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석양은 아름답다.
나 또한 그러하리라.
.
소름끼치는 경보음이 울린건 오후 4시, 한창 바쁘게 세상이 돌아갈 시기였다.
'1급 재난 경보, 앞으로 30분 내에 아이들을 숨기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오후 3시 58분을 기준으로, 30분 이상 태양에 노출된 아이는 포기하십시오.'
'커튼을 치고, 하늘을 보지 마십시오. 거울을 가리고, 식수를 확보하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
정부 재난 문자에 나올법한 글은 아니다. 더욱이, 바빠 죽을 것 같은 평일 4시에는 더더욱.
무슨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싸구려 괴담도 아니고, 전파납치... 아니, 재난문자 납치라도 당한건가?
회사 안의 그 누구도 이 경보를 그닥 진지하지 않게 여겼기에, 나 또한 업무에 집중할 뿐이었다.
...
바깥에 괴물이 있다.
흐물흐물한 부정형의 슬라임같은, 내 키의 반쯤 되는 크기의 살구색 덩어리.
비명소리가 들린 시점과, 괴물에게 걸쳐진 갈기갈기 찢어진 옷가지를 생각하면 이미 사람을 몇명쯤 잡아먹은 듯 하다.
끔찍한 외형에 더불어 저... 고라니와 멧돼지를 반씩 섞어놓은 듯한 끔찍한 울음소리가 날 미치게 만드는 중이다.
집에 있는 딸아이가 무사해야할텐데.
딸아이는 선천적으로 자외선 알러지가 있어, 밖에 나가지 않았을것이다.
아내가 부디 변덕을 부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
오후 8시다.
이미 저물었어야하는 해는 아직도 주홍색 석양으로 하늘을 물들이고있다.
저 괴물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불안해서 참을 수 없다.
비책이 있다.
놈들은 눈이 없는 대신, 청각이 민감한 듯 하다.
그리고, 이 회사는 점포용 알람벨 제조사다.
잔뜩 쌓여있는 벨을 한꺼번에 작동시켜서 교란시킨 뒤 빠져나가기로 했다.
살아남은 이들 중 계획에 가담한건 이주임, 강부장, 그리고 나 뿐이다.
...
결론적으로, 이주임과 강부장은 죽었다.
이주임은 그것에 살짝 접촉했다가 속절없이 빨려들어가 먹이가 되었고, 강부장은 다른것들보다 청각이 유독 더 민감했던 괴물에게 당했다.
그들은 먹히면서... 일종의 오르가즘에 도달한 듯 했다.
석양, 석양, 저물어가는 이는 가고, 떠오르는 이들을 맞이하라.
그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읊조린 문장이었다.
끔찍하군.
...
그 기괴한 꿈틀거림 속에서 무언가가 보인다.
사람의 행동거지이지만 나와같은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 괴물들과 같아지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
집에 도착했다.
피냄새가 낡은 아파트를 뒤덮었다.
아내는 죽어있었다.
아내의 시체 옆에서, 유독 새하얀 피부를 가진 괴물이 날 응시하고 있었다.
아아, 저물어가는 이는 가고, 떠오르는 이들을 맞이하라.
우리는 저무는 석양,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난 날이요...
때가 된다면 기꺼이 다음날을 맞이하리...
아집과 추함을 버리고, 새 시대의 양식이 되리라.
그렇게 석양이 지고, 밤이 오고, 새벽을 지나,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그렇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타오르는 석양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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