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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감상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9.03 21:02:54
조회 262 추천 3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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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감상을 쓰기 힘들어서 토막난 문장들로 일단 간략히 요약해보자.


단편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아마도 목향은 건록을 사랑했을 것이다. 서장경 역시. 세 사람이 전부 남자긴 하지만. (아니면 내가 이 건조한 서사에서 너무 BL스럽게 글을 보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이 세 사람의 관계가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에서 엘프들의 비틀린 애증으로 이미 나타난 적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뇌만 남은 기업 총수 건록에 의해 어릴 때부터 삶을 조작당한 목향에게 삶을 사랑할 이유는 그의 "신" 건록 뿐이었고 그 정체를 알면서도 그를 위해 사람을 죽였다. ('위하다'라는 단어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다"에 가깝다-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서장경은 목숨을 가지고 놀고 삶의 현실감을 갖지 못하는 건록을 용서하지 않았고, 계속 그를 보살펴주었다. 뇌를 적출당하고 총수로서 살아가는 건록의 삶이란 어쩌면 그 스스로가 결코 생각하지 못할 뿐, 서장경의 집착적인 애정일지도 모른다.


단편 <제발!>. 중남미 탈식민주의 비평을 보다보면 참 안타까우면서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흐름이 보이는데,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성, 제3의 길 등을 외치던 인사들이 서서히 영향력을 잃고, 우리는 기어이 전지구적 착취 사슬의 끝보다도 더 끔찍한 자리,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도 않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상관 없어진 자리까지 다다랐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얻는다. 중남미에서 염가로 들여오는 자원(물질이든, 인력이든)을 빨아먹는 미국은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 기회를 제공받은 이들은 중남미의 물질적 현실에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이고 고도화된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최소한, 대규모 클라우드 서버의 보안성 문제를 전공한 엔지니어가 대규모 도시의 치안 문제를 해결하거나 신경 쓸 이유는 없을 테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며 다달이 월급의 일부를 부쳐오다가,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떠나는 누나를 바라보는 옛 공산권 국가유공자 자식의 한탄.


여기까지가 글 자체에 대한 내용이고, <제발!>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사람이 위로든, 아래로든 무언가 회피할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뉴멕시코와 우주 사이의 충돌에서 누나는 역시 인간을 포기하길 잘했다면서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지금 이 세상의 현실성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화자는 그 모든 진실 따윈 어쨌든 그가 마저 살아야 할 삶과는 전혀 상관 없다며 누나에게 받은 돈으로 지불해야 할 온갖 비용을 생각한다. 사람이 계속 몰리다보면 그 어느 쪽으로든 도약하기 마련인데, 나는 곧잘 위로 뛰곤 한다. 어떻게 되든 신경 안 쓰겠다는 것처럼, 그러다가 삐끗해서 떨어지면 오히려 더 이상 피할 게 없어서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요즘은 아래로 뛰는 것도 생각해보는 중이지만, 어느 쪽으로든 뛰긴 뛸 테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것만큼 끔찍한 요구는 없는데, 삶의 그나마 매력적인 새로움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들이 솔직히, 마저 살아갈 만큼 가치 있지는 않다는 걸 느끼게 되니까.


단편 <Called or Uncalled>. 저자는 뒤에서 포크너, 버로스, 브렛 이스턴 엘리스(<아메리칸 사이코>)의 영향을 언급했지만 사실 나로서는 저자가 언급한 슬립스트림 문학이라는 언급 탓인지 애나 캐번의 <아이스>가 먼저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아이스>에서 얼어붙는 세상 속으로 여정을 떠나며 몇 번이고 다시 만나게 되는 소녀의 이미지가 <아메리칸 사이코>의 화자에게 착, 달라붙었다고 해야 할까. 환각제를 내뿜는 검은 꽃 사이로 나아가는 병적이고 횡설수설하는, 묘하게 현기를 내뿜는 주인공의 등 뒤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매혹적인 소녀. 아니면 사실 일본 서브컬처에서 더 직접적인 친척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이미지에 한정해서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말해도 될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화자를 부르고 움직이게 만드는 "누나"와 화자 사이의 관계에서 미묘하게,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에서 건록과 목향의 냄새가 난다. 제목 <Called or Uncalled>라는 구절은, 정확하게는 이렇게 된다. "Called or Uncalled, God is Present!" 이해할 수 없는 법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신으로서의 누나와 건록을, 화자와 목향은 사랑한다.


추가로, 정말로 이런 글이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화자의 횡설수설대는 말을-세 배를 따고 60%를 잃어, 결국 3*0.4=1.2로 20%를 딴다느니, 호페와 로스바드의 법도를 찬양하는 글을 쓰면서도 호페와 로스바드의 뜻이 너무나 두려워 차라리 케인스를 믿고 싶다느니-정말, 정말로 흥미롭게 읽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차원에서 참 병적이긴 해서. 세상의 모든 걸 진지하게 바라볼 수 없어 사회적 차원의 개념부터 시작해 감각 자체에 다가오는 물질까지 전부 환각일 가능성을 두고 바라보다가, 어쨌든 "미1친놈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시류와 부합하는 망상을 택해야 한다"는 말로 두서없이 그 한탄을 정리하고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스스로도 믿지 못해 아이러니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반쯤 진심을 담아서 "너무 높은 탑에서 태어난 사람은 땅으로부터 과하게 멀어진 나머지 땅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 (...) 할아버지 세대가 찬장과 장식장과 침대 밑 상자에 간직한 골동품들을 잊어버린 거야. (...)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아무 의미도 없는 글을 쓰면서 놀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해." 하는 고백은 꽤나 진지하다. 그게 너무 진지해서 훌륭한 넋두리로 들린다는 체념적인 반응과 별개로.


에세이 <토끼-오리가 있는 테마파크>. 어쨌든 한국인은 책을 읽지 않는다. 교양서를 벗어나면 정말로 더욱 읽지 않는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그 내용과 주장에 감탄하는 사람들과, 이를 통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꿨다고 생각하는 건 말마따나 그게 "내 집 거실에서, 내 의견을 듣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서 나를 찾아온 사람들을 상대로" 한 말이라는 걸 잊어버린 셈이다. (심리학에서 표본집단이 WEIRD라는 서양의, 교육받은, 산업사회의, 부유한, 민주적인 이들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편향성 문제를 갖고 있는 것처럼.) 글에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말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과 달리 나는 그 정도의 기대도 갖고 있진 않다. 나는 지금 읽은 글의 내장을 드러내며 그 꿈틀대는, 약간은 곰팡이 핀 굴곡을 보여주는 게 좋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과연 좋아할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토끼-오리는 둘 다 귀여운 동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토끼인줄 알았는데 오리였다, 같은 놀라운 재해석에 이마를 탁 칠 수는 있더라도, 토끼인줄 알았는데 헐벗은 여자였다,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바로 대경질색하며 비판적 시야를 발휘하는 셈이다.


나는 테마파크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잘 조성된 글. 여기에서 출발해 쭉 풀어나가 여기에서 나가면 됩니다. 나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망할 공터에 사람들을 풀어놓고 들어온 입구를 없애고 싶다. 하지만 어쨌든 그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돈과 시간을 써서 찾아온 사람들...... 시간만 써서 찾아오는 사람들조차 시간이 금인 시대다. 굳이 따지면 최근 읽은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에서 (사실 거의 유일하게나마 건진) 지적하는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글에 너무 저자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 공간은 너무 좁아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나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괜찮은 게 아닌가? 또는, 모두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잘 넓혀둔 공간이 사실 패스트푸드와 크게 다를까? 그렇다면 애초에 굳이 문학을 이런 형태로 살려놓는 이유는 뭘까? 그러나 어쨌든, 재밌게 읽었다. 이런 글을 계속 읽을 수 있다면 글을 읽는 게 늘 재밌을 것 같다.


쓰고 보니 사실 평소에 쓰던 것처럼 적당히 횡설수설하게 된 것 같다. 그래도 어차피 이걸 누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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