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동시에 현재의 나이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기억이 10대 20대에 집중되어 있음.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유년기 기억상실과 기억의 편중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았는데, 이유인즉 유년기에는 뇌세포들 사이의 연결(=시냅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만, 청소년기에는 이런 시냅스들의 가지치기와 수초화(시냅스를 미엘린이라는 절연체로 감싸서 신경전달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어른이 되고 나면 더 이상 뇌세포가 늘어나지 않아서 만약 뇌가 손상되더라도 다른 부위처럼 재생되진 않는다는 것임(물론 해마와 같이 새로운 뇌세포가 생겨나는 부위도 일부 있긴 함). 다시말해 아이들은 실제로 많은 것들을 기억하지만 대부분이 청소년기가 되면 사라지고, 이 때 살아남은 기억들은 전보다 더 강해진다는 것.(결정적 시기, 민감기)

위와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꼭 정신분석하는 새끼들이 아니라도 결정적 시기가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에는 누구나 공감하기 때문에, 상담이론 같은 걸 보면 꼭 현재 겪고 있는 정신적 문제의 원인을 유소년기의 외상경험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음.

문제는 이 가지치기 과정에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감정적인 기억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또 진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현재와 거리가 먼 과거를 회상할 때면 자연스럽게 더 극적이고 강렬한 방향으로 쏠리게 된다는 거임. 군필자들에게 군대얘기시키면 실제론 아무리 꿀을 빨았어도 제일 좆같았던 기억만 떠오르고, 애들에게 커서 뭐가 될지 물어보면 말도 안되는 꿈을 적어내는 것처럼 말이지. (=정서적 사건의 영향력은 과대평가된다.)

결론적으로 삶을 변화하게 만든 계기를 찾아보면 꼭 잘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될지라도, 이는 그저 기억의 편중이 만들어낸 착시에 불과할 때가 많음. 이러한 착시는 어른이 된 뒤에도 유효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때그때 경험하는 감정과 이후에 기억하는 감정을 조사해보면 둘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른 경우가 많고, 꼭 퇴행최면이나 꿈해석처럼 사이비 오컬트 같은 방식이 아니라도 걍 과거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시키면 시킬수록 오히려 이러한 실제 경험과의 괴리가 심해지기도 함.

이러한 착시를 막으려면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장면 녹화하고 돌려보면서 피드백하듯이 그때그때 현재의 감정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 과거의 기억은 그 자체로 현실이 아니라 어떤식으로든 현재의 자신이 편집하고 조작하고 재구성한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는 게 좋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