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 이후의 심리학, 특히 영ㆍ유아기서부터 성년-노년에 이르는 인간의 지적ㆍ정서적ㆍ사회적 심리와 행동 양태의 전개를 연구하는 발달심리학은 유전적 본성의 지분을 인정하면서도 환경적 개입, 특히 유ㆍ청소년기 양육의 중요성을 중시했다. 인간의 인격적 ‘틀(Template)’이 주로 유년기에 형성되므로,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과 재능과 사회적 가치관 등등이 결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게 발달심리학의 주요 전제다. 유전과 환경, 더 흔히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중점은 ‘양육’에 있었고,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부모에게 지워졌다. 이혼-편부모 가정 아이들과 일반가정 아이들을 대비한 숱한 연구에서부터 중독 등 안 좋은 습관의 대물림 경향 연구 등이 잇따랐다. 양육의 중요성은 근 한 세기 동안 유전자만큼이나 확고한 과학적 지위를 지닌 ‘신성한 불후의 믿음(sacred enduring beliefs)’이었고,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처럼 자리잡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양육법 책들과 전문가의 말들이 성가실 만큼 넘쳐나게 됐다. 한 마디로 자식이 잘못되는 건 대체로 부모 탓이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는 저 ‘믿음’을 폐기해야 할 오류투성이 ‘가설(Assumption)’일 뿐이라고 주장한 심리학자다. 그는 1995년 미국의 권위 있는 심리학회지 ‘Psychological Review’에 발표한 논문 ‘Where is the child’s environment? A group socialization theory of development’에서 양육은 아이의 인성과 사회화에 극히 제한적이고 단기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며 결정적인 환경은 집 바깥의 또래그룹, 엄밀히 말하면 아이들의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y)’ 즉 그들이 본받고자 하는 준거집단이라는 ‘집단사회화 이론’을 제시했다. 논문의 요지를 풀어 3년 뒤 출간한 대중서 ‘양육 가설 Nuture Asumption’(최수근 옮김, 이김 펴냄)에서 그는 “부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당신은 아이를 완벽하게 만들 수도 망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표현한 바 “전통 심리학의 따귀를 때리”며(초판 서문), 권위와 이해에 쉽사리 굴절하는 (심리)학계의 병폐를 매섭게 비판해온 아웃사이더 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가 지난해 12월 29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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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모로부터 대물림되는 것처럼 보이는 특성은 대부분 유전의 영향이거나 (부의 대물림과 같은) 간접적인 영향에 따른 것임.
2.실제로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쌍둥이나 형제'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은 환경보다는 유전의 영향력이 강력하고 광범위하며 결정적임.
3.또한 부모의 양육과 같은 공유환경보다 또래집단과 같은 비공유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같은 환경이라고 해서 꼭 똑같이 행동하게 되지 않음.
다시 말해 환경의 영향은 제한적이고(폭력적인 게임한다고 꼭 폭력적인 사람되지 않음) 맥락의존적이며(아이가 부모를 대하는 방식과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다름), 단기적임(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의 성격을 결정짓지 않음).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은 대부분 부모가 아니라 유전이나 준거집단의 영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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