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자기 몸을 노비로 파는 계약서를 ‘자매문기’라 하는데, 18세기 정조 때 작성된 관용 문서양식집 ‘유서필지(儒胥必知)’에는 ‘비문권(婢文券)’이라는 제목으로 이 자매문기 양식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가족 판매가 일상화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범죄가 있기 때문에 법이 있고 처벌이 있는 것이다. 인신의 자유와 존엄을 포기하면 생존이 보장되기에 가족과 자기 자신을 노비로 파는 일이 빈번해졌고, 그러기에 관용 서식집에도 이 자매문기가 공식적으로 포함됐다. 처벌은 법전에만 남았다. 그 서글픈 군상이 이 지면에 있는 자매문서들에 그려져 있다.
‘건륭 21년 병자 2월 20일 조세희 앞으로 글로써 밝힙니다. 죽음의 세월을 살아낼 방도를 찾을 수 없고 험난하고 즐겁지 않지만 노모를 살릴 방도 또한 없습니다. 부득이 다섯 냥을 받고 제 몸을 팔겠습니다. 또 이후 자식이 생기면 아이 또한 영원히 노비로 팔겠습니다. 만약 훗날 이에 대해 말이 나오거들랑 이 문서를 관아에 제시해 바로잡을 일입니다.’
조선 영조 32년인 서기 1756년 봄이 올 무렵, 안낭이(安娘伊)라는 여자가 자신을 노비로 팔았다. 문서에 따르면 안씨는 양인 여자(良女·양녀)다. 그런데 ‘죽음의 세월에 살 방도가 없어서’ 스스로 남의 집 노비가 되는 길을 택했다. 늙은 어미를 봉양할 방도가 없었다. 몸값은 ‘다섯 냥’이었다. 그리고 향후 어찌어찌하여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 또한 ‘영영 노비로 판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기에 그녀는 오른손을 종이에 대고 그려서 서명을 대신했다. 김씨 성을 가진 유생이 문서를 작성하고 본인이 서명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문서번호 221788)
‘건륭 51년 12월 22일 최생원 댁 노비 유성 앞에서 문서로 밝힙니다. 흉년을 당해 팔십 노모를 부양할 방도가 없기로, 마흔 먹은 아내와 스무 살짜리 둘째아들 창운, 열여섯 먹은 셋째딸 흥련과 열두 살 먹은 아들 용운, 여덟 살인 다섯째 용재, 세 살 난 창돌이를 각각 다섯 냥씩 그리고 뒤에 태어날 일곱째 아이까지 노비로 영원히 파나이다.’
정조 10년인 서기 1786년 정일재라는 사내가 온 가족을 최생원 집에 노비로 팔았다. 이유는 ‘흉년에 노모 봉양 불가’. 아내 배 속에 있는 일곱째 아들까지. 문서에는 정일재 본인을 재주(財主), 물건 주인이라고 적었다. 문제가 있으면 관에서 바로잡는다는 문구도 보인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문서번호 167800)
‘빚을 갚을 도리가 없어 서른아홉 먹은 소인 박종숙은 본인과 마흔두 살 먹은 아내 구월이, 서른 살짜리 첩 시월이와 여섯 살짜리 맏아들과 세 살배기 둘째를 노비로 팔겠나이다.’ 건양 원년 11월에 작성한 이 자매문기는 ‘첩까지 둔’ 박종숙이라는 사람이 온 가족을 노비 시장에 내놓겠다는 문서다. 문서에는 누구 손인지는 불명인 손바닥 세 개가 그려져 있다.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자료)
1793년 정월 아기연이(阿其連伊)라는 양인 여자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흉년(大殺年)에 기근과 역병이 만연해 명을 보전 못 할까 두려워(飢饉癘疫塡壑迫·기근려역전학박) 본인과 13세 맏아들 용복, 여섯 살 먹은 딸 초래를 25냥에 팔고, 뒤에 낳을 자식들도 모두 영원히 노비로 팔았다. 아기연이의 남편 원차세와 아이들 삼촌 원명순이 증인으로 계약에 참석했다.
(규장학한국학연구원 문서번호 14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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