개기기도 하고, 어른들 말에 고분고분한 신지랑 레이를 비꼬고, 자기랑 나이 차가 꽤 나는 카지한테 사귀자고 들이대기도 함.
그러다 신지랑 어쩌다 같이 살게 되고, 같이 살면서 투닥거리다 보니까 유사남매 관계가 된 거임. 그러면서 아스카 관심이 카지한테서 신지로 돌아가게 됨. 자기랑 비슷한 처지이기도 하고, 맨날 꼬마라고 무시하는 카지에 비해 투닥거리면서 싸움 받아주고 대화도 통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사남매 관계라는 게 중요함.
아스카가 신지한테 맨날 틱틱거려도 조금만 까보면 진짜 미친 듯이 들이대는 건 쉽게 보임. 그것도 그냥 사귀자 정도가 아니고 섹스하자고 계속 운을 띄우거든. 이게 뭐냐면, 아스카는 신지랑 섹스함으로써 근친상간을 하려는 거임. 그걸로 자기랑 신지는 어른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가족 사이의 금기를 범함으로써 가족-어른들(카지, 미사토, 진짜 엄마)을 엿먹이고 싶어하는 거.
그러니까 아스카는 자길 외면한 부모-어른들에 대한 복수로서 신지랑 자려고 드는 것. 근데 그렇다고 신지에 대한 애정이 없는 건 또 아님. 남매로서의 애정(남동생에 더 가까운)과 처음 가까워진 또래 남자애에 대해 품는 연심, 비슷한 처지로 인한 동질감 같은 게 이리저리 복잡하게 뒤엉킨 애정이 있음. 그래서 이걸 뭐라고 딱 정의하기 어려우니까 신지한테 섹스하자고 들이대면서도 그 이유를 자기도 정확히 설명을 못하고 괜히 신지한테 화풀이만 하는 거.
2. 신지도 아스카랑 비슷하긴 한데.....얘는 아스카처럼 부모를 엿 먹인다는 쪽보다는 부모한테 착한 아이로 인정받고 싶은 게 더 강함. 그래서 미사토-아스카-신지 유사가족 관계에서도 어떻게 보면 착한 아이로서 롤을 좀 연기하는 게 있음. 미사토랑은 부모처럼 지내고 싶어하고 아스카랑은 남매처럼 지내고 싶어하는.
그리고 바로 이거 때문에 얘가 아스카가 미친 듯이 들이대는 걸 다 모른 척 한 거임. 신지 이새끼도 아스카한테 최소 성욕은 품고 있었다는 건 그 유명한 딸딸이 장면부터 다 나오는 건데...그런데도 아스카가 미친 듯이 들이대는 그걸 죄다 씹었거든. 그건 의식적이기라기보다는 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모른 척 해야 한다고 일종의 자기 세뇌를 한 거임.
왜? 자기가 아스카랑 섹스하면 그건 (유사가족 관계 내에서) 근친이 되고, 그건 지금의 안락하고 안정적인 유사 가족 관계를 깨뜨리게 되는 거고, 부모(진짜 부모인 겐도, 의사부모인 미사토 둘 다)를 실망시키는 일일뿐더러 아스카랑도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위험부담을 져야 한다는 거니까. 미사토를 실망시켜 외면당하는 것도 무섭고, 아스카랑 새로운 관계(남매에서 애인으로)를 맺다가 혹시나 실패해서 아스카랑 관계가 끊기는 것도 무서운 거. 그래서 아스카가 보내는 신호를 다 무시하고 계속 남매로 남아있으려고 하지. 부모-어른들의 뜻에 따라서.
물론 그러다가 결국 친구인 토우지 건으로 리미터가 깨져서 본격적으로 개김 노선으로 들어가는데, 그것도 적극적으로 치고박기보다는 뭔가 좀 어른들을 아예 무시하는 형태로 가버림. 아스카는 그래서 ‘내가 공동전선 펼치자고 그렇게 들이댔는게 그걸 다 쳐 씹고 혼자 개폼잡으면서 마이웨이 밟겠다 이거지? 씨발 너 잘났네’ 이러면서 신지랑 멀어지고. 미사토는 ‘아 이제 얘랑 더 유사 부모자식으로 있을 수 없겠네’ 이건 직감해놓고도 마치 사춘기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양육 실패한 엄마처럼 모른 척 외면해버리면서 관계가 멀어지게 됨.
3. 애들 두 명에 비해서 미사토는 좀 더 복잡한데.....얘는 사실 아스카가 하려던 반항을 대학생 때 카지랑 죽어라 물빨하면서 다 해서 그건 좀 한이 풀렸음. 근데 그리고 존나 싫어했던 아부지가 마지막에 자기 살리고 죽어버리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고 부채감도 생겼고. 그렇게 부모에 대한 증오심이랑 인정욕구 같은 게 다 풀리고 나니까, 이제 세상에 어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된 상태임. 근데 그걸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야.
그러다 그때 딱 신지랑 아스카를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비로소 어른-부모가 되는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함. 보면 알겠지만 미사토가 애들 둘한테 좋은 어른이자 좋은 부모가 되려고 되게 노력 많이 하거든. 그게 처음엔 효과도 꽤 있어서 신지랑 아스카도 점점 미사토를 따르게 됨.(물론 아스카는 계속 반항도 하지만) 에반게리온 초중반의 훈훈한 일상씬들은 다 이때 나옴.
근데 위에 신지랑 아스카 쪽 이야기에서 말한 것들 때문에 결국 애들이랑 점점 거리가 벌어지다 보니까……어느 시점부터는 이게 수습이 안 되고 결국 애들을 방치하게 됨. .제일 큰 게 카지가 죽은 건데, 그때 자기 슬픔 때문에 애들까지 봐줄 여력이 안 됐는데 그 타이밍에 일이 꼬여서 애들이랑 거리가 확 벌어져 버리고 또 뒤늦게 그걸 알아채고 나서 실의에 빠짐. 그 다음엔 자포자기 상태로 자긴 역시 좋은 부모는 못 될 거였다면서 자책하고, 또 애초에 신지-아스카랑 유사가족 관계를 만든 거 자체가 애들을 위해서 과연 좋은 거였을까 회의하게 됨. 프로이트적 가족 관계에서 애들이 어떤 억압에 짓눌리게 되는지를(부모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하게 되는 그것) 자기가 뻔히 아는데도 그걸 무시하고서 안락한 가족 관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자책감이지.
그래서 신지랑 아스카를 그렇게 계속 외면함. 사실 계속 외면만 한 건 아니고 자기 딴엔 나름대로 수습도 해보려고 신지한테 몸도 대주려고도 하지. 근데 신지한테 그건 근친상간이니까 신지가 발작하면서 차버리고, 그 다음엔 진짜 거의 손을 놔버리다가……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다시 마음을 먹고 애들을 마주하게 됨. 단, ‘그래도 좋은 부모가 되어야지’가 아니라 ‘유사 부모-자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번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대등하게 마주해야지’로. 그래서 마지막에 신지한테 딥키스하고 돌아오면 계속 하자고 한 거.
이렇게 보면 알겠지만, 에반게리온 자체가 고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으로 점철된 애니임. 딱 근대 이후 핵가족 구도에서 부모-자식 간 생기는 억압과 그 트라우마의 극복을 다룬 애니고. 이건 신극장판도 마찬가지라서, 난 신극 엔딩을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생각하진 않음. 물론 EOE 쪽이 캐릭터도 각자 성장기도 다 훨씬 좋았다곤 생각. (특히 미사토) 덧붙이자면 심지어 RE-TAKE도 이 구도와 주제를 끌고 나가고 있는데, 그건 RE-TAKE 작가가 그만큼 캐릭터 분석을 잘했다는 뜻이겠지. 아스카 임신시키면서 스토리 차례차례 끌고 나가는 거....처음 봤을 때 소름돋았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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