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이걸 나한테 설정덕질하는 물건이라고 소개한 갤럼 누구였냐
진심 욕박고싶네
2.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설정이 빡빡한 작품이 아니다.
그러니까 래리 니븐의 링월드 같은 카테고리로 보면 안 된다고.
시발 링월드 결말은 지금 생각해도 개어이없네
근데 그 개어이없는 결말이 너무 설정적으로 완벽해서 깔 수도 없어...
암튼.
난 솔직히 작가가 각 캐릭터와 커다란 사건의 백그라운드 정도의 설정을 제외하고
설정을 그리 구체적으로 짜 놨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 걸 짜 놨다면, 초반 3화 정도의 개노잼 파트를 설정의 물량으로 덮어버리는 시도라도 했겠지.
그것보다는, '작가가 생각해 낸 설정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풀어내는가'에 방점이 잡힌 물건이라는 느낌이다.
배틀 씬이 한 번 나올 때마다
각 인물들의 전투 스타일이 어떤 원리로 굳어진 건지 설정을 풀어준다던가 하는 거.
솔직히 작가가 배틀씬에 그렇게 방점을 뒀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배틀의 흐름에서 대단히 독창적이거나 긴박한 무언가가 있지도 않다.
하지만 워낙 설정을 잘 풀어내다 보니, 배틀씬이 대단히 담백하고 거슬리지가 않는다.
진짜로 쌀밥이나 식빵 먹는 느낌으로 소화가 되네 이거.
배틀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난관 극복'에서 이 쌀밥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미리 짜 놓은, 논리정합적이고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설정을 분석하여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어떤 결론을 내는 것으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공정한' 방식이 아니라,
어떤 난관이 주어질 때마다, '이런 장르에서 흔한 이런 설정이 이 작품에도 있었습니다!'
라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풀면서, 그걸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식의 '자연스러운' 서술.
이런 방식은 작가가 꼼수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는데, 꽤 잘 극복해냈다.
근본적으로 장르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그때그때 설정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는 것에 능숙하고,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성 등에서 '얘가 설명충이 될 만한 상황'을 잘 뽑아내는 게 특히 크다.
이 작품에 설정이 많이 등장하는 건 맞지만
기본적으로 골 때리는 설정으로 독자를 두들겨패는 방향이 아니라
좋은 설정들을 자연스럽게 잘 풀어내서 독자를 만족시키는 쪽이라고 봐야 한다.
3. 그런 의미에서, 이 스타일의 서사가 잘 성립하려면,
'난관을 어떻게 잘게 쪼개는가'를 굉장히 중요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배움애미의 작가의 플롯은 완성도가 되게 높은데,
1)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작은 사건 여러 개로 쪼개는 재주가 탁월하고
2) 자잘한 복선 등을 통해, 문제의 해결이 비선형적으로
(즉 이번 루프에서 해결하려던 것 외의 실마리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식의)
이루어지도록, 설정과 캐릭터 레벨에서 링크를 많이 만들어놨다.
배움애미 식의, 불공정하고 특별한 사건을 다루는 식의 스타일이 아닌
고전적인 '공정한(것처럼 보이는) 퀴즈' 식의 서사에서는
루프물 주인공의 행위 대부분이 '답이 정해져 있는 과정을 향해 다이빙'이 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최대한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위해 '최적화된' 어떤 행동 외에는 다른 행동을 할 운신의 여지가 없다 이거지.
여기서 만약 전제가 잘못되었다던가 하면, 그건 그냥 주인공의 삽질로 여겨질 뿐이고
오락물로서는 독자의 스트레스 레벨을 올리는 기능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배움애미에서는 주인공이 최적화된 행동을 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없다.
작가가 캐릭터 묘사를 워낙 잘 해 놨고, 무엇보다 자크라는 대척점을 워낙 잘 만들어 놔서
주인공이 편집증적인 합리주의자로 보이는 구도를 독자에게 각인시켜 놨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주인공의 '편집증적 행보'는 사실 충분히 안전하거나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대개의 추리/SF 장르의 등장인물들에 비교해보자면, 조리안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나이브한 캐릭터지.
이 두 장르에서는 독자가 공감 불가능할 정도까지 합리적인 캐릭터를 고평가하는 장르적 관습이 있기 때문에...
즉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삽질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이 '삽질'이 난관의 단계화, 비선형화 과정을 통해서 계속된 전진으로 느끼게 만드는 센스가 탁월하다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초반부 전개를 크게 캐리한 아라니아들의 등장은,
1) 주인공은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뭔가를 벌일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2) 이런 전개가 일어난 것은 99% 독자들은 알 수 없었던 '주인공은 공감자다'는 편의적인 설정 덕분
이라는 점에서, 사실 이런 라이트노벨 장르가 아니면 지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나이브한 설정 던지기의 뒤편에는 주인공 조리안의 대인 기피증이 텔레파시 능력 때문이라는,
정말 식상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받아들이기 쉬운 설정과 내면 묘사가 있다.
그리고 이 설정들이 주변 인물들과 맞물리는 과정이라던가, 정신 마법을 강화하는 과정이라던가,
역시 다소 장르 관습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섬세하게 묘사된 아라니아들의 설정/캐릭터성 덕분에
'흥미로운 난관 설정과 극복'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비슷한 것으로, 소버린 게이트의 수호자의 설정 설명과 '루프 횟수가 제한되었다'는 설정.
거의 억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만, 이거 덕분에 설정 정리와 긴장감 조성, 단계적 목표설정이 되게 효율적으로 됐지...
라이트노벨 특유의 가벼운 행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작가가 꽤나 노력한 느낌.
4. 그렇기 때문에, 초반 진입장벽은 다소 어쩔 수 없었다는 기분도 들기는 한다.
루프가 이어지면서 느끼는 섬세한 변화나 복선 깔기용으로 필요했다는 것도 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것보다는, 이 작품이 '라이트노벨(해리 포터 포함)의 연장선에 있다'는 걸
독자에게, 그리고 작가 자신에게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았을까...
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안 든다.
내 머리는 '루프물에서 루프 진입 과정은 묘사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다섯 번째 루프에서 글을 시작해'
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지라...
음, 생각해보니 그냥 해리포터 분위기가 싫었던 거 같기도 해.
솔직히 말하자면, 설정을 수수께끼처럼 접근하려는 부질없는 시도 같은 걸 한 입장에서
이 작품 초반부를 객관적으로 볼만한 기회가 나한테는 애초에 없었던 거 같기는 하다.
5. 지금까지 읽은 입장에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건,
카엘 왜 남캐임???
왜 딸 혼자서 키우는 미망인의 마음의 상처 보듬어주는 전개가 안 나오는 거임???
왜 카나에게 동생 만들어주기 안 나옴???
솔직히 얘 성격이라던가 묘사가 별로 남캐 같지도 않아서
그냥 뇌 속에서 자체 TS시켜서 읽었다.
그 외에도 이 작품에는 불필요하게 남성인 캐릭터가 솔직히 너무 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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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시험인데 뭐하는거지
암튼 읽으면서 생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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