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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스의 성배 5-4
【그랜 메릴=안】에는 일반에 공개된 공식 제방 이외에 입실에 허가가 필요한 방도 많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일찍이 왕후 귀족의 탄압에 사용되었다고 하는 이 【별 사이(星の間)】였다.
궁전의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한 실내는 벽 끝부터 천장 부분까지 모두 동일한 감파랑색* 벽지로 덮여 있었다. 창문이 없는 방이라 마치 정말 밤이 찾아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자세히 보면 작은 별 모양의 금박이 규칙적으로 찍혀 있고 촛대의 불꽃을 비추면 은은하게 빛난다.
*주 1, 원문 : 유리색(瑠璃色). 일본에서는 청금석색(감파랑)을 의미한다.
안쪽에는 조각상이 있고, 눈을 가린 여신이 오른손에 검을 들고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는 묵직한 마호가니 원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자리를 에워싸듯 짙은 감색의 비로드 융(벨벳)*이 둘러진 안락의자 살롱 의자가 여섯 개 놓여 있다. 자리는 이미 4개 차 있었다.
*주 2, 원문 : 天鵞絨. 백조의 깃털처럼 광택있는 천이라는 의미.
정면에 걸터앉아 있던 데보라 다르키안은 문 앞에서 굳어지는 코니를 발견하고는 새빨간 입술을 걷어 올렸다.
「어서와, 콘스탄스 그레일. ―――아직도 목은 붙어있는 것 같네.」
◇◇◇
「아시겠지만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누설금지에요. 그래도 괜찮으신지?」
유도된 자리는 데보라와 마주보는 자리다. 자리에 앉자마자 데보라를 포함해 호기심 어린 여덟 개의 눈동자에 놓인다. 그것은 순진한 아이의 눈을 조금 닮았다. 아무 죄의식도 없이 벌레를 잡으며 장난치고, 싫증나면 짓밟아 으깬다―――는 듯한. 오싹한 등줄기에 오한이 몰려들어, 무심코 시선을 딴 데로 돌릴 뻔했지만, 꾹 참고 앞을 본다.
「셋 다 본 적 있는 얼굴들이지. 데보라의 추종자들이야. 확실히 전원 백작 이상이야.」
스칼렛이 데보라 양 옆에 앉아 있는 세 명의 귀부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코니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혈판을.」
데보라는 조금 시큰둥한 듯 말하고는 보석장식이 곁들여진 호화로운 단도와 서약문을 이리로 보낸다. 스칼렛이 싫은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혈판*……이라니 너는 도대체 어느 시대의 인간이냐』
* 주 3, 한국에서는 혈판장(血判狀)이라는 단어로 익숙하다.
코니가 깃펜으로 서명을 하자 말없이 칼끝으로 엄지손가락을 꽉 눌렀다. 불쑥 붉은 구슬이 부풀어 올랐다.
「―――이것으로.」
혈문이 찍힌 그것을 건네주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이 자리에 불려왔는지, 알고 계신지?」
침묵을 부정으로 파악했는지 데보라가 노래하듯 말을 잇는다.
「편지 받았어. 당신의 친구인 ―――파멜라 프랜시스로부터.」
「파멜라...?」
「짐작 가는 게 있어? 가엾게도, 그 애, 자랑하는 백금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렸나 봐. 당신이 매정하게 그녀를 내팽개쳤을 뿐인데. 저기, 콘스탄스 그레일. 벌을 준다면 그 규탄만으로 됐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것만으로도 사교계에는 충분히 있을 수 없는 걸. 그런데 일부러 매달리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그래, 진단서도 있다고요?」
『어디의 돌팔이 의사야――― 다르키안이 고용한 의사잖아. 엉뚱한 수작이군』
파멜라 코니는 조용히 동요하고 있었다. 설마 이제 와서 그 이름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근데 말이야, 이것만으로는 범죄가 아니라는 것 같아. 너무 심한 얘기 같지 않아? 성실한 그레일 아가씨라면 이해해주시겠죠? 그러니까―――」
데보라의 회색 눈동자가 기학적으로 일그러져 간다.
「법이 당신을 재판할 수 없다면 저희들이 재판해 드려야겠죠.」
아마도 그것이 데보라 다르키안의 본성일 것이다.
「옛날에 망한 전설상의 왕조에 말이야, 보(報)·복(復)·율(律)이란 것이 있었대. 눈을 도려낸 인간은 상대의 눈을 도려내도 돼. 즉 누군가를 해쳐버리면 말이야, 응분의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멋진 법이지.」
『―――말해두지만, 그 법은 과잉보복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야. 제대로 공부하고 나서 발언하지 않으면 그 짧은 목을 자신의 손으로 조르게 되는 거야, 얼간이 씨.』
스칼렛이 비꼬는 듯이 비웃는다. 물론 그 목소리는 데보라에게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전달됐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데보라 다르키안에게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닌 것이다.
「저, 불쌍한 파멜라에게 약속했어요. 꼭 콘스탄스 그레일의 머리카락을 보내드리겠다고요.」
코니는 무의식적으로 데보라를 쳐다보았다.
「……상해는, 범죄입니다.」
「상해? 아니에요. 저희가 당신을 짓누르고 억지로 그 흙탕물 같은 머리를 건드린다고? 작위가 낮으면 생각하는 것도 야만적인걸요. 당신은요, 지금부터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거에요. 그 사람처럼, 싹둑하고."
그렇게 말하며, 데보라는 몹시 즐거운 듯 조금 전의 서약문을 코니의 눈앞에 들이댔다.
「자, 보세요. 당신이 그 피에 맹세했던 서면―――사문회*의 결정에 따르겠다, 고 적혀있잖아요? 다시 말해서요, 당신은 이 모임이 내린 징벌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에요.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그래요, 밖에 대기중인 사병을 불러서 도와달라고 해볼까요? 물론 이건 범죄가 아니에요. 그치만 저희는 룰을 따르고 있을 뿐인걸요.“
*주 4, 사문회 = 한국에서는 징계위원회라는 말로 대체 가능하다.
너무 제멋대로인 말에 구역질이 난다. 성질이 다르다는 랜돌프의 말이 되살아났다. 확실히 달라. 데보라 다르키안은 스칼렛 카스티엘과는 전혀 닮지 않았어.
「자, 표결합시다.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수잔나가 병결하지만 인원수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걸요. 아아, 괜찮아. 다수결이에요. 그러니 결과에 따라선 당신은 무죄 방면이 될지도 모르는 거에요. 보세요, 아주 공평하지요?
그 결의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쓸 것이니 공평도 뭣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데보라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구나, 하고 코니는 깨달았다.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니는 이것이 지금까지의 야회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소와 상대만 다를 뿐, 흉계를 품은 인간끼리의 떠보기인 것이라고. 그러니 참가해도 문제없다고 본 것이다. 사람에게는 귀가 있다. 마음이 있다. 코니의 목소리도 닿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코니가 거절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분명 어떤 이유를 대어 강제로 참여시켰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것은, 그저 사형 린치다.
『―――해보시지 그래.』
옆에서 냉랭한 공기가 흘러나온다.
『너희들이 그럴 셈이라면, 나도 용서 못해.』
그 말과 함께 작은 정전기 여럿이 터지듯 흩어졌다. 데보라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뿐이었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이,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아 그렇지만, 그러네, 아직도 당신이라는 아이를 모르니까――― 만약, 당신이 내게 무릎을 꿇을 만큼 고분고분하고 착한 아이라면 모두 파멜라의 착각일 수도 있지."
요컨대, 데보라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봐주겠다는 것인가.
「뭔가, 변명거리가 있는 것일까?」
마치 코니가 그럴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런 여자에게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어. 코니.』
스칼렛이 낮게 중얼거린다. 그 호전적인 얼굴을 보면서, 신기하다, 라고 코니는 생각했다.
그렇다, 아주 신기하게도 --- 정말이지* 동·의·견이다.
*주 5, 원문 : まるきり, 전혀, 아주 등의 말로 번역되지만 한국어 용법상 애매하여 의역함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에잇 될 대로 되어라, 하고 코니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연다. 데보라의 미소가 깊어졌다. 그 때였다.。
「잠깐 실례하겠어.」
산뜻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말, 절차가 어쩌고 해서 완전히 늦어버렸어!」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목소리를 내며, 선명한 금발의 여성이 실내로 들어온다. 불현듯 얼굴을 든 데보라는 침입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몹시 쓴 탕약을 입에 문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고쳐 짓고 강한 어조로 내뱉는다.
「초대장도 없는데 들어오다니 예의가 없네. 사교계의 규칙을 모르니? 안타깝지만 이 자리에 당신 의자는 없어요. 돌아가 줘.」
그 말에 그녀는 놀란 듯 파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원탁에 시선을 주며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한다.
「의자가 없어? 그건 이상한 말이네. 왜냐하면 거기엔 빈자리가 있잖아.」
「이것은―――.」
「수.잔.나.네.빌.의 자리죠. 그럼 문제 없어요. 나는 그녀의 대리로서 온 거니까.」
「……뭐라고요?」
데보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녀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게 그 위임장이에요. 이 자리를 엄밀히 사문이라고 친다면 당연히 제가 그 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는 거지요?」
거기에는 이 사문회의 대리권을 양도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고 말미에는 수잔나 네빌의 친필 서명과 네빌 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 내용에 안색이 바랜 것은 데보라가 아니고, 어쩐지 추종자 세 사람이었다.
난데없는 일에 자리가 얼어붙다. 그녀는 그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탁에 놓여 있던 단도를 집어들고, 잽싸게 서약문에 혈판을 찍었다. 그리고 그대로 태연히 수잔나 네빌의 자리에 앉는다.
데보라가 혹독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출입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쓸모없는 것.」
「어머, 그들을 나무라면 안 돼요? 그들도 설마하니 4대 귀족이 불쑥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죠.」
4대 귀족. 그것은 건국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왕가를 지탱하고 함께 걸어온 4개의 권위 있는 공작가이다. 카스티엘, 리슐리외*, 다르키안. 그리고―――
*주 6, 원문 : リュシュリュワ. 일본어식 외래어 표기법으로 리슐리외는 リシュリュー인데, 원어에 가깝게 표기한 모양.
「본 적 있는 얼굴이 대부분이지만 처음 뵙는 분을 위해 이름을 말해둘게요. 저는 아비게일. 아비게일 오브라이언이에요.」
그리고――― 오브라이언.
아마 데보라보다 조금 어릴 테지만, 서른은 넘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얼굴. 결코 미인은 아니지만 명랑하게 웃는 얼굴에는 친근한 애교가 있다.
「의, 의사록을―――.」
몹시 당황한 듯, 추종자 중 한 명이 상기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정중하게 지금까지의 경위를 설명하려고 한다.
「의사록? 아, 미안해요. 나, 사문이라든가 하는 내용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는걸. 내가 할 말은 하나뿐이에요. ―――에스텔(Estelle), 쟈닌(jeannine), 칼로린느(Caroline). 으깨지고 싶지 않으면, 나를 따르세요.」
아비게일의 말은 간결했다. 간결하고 완곡한 표현을 좋아하는 귀족치고는 너무 직구였다. 지목된 세 명의 귀부인들이 일제히 숨을 삼킨다.
「어려운 건 아니지? 상상해보면 돼. 오브라이언과 다르키안,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이득일까? 지금 여기서 내게 붙으면, 앞으로도 지켜줄게. 당신들도 내 성격 알고 있죠? 하지만, 반항한다면 용서하지 않아. 물론, 그것도, 알고 있죠? 어머, 아직도 어려워? 그럼 더 간단하게 얘기할게요.」
맑게 갠 여름 하늘을 닮은 푸른 눈동자가 차례로 핏기가 가신 부인들을 포착해 간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다르키안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을 거예요."
사악*, 하고 정적이 지배했다.
* 주 7, 원문은 しん이라는 의성어인데, 뭘로 번역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구라안치고 2시간 쯤 쓴 것 같은데
개씹창좃이네
왜케 고유명사가 많음 이번 화
문장 이상한 거 잇음 말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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