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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첫대]그 아이.

덕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4.06 01:31:00
조회 110 추천 6 댓글 5

두근거린다. 설레인다. 사랑에 빠진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본인은 2017년 군지 이래로 폐인의 삶을 계속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 잠겨가는 요즘, 문득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본인은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다. 그런 새끼가 이따구로 갤질을?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일단 디폴트는 그렇다.

중학교 2학년 시절, 1학년의 친구들 중 같은 반이 배정된 아이가 없어 한 달 내내를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는 김모씨가 던파를 한다는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내가 용기를 내어 '던파 서버 어디야?'하고 물어볼 일도 없었고, 내 폐인의 삶은 2017년이 아니라 2009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아무튼 요컨대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 일단 친해지면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내지만, 그 전까지는 쭈구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새끼니 아직 인간시절, 그러니까 2017년에 군대로 끌려가기 전에도 여자랑 접점이 없는 찐따였음은 자명하리라.

남자들이야 오래 지내다보면 서로 농을 교환하며 친해지기 마련이지만, 나에게 미지의 존재인 여자들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들과 어울리는 나의 친구(물론 남자)의 말에 한두마디 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2012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이야기다.


나는 2012년 경기도 동부에서 남부의 신도시 부근으로 이사를 갔다. 당연히 학교도 전학을 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2차 성징을 마친, 여자아이들의 분내를 맡을 수 있었다. 기존의 학교는 촌동네의 명문고였고, 남녀는 분반이 기초에 면학분위기가 잔뜩 들어있는 인문계였다. 사귀는 녀석들은 어째저째 남자반과 여자반을 오가며 연인이 되었지만, 그런 인싸같은 짓은 당연하게도 내게 무리였다. 애초에 연애에 몸이 달아있는 몇몇을 제외하면 모두 공부만 하자는 분위기였고,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자신을 가꾸기 보다는 교과서와 참고서에 매몰되는 게 당연하던 칙칙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새로 전학을 간 학교는 달랐다. 단적으로 말하면 여자아이들의 치마 길이부터가 달랐다.

기존의 학교는 무릎 위로 치마를 올린 아이들이 거의 전무했던 것에 비해, 이곳은 베이스가 쫙 달라붙는 H스커트였다. 몇몇은 디시에서 흔히 농담조로 말하는 룸망주가 떠오를 정도로 치마길이를 줄였고, 그 광경은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 소수파였으며, 쉬는시간마다 복도에서 커플의 애정행각이 벌어지는 것도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무튼 그 새로운 학교의 친구(남자)들과 음담패설을 나눌 정도로 친해졌을 무렵.


나는 사랑에 빠졌다.


예대를 준비하는 아이였다. 피부는 새하얗게 맑았고, 입술은 연하게도 붉었다. 약간의 젖살이 있어 여자아이들 사이에 장난으로 볼을 꼬집히는, 그런 아이. 여자애 카스트의 정점에 위치한 그룹에서 귀염둥이 포지션을 맡은 아이였다.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기껏해야 짝궁이 한번 됐고, 교과서를 몇번 나눠 봤으며, 우연히 시덥잖은 농담이 몇번 섞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히 내 첫사랑이었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 얼굴이 붉어지는 감각, 잠들기 전 해보는 행복한 상상. 그 전에도 한번 느껴본 적 없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번 겪어보지 못한. 그래, 청춘의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앞서 서술했듯 나는 여자에 한해서는 한없이 찐따고 아싸이며, 판갤러 일동이 잘 알듯 내 얼굴 또한 그리 수려하지 못하다. 고백은 꿈도 꾸지 못했고, 감히 해본 상상해서도 무참하게 거절만 당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엎드려 잠든 동안 들려오는 웃음소리라거나, 겉으로는 멍해 보이지만 사실 생각이 깊다거나, 들고 있는 명품 지갑은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직접 샀다거나.


그렇게 같은 공간에 있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3학년이 되어서도 그 아이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그 즈음 나는 심적으로 괴로운 일을 겪고 있었고, 반쯤 회색빛이 된 일상에서 그녀의 존재만이 내 삶에 약간의 색채를 더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친구가 등장한다.


체대 준비생이다.


당시 180이었던 나보다 키가 약간 더 크다. 껄렁하고 머리 속이 비었지만, 천성은 착한데다 얼굴은 잘생겼기에 은근히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그 친구는 자습시간 은밀히 고백하듯 내게 말했다. 나는 그 아이를 좋아하노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고백한다 한들, 거절당하는 결말만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잘난 이 녀석이라면? 나보다 훈남인 이녀석이라면??


상상만 해봐도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그렇기에 응원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조언도 했고, 어울리지 않는 전달책의 역할도 맡았었다. 어쨋건 2년 동안 얼굴을 본 사이였고, 행운인지 불행인지 짝궁도 몇번 했었기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정도로는 친해졌으니.


그리고 얼마후, 친구는 자신이 차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에게 완전한 포기를 안겨주었다. 친구의 적극적인 대쉬를 보며 열등감에 치를 떨던 나는, 그런 열등감의 대상조차 그녀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동시에 절망했다.


그리고 우리는 졸업을 했다.


그걸로 끝이다. 연락처도 알 길이 없다. SNS 친추도 되어있지 않다. 애초에 친구라고 불릴 법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냥 동급생. 딱 그정도의 사이. 그거면 족했다. 어쨋건 가슴이 두근거렸고, 첫사랑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언젠가 회자될지 모르니.



그러다 2014년의 어느 날.


재수가 한창이던 나는 엉망인 꼴로 공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빡빡 민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축 늘어진 추리닝까지, 그나마 지금처럼 살이 찌지 않았기에 인간시절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뭐 아무튼, 그런 나날을 보내던 도중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9월 평가가 끝난지 얼마 안됐을 즈음으로 기억한다. 슬리퍼만 끌고 평소보다 일찍 도서관을 나섰다. 치킨집에 들어갔다. 돈은 친구가 내주기로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지갑사정은 빈곤했다. 맥주를 반잔정도 비웠을 때였다. 옆 테이블에 새로 앉은 사람이 어째선지 눈에 익었다.


그 아이였다.


교복을 입지 않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누가 봐도 청춘의 절정에 도달했다는 걸 알리듯, 화사한 옷을 입고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남자와 함께였다. 잘생기고, 여유롭고, 슬쩍 본 옷이나 지갑에서 금전적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냥 그게 끝이다. 그 둘은 둘만의 세계에 빠져 몇분이고 즐겁게 웃었고, 나는 제발 그 아이가 나를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치킨이 맛있어서 다행이었다. 냠냠.


그날 밤, 처음으로 그 아이의 SNS에 들어가봤다. 눈부셨다. 늘 눈부시던 그 아이는 여전히 눈부신 삶을 보내고 있었고, 그건 업데이트가 끊긴 지금까지도 그럴 것이다.




나는 어떤가


2022년의 지금. 나는 어떤가.


그때로 부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끝없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고등학교 시절의 꿈이다. 방과 후, 멍하니 자습을 하는 와중에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방해되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친다. 미안하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면서, 그 아이가 손을 흔든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나도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듯이, 그 아이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게 청춘이었나? 청춘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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