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 사실이 가장 잘 연구된 분야가 의학계라, 의사든 간호사든 환자 생존률 같은 지표는 최소한의 경력을 채우고 나면 오히려 경력이 쌓일수록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게 단순히 에이징 커브나 실력이 좋을수록 더 위험한 환자를 접하기 때문인 것도 아니라서, 교란 요인을 통제한 실험이나 평가에서도 경력자들의 실력 편차가 크게 벌어지는 걸로 나옴. (같은 경력자들끼리도 실력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력이 나쁜 사람도 있다는 말.)

예를 들어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진단하는 건 당연히 초보자보다 경력자의 실력이 더 나을 것 같지만, 희귀한 질병에 해당하는 엑스레이 사진을 진단하는 능력은 해당 질병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가 더 나은 경우가 많음. 이는 대부분의 엑스레이 사진은 정상이기 때문에 경력자도 현장에서 희귀한 질병의 엑스레이 사진을 접하긴 힘들기 때문임.

이렇게 경력과 실력이 반비례하는 역설은 의학계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서, 어휘력이나 체스 실력부터 여러 복잡한 기술에 이르기까지 경력, 학력 등이 최소 수준을 넘어가면 실력의 편차가 커지고 특정 능력에 있어서는 초심자보다 못한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는 아주 흔하게 발견됨.

가령 애인의 취향이나 속마음을 맞춰야 하는 실험에서도 오랫동안 만난 경우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가 정답률이 더 높았는데, 이는 연애 기간이 오래되었을수록 자신이 애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을 덜 가지기 때문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고, 지금의 애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아맞추기는 어려움.

이렇듯 경력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해온 경험이 전부라는 생각(우틀않)때문에 실력 향상의 동기가 줄어들 수 있고, 실제 현장에서도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꼭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실력이 꾸준히 향상되기는 쉽지 않음.

반대로 경력자들 중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나, 일하면서 놀랐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실력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고 함. 진시황 시절부터 고위공무원이나 장수들 주기적으로 연고 없는 지방에 뺑뺑이 돌리던 전통에도 꽤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