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vu2y8a3WMag
겨울이다. 연말과 크리스마스의 일정이 잡혀갈 시기. 마법사의 밤과 아마가미, 화이트 앨범의 계절이 온 것이다.
이제 방 안에서도 티셔츠 차림이면 추워서 몸이 떨렸다. 아무래도 발이 시려워 컴퓨터 앞에서 책상다리로 앉아있었더니 점점 무릎이 땡겨 아프다. 하루하루 미루다 결국 몇 달을 끌어버린 연재 지연 상태를 11월이 가기 전에 반드시 끝장내버리겠다 다짐했지만, 결국 12월 1일이 지나고야 말았다.
버러지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어울리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그레고르 잠자와 김혜음 둘을 세워두고 누가 더 벌레 같아 보이는지 투표를 시키면 모든 지역구에서 압승을 거두며 최고의 벌레로 당선될 자신이 있다. 그 정도로 경이로운 생활 양상이었다. 이런 인간에게 보일러는 필요 없다. 하지만 권모나와 권시드, 권보리에게는 필요하므로 20도까지만 올려놓았다.
‘당돌한 11월 재개 플랜’을 손에서 놓쳐버린 나는 극심한 자기혐오에 빠졌지만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이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태어날 때부터 이런 수준의 인간 쓰레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 단역으로 캐스팅 될 법한 폐기물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 숙고의 와중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한 단어가 있었다.
형광등.
며칠만 이따가, 며칠만 이따가 하다 결국 쌓여버린 연재 지연 시간은 반 년이 조금 넘은 정도. 생각해보면 그 기간은 원룸의 형광등이 나갔는데도 방 안은 살짝 어두운 게 오히려 분위기가 산다며 형광등을 갈지 않은 기간과 똑같지 않은가.
형광등이 나간 것과 멘탈이 나간 것. 딱 겹쳐서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에 나는 무언가 연관성이 있을까 싶어 나무위키에 접속해 전문적인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찾아보면서, 조금씩 위험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이를 테면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의 꼬리를 조금씩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경악스러운 진실을 목도하고 말았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발표한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르면, 교환해야 할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해둘 시 사회적 무질서가 필연적으로 점점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내 상황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설명에 등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나간 형광등을 교환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화장실 쪽 전등은 그대로라 충분히 환하며, 잘 때는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 스티커들이 빛나는 걸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교환하지 않은 형광등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을수록 나의 원룸이라는 닫힌 사회의 무질서도는 차가운 이론에 따라 점점 올라갔던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구나. 학교에서 배우던 것들은 그저 뜬구름잡는 소리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생활에 적용되는 지혜들이었구나. 자신의 무지함에 입술을 깨물며 나는 불이 나가있는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원흉(元兇). 그 말이 이렇게까지 어울리는 대상도 없을 것이다. 12월 1일까지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패배해온 한 버러지는, 그 적의를 향해야 할 진정한 적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그리고 또 단호히 결단했다.
good bye 어둠의 자식들.
나는 빛의 세계로 가겠다.
2021년 12월 1일의 패배자
김 혜음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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