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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좆같구나앱에서 작성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1.29 21:10:27
조회 76 추천 0 댓글 0
														

7fed8272b4836aff51ee8ee441807073014d9adf68bb2f357aeaacc7e660fc

–슉슉슉슉슉.

앞에서 계속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있는 권법가.

게임 초창기에 나온 낡은 기본 캐릭터인데다 성능이 워낙 구려 곧잘 쓰이지 않는다.

흔히들 AI와 연습을 할 때 디폴트 캐릭터로 선택되는 탓에 샌드백이라고도 불리는 캐릭터.

그런 캐릭터가 게임을 휩쓸 수 있는 상황이 흔하지는 않다.

하물며 지금처럼 유유자적 티배깅까지 하고 있으려야 더더욱.

“하, 진짜……”

저 꼴을 즐기는 걸 보며 역전의 실마리라도 노리느니 그냥 던지겠다는 생각을 그 혼자만 한 것은 아니리라.

그게 꼭 티배깅이 열받아서만은 아니다.

[저거 그새끼죠?]

경준은 바로 캐릭터를 이끌고 아군 진지에 돌아와 걸터 앉으며 채팅창을 켰다.

[권법가 들고 양학하는 놈이 어디 널렸겠냐 백퍼지]

[하 진짜 점마는 전생에 밀레니엄 회사한테 뭐 원수라도 졌나]

[ㄴㄴ 걍 어그로꾼임 밀레니엄 겜 망하면 바로 다음 겜 가서 이 짓할듯?]

[다음 겜? 그럼 전에도 다른 겜에서 이 짓하던 거?]

웹에서 막연하게 악질 양학꾼으로 유명한 DieClown, 소위 죽음광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밀레니엄 전에 가챠겜 별로 안 해봤으면 모를지도]

[해봤어도 사실 겜 커뮤 안 보면 모르지? 누가 알기나 하겠냐 그 앰생]

[잘 모르긴 하는데 좀 더 얘기해보셈 ㅇㅇ… 궁금함]

권법가가 열심히 아무도 보지 않는 티배깅을 계속하는 동안, 정작 상대 팀은 게임의 승패는 뒤로 한 채 아군 진지에서 채팅이나 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광대의 목표가 달성됐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좋은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신규 인기 가챠겜만 나오면 오는 분탕충으로 유명한데, 돈은 거의 한 푼도 안 지르면서 온갖 편법으로 초반에 빠르게 상위권 먹고 양학에 트롤에 온갖 지랄 다 하는 거임]

[다른 겜은 솔직히 컨트롤 요소 별로 없어서 그냥저냥 넘어갔는데, 밀레니엄이 하필 손에 맞는지 이젠 그냥 여기 늘러붙어 살잖아]

[게임 돌리다가 안 잡히면 바로 끄고 갤 켜서 발광 들어가는데 그때가 진짜 꼴불견임]

[뭐라고 하면 하는 말이 더 웃김 ㅋㅋ 이딴 게 겜이냐 이거 할 바에 XXX 하지 왜 이거 함? 나는 니네가 이거 하느라 낭비하는 시간을 아껴주는 거임 이러는데 쌍또라이라니까]

[그나마 나는 맞라인전 안 서서 다행이지]

[?]

뭔가 흥미진진하게 채팅을 치고 있던 경준이 그 말을 보고 순간 멈춘다.

권법가와 맞라인전을 섰던 사람이 누구?

‘나잖아.’

[맞라인전 좀 빡치게 하긴 하죠]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야 됐다 걍 안 보는 게 낫지 모르는 게 약이란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님]

[아니 그게 무……]

–쾅!

무언가 채팅을 더 치기도 전에, 완전히 방치된 상태로 있던 진지가 기어이 상대 공격에 날아가며 게임이 끝났다.

당황한 경준은 예전 팀원에게 개인 채팅을 날려봤지만 별 대꾸 없이 잠잠한 채팅창.

다음 게임이나 돌릴까, 하는 마음조차 사라져 버린 허탈한 마음을 안고 경준은 멍하니 게임 로비에 서 있다가 VR을 벗었다.

‘그냥 직접 찾아볼까……’

경준은 본디 인터넷을 그리 자주 켜는 사람은 아니었다.

컴퓨터는 유사 게임기 혹은 과제용 도구, 휴대폰은 짧은 웃긴 영상 시청용, VR 기기는 친구들과 밀레니엄 큐를 돌리는 용.

이 단호한 삼위일체의 구성에서 인터넷이 비집고 들어갈 곳은 별로 없다.

심지어 검색조차도 이따금 아이튜브로 하는 수준이니 더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아이튜브 검색으로는 죽음광대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무언가, 자기와 엮인 불안한 말을 마지막으로 듣지 않았다면 거기서 멈췄지 않을까.

어차피 별로 유명하지도 않네, 하고.

‘……귀찮게.’

그렇게 웨이버 검색창을 켠 경준은, 원래라면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을 테다.

여러 가챠겜 위주로 활동하던 죽음광대의 인지도는 웨이버의 검색 영역에선 거의 전무한 탓이다.

[DieClown 이 닉네임 조심하세요 진짜 비매너임]

그나마 이따금, 경준이 결코 눌러보지 않았을 검색결과 10번째탭 너머로 웨이버 카페의 글이 나오는 것이 전부였을 터.

그러나 밀레니엄이라는 초인기 게임이 나온 이후, 그리고 죽음광대에게 있었던 사소한 사건 이후.

‘뭐지? 밀레니엄 갤러리?’

검색창을 거의 오늘 처음으로 쓰다시피한 경준에게조차 죽음광대에 대한 정보가 닿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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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죽광이 맨날 밀레니엄 상위호환이라고 하는 ‘그 게임’에 대해 알아보자.txt]

(대충 현재 접속률 나락 간 통계)

(대충 고인물 인성질 탈인간 짤)

(대충 VR 폴리곤 뭉개져 있는 찰흙 플짤)

흠… 그정돈가?

반면 밀레니엄은?

(대충 현재 접속률 1위)

(대충 72시간 지옥의 트롤촌 짤)

(대충 계속 확대하는데 해상도가 안 떨어지는 프랙탈 플짤)

흠………

(대충 제리가 꾸벅 인사하는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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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이게 맞냐
ㄴ별 진짜 좆고전게임 들고 와서 이 지랄인 거임 그새끼?
ㄴ심지어 이 게임 P C 지원됨
ㄴ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ㄴ(왜 워드프로세서로 게임을 하죠? 콘)
ㄴ솔직히 저 인성질 짤 사실 죽광 부계 아님?
ㄴ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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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는 죽광이 걍 아직도 잼민이 마인드에서 못 벗어났다는 거임]

(대충 웨이버 카페 캡쳐 짤 1, 2, 3)

어릴 때부터 한창 똥손 사이에서 인성질이나 하다가

손이 그래도 나쁘진 않은지 밀레니엄에서도 똑같이 하려고 하는데

어림도 없지 5성궁에 바로 삭 당하고 나면 바로 갤 켜서 쓴다는 글이 ㅋㅋㅋㅋㅋ

[게임도 못하면서 돈으로 쳐바르고 나니까 좋냐?]
ㄴㅇㅇ좋음님도하셈
ㄴ매판 십만원 지르라는 것도 아니고 주챔만 딱 맞춰서 서버비도 보탤겸 지르는 게 그렇게 아깝냐? 또라이새끼
ㄴ에휴 씨발 개돼지 새끼들 이러니까 이딴 돈빨좆망겜이나 하지
ㄴㄴ(같은 게임을 하고 그 게임 갤러리에서 글을 쓰며 하는 말)

하다못해 지 주영웅 권법가라도 5성 맞추면 궁 강화되고 좀 더 할 만할 텐데

돈이 없어서? ㅅㅂ 편의점 알바를 해도 십만원은 모으겠다

그냥 ‘게임엔 돈 한 푼 쓰기 싫어서 고집부리고 다른 멀쩡히 겜 즐기는 평범한 사람한테 심술부리고 진짜 게임에 인생 간 놈한테는 쳐발리는 잼민이’ 그 자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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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이거 주작 아님 내가 추천 누름
ㄴ이거죠ㄹㅇ;;;;;
ㄴ솔직히 밀갤 모두가 다 주지하는 사실인데 죽광 혼자만 모른다고 생각함
ㄴ닉도 어릴 때부터 쓰던 거 그대로 쓴대도 그렇지 DieClown이 뭐냐? ㅋㅋㅋㅋㅋ
ㄴㄴㄹㅇ 중2병 느낌 물씬이라 영웅 이름이어도 이상하지 않음
ㄴㄴㄴ나도 죽음광대 죽음광대 그러길래 아시발 또 사기영웅 나왔나 했는데
ㄴㄴ정보) 죽음광대는 영어로 Death Clown이어야 한다
ㄴㄴㄴ그거 얘기해도 안 들음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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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솔직히죽광한테발리면뒤지는게맞지않음?]

나는솔직히발려본적없어서잘모르겠는데ㅇㅇ;

돈까지 쓰고 지 주영웅으로 게임 ‘즐기겠다’는데

죽광 같은 게임 좋아하지도 않는 분탕충 양학러한테 찢기고 있으면

게임이 ‘즐겨짐’?

난그래본적없어서잘모르겠는데ㅇㅇ;;그냥그런거같아서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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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내말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지랄ㄴ어차피 죽광 백퍼 핵에다 매크로에다 운동보조기에다가 둘둘 둘렀을듯
ㄴ(발려본적없음) (전적레이팅승률 아무것도 안 올림)
ㄴ왜 이런 글은 맨날 통피 깡계 토르냐
ㄴ합리적 의심: 죽광 본인이 이딴 거 쓰는 거 아님?


……그것은 별로 아는 게 그리 좋지 않았을, 쓰레기통의 공허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이게?’

처음에는 대충 넘기다가도 어렴풋이 아는 말 사이에 껴 있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종종 나오며, 경준은 참다못해 다른 인터넷 탭을 켜 이를 검색했다.

그렇게 밀갤의 언어를 터득해나가던 경준의 눈에, 최신 베스트 게시글 하나가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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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현질충 응징 근황]
작성자: DieClown

안녕하세요, 밀레니엄에 돈을 쓰고 계신 밀레니엄 갤러리 유저 일동분.

그 돈의 절반의 절반만 써도 밀레니엄의 상위호환인 아이기스를 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이미 하고 있던 게임을 접고 다른 게임으로 바로 옮겨가기에는 매몰비용 탓에 거부감이 큰 것도 사실.

그래서 매일, 그게 다 부질 없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활동을 하고 있는 DieClow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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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보던 글과는 정반대로, 모르는 말은 하나도 없지만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다.

그 머릿말을 보며 글을 쭉쭉 내리다 나온, 무언가 익숙해 보이는 영웅과 게임 플레이 화면.

자신이 플레이하던 게임을 정반대편에서 본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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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상대하신 분은 로망 가득한 대마법사.

로망은 충분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어버린 탓인지 무려 4성짜리 대마법사입니다.

(대충 온게임 라인전 압살당하는 플짤)

(대충 개박살난 전체 전적)

(대충 웃고 있는 권법사 콘)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처음부터 이분이 대마법사로 이렇게 돈을 쏟지 않았다면?

단순 계산을 해보아도, 주요 픽업 기간에 대마법사를 중복해서 뽑을 확률을 계산해보면 이만큼이 나오는군요.

어머나, 오늘 이렇게 발리기 위해서 이렇게나 많은 돈을 썼다니!

하지만 안심해도 좋습니다, 지금이라도 아이기스를 하면 그럴 일이 없거든요.

실제로 아이기스에도 밀레니엄의 대마법사와 비슷한, 밀레니엄이 거의 베껴오다시피한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매그니피션트죠!

(대충 아무도 안 읽는 매그니피션트 영웅 소개 및 공략글)

도움이 되셨다면 밀레니엄을 삭제하고 아이기스를 설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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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지1랄났다진짜
ㄴ이거 언제까지 함? 이딴 게 재밌음?


밀레니엄 갤러리에서 죽음광대의 글은 이미 일상이 된지 오래다.

어떤 의미에서, 하루라도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오히려 밀레니엄이 기어이 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정도.

이 갤러리를 하는 이들이 그렇듯 하루 N시간 이상을 붙잡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 말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불편함 정도일 뿐.

그래서 주변의 반응도 또 이딴 의미없는 헛소리를 도배하고 주작해서 추천글로 올려놓았다라는 정도일 뿐이다.

‘하……’

그러나 애석하게도 경준은 밀갤의 주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죽음광대라는 이 트롤러를 쫓아 막 갤러리에 진입한 외지인으로서, 죽음광대의 어그로는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경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댓글 작성란에 풋풋하기 짝이 없는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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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그런 거 전부 따지고 있으면 게임 왜 해요? 그냥 인생 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돈도 덜 쓰는데 아예 그냥 다 끄고 인터넷도 끄세요. 애초에 인터넷에서 이러고 있는 거 보면 현실에서 비슷한 말 듣고 있는 거 아닌가요? 친구들은 뭐라고 안 해요? 친구가 없으려나? 안 봐도 외모도 뻔할 테고, 학교는 안 가요? 직장은 있어요? 당신이 뭔데 이딴 글이나 쓰면서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 작성하면서 맞춤법이 틀리거나 오타가 나면 빠르게 수정까지 한, 진심을 담은 댓글.

별 생각없이 죽음광대의 댓글에 욕을 달려고 들어온 원주민들조차 기겁하게 만드는 순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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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시,,,시발이게뭐냐
ㄴ이것도 템플런임?
ㄴ이새끼는찐이다ㄹㅇ;;
ㄴ반응 보니까 얘가 그 쳐발린 애 중 하나인 거 같은데?
ㄴㄴ그것도 노린 거임
ㄴㄴㄴ사실 이 댓글도 노린 거임 ㅇㅇ;


반어와 아이러니가 가득한 갤러리에서 진심은 어떤 가치도 없었다.

진심을 외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고도의 비꼼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이 댓글은 어떤 반향도 낳지 못한 채, 위아래로 쌓인 수많은 뻘댓글과 뻘이모티콘에 묻혀 사라져갔다.

“……씨발.”

원 작성자, 죽음광대의 마음속에서만 빼고.

“네가 뭔데 그딴 식으로 말하는데, 개새끼야……”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약간 느린 고물 컴퓨터를 붙잡은 채,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누를까 말까 서성이는 파리하고 가녀린 손.

그 위에는, 긴 앞머리를 이빨로 질겅대는, 짙은 다크서클로 인해 빛바랜 청순한 얼굴의 소녀.

애석하게도 엄밀히 말해 경준의 말은 대부분 틀렸다.

그녀는 그럭저럭 괜찮은 학교를 나왔고, 그럭저럭 외모도 나쁘지는 않았고, 직장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으니)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당당하게 O라고 하기에는 그녀 마음한구석이 영 찜찜해지는 게 있었으며……

“죽을까.”

……수많은 욕댓글과 욕 게시글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던 그녀는, 지금 분명히 긁혀 있었다.

“죽으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 아닐까.”

멍하니,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

윤민수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소년이다.

친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방구석에서 이상한 게임을 오래 하기는 하지만 심각할 수준은 아니다.

대학을 엄청 잘 간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은 알 만하다.

집안에 돈이 가득한 것은 아니지만 부족하지는 않다.

인터넷에서의 삶을 본다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냥 이상하다 정도에서 끝날 테다.

멀쩡하게 사는 사람이 컴퓨터나 휴대폰을 붙잡고 게임을 하다가 키배를 뜨는 게 한심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극적으로 사람을 망칠 수준은 못 된다.

윤수빈은, 그럭저럭 인생을 망친 듯한 소녀다.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가 된 친구와 이야기하는 게 낯설어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다.

방구석에서 하는 이상한 게임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게임이 된데다, 집착도 심각해졌다.

도저히 대학에 나가질 못해 온라인 휴학서를 낸 뒤로 학력은 영영 재학 중으로 얼어 있다.

주말이든 명절이든 집에 한번 오지 않으면 더 이상 용돈을 주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선언 이후, 알바도 하지 않아 계좌는 줄어만 가고 있다.

현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무도 없는 새벽에 몰래 조깅을 하다가 누가 보이기라도 하면 돌아오는 것 뿐이니, 남은 시간은 컴퓨터, 휴대폰, VR 셋만으로 구성된다.

그나마 웹소설을 보다가 자신이 일종의 TS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윤수빈은 이를 조금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체인질링, 하이잭, 바디스내쳐, 어떤 쪽이든 상관없다.

몸을 빼앗겼다.

윤민수는 윤수빈이 미웠다.

사실 윤수빈의 몸을 자신이 빼앗은 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원하지도 않는 몸을 빼앗은 바람에 자기 삶이 망했다면, 대체 어쩌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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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왤캐 게임을 못함?]

어쩔 수 없이 같이 겜하는데 뭐 밀레니엄 킨 것도 아니고 캐주얼한 거 하는데도 숨막히네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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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ㄹㅇㅋㅋ
ㄴㄹㅇㅋㅋㅋㅋㅋ
ㄴ게임‘을’(X) 게임‘도’(O)


반면 인터넷에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밖을 돌아다니면 바로 시선이 끌리고 스스로의 변한 몸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달리, 인터넷에서 수빈은 확실히 민수에 가까웠다.

생각하는 게 그런 식인데 글을 작성하기만 하면 다를 이유가 없다.

사실, 오히려 조금이라도 그걸 느낄 수 있게끔 예전보다 여자한테 공격적인 면도 있었다.

그래도 그게 너무 과하지는 않고, 조금 과격한 남자애가 쓸 법한 글을 쓰는 선에서 끝났다.

[승리!]

게임 속에서는 더더욱 민수에 가까웠다.

PC로 하는 아이기스는 어줍잖게 VR로 이식된 아이기스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고, 안 그래도 하는 이 없는 아이기스에서 수빈은 늘 쉽사리 승리를 챙겼다.

다른 일을 안 하고 간단한 운동과 게임만을 반복하며, 수빈은 좀 더 좋아진 반사신경과 여유롭게 돌아가는 머리의 힘을 빌렸다.

아이기스와 유사하지만 VR로만 돌아가고, 가챠 시스템을 넣어 영웅을 강화할 수 있고, 조금 더 시스템이 복잡하지만 그래서 편법 찾기는 훨씬 쉬운 밀레니엄에서도 그럴 수 있었다.

어쨌든, 게임을 잘하는 남자만큼 젊은 한국 남자스러운 것이 없다.

최소한 수빈의 머릿속에서는 그랬다.

그래서일까, 어릴 때에 조금 하던 취미가 훨씬 더 독해졌다.

가챠 게임을 욕하고 좀 더 사람 손이 많이 타는 패키지 게임을 숭배하던 취미가 밀레니엄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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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제일 돈버리기 대회 우승자]
작성자: DieClown

안녕하세요, 밀레니엄 갤러리 유저 일동분.

오늘도 갤러리의 글을 돌아보며 통탄스럽기 짝이 없는 글들이 여럿 보이더군요.

이런 쓰레기 게임에 쓰기에는 아까운 시간을 내어 짧게나마 글을 써봤습니다.

지폐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사람들의 멋진 슬랩스틱, 지금부터 관람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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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돈을 쓰고 그걸 인정해주려는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바로 이를 욕하는 글을 썼다.

안 그래도 게임성이 떨어지는 쓰레기 게임인데, 심지어 똥손이 돈빨로 게임을 이긴다?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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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죽광 개쳐발린 게임…sex]

아니나 다를까 무료3영웅 랜덤으로 꼴선픽을 박아버린 상황

바로 확정메즈를 강화궁으로 박는 암석정령을 가져온 상대

이게 하위 티어였으면 그래도 강화궁을 아예 안 맞으면서 게임이 됐겠지만

상대는 죽광이랑 동급+a

라인전 단계에서 피말리다가 한타 들어가자마자 강화궁으로 얼고 바로 대규모 메즈 들어가면서 게임 터지고

어떻게든 사이드+스톨링+졸 끊기로 버티면서 성장해보려 했지만

바로 사이드 1:1 강제로 열리면서 그대로 대가리 휘어잡고 컷!!!!!!!!!!!!!!

(대충 페페 팝콘 폭포 터지는 짤)

(앞으론 대들지 마라 하는 차드 짤)

(대충 권법사 주먹질 어버버 허공에 하면서 원거리 딜 쳐맞다가 죽는 플짤)

(으어어…… 하고 신음 흘리는 차드 짤)

죽광 <<<<< 그냥 하위티어에서나 먹히는 똥손으로 상위티어 가자마자 쳐발리는 강약약강 갓겜충 병신 물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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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DieClown: 1대1 ㄱ
ㄴDieClown: 1대1 ㄱ
ㄴDieClown: 왜 말이 없음 그 똥손이 함 뜨자는데
ㄴDieClown: 쫄리냐? 쫄리냐? 쫄리냐? 쫄리냐? 쫄리냐? 쫄리냐?
ㄴDieClown: 병신
ㄴㄴ애꿎은 애 괴롭히지 말고 나랑 뜨든가 그럼
ㄴㄴㄴ왜 여기서 댓글이 뚝 끊긴 걸까요? 메모가 레이팅 이천플마로 되어 있어서?? 절대 그런 건 아니겠죠????
ㄴㄴㄴㄴ와 시발 진짜 존나 추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일이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수빈은 밀레니엄이라는 게임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게임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외적 부분이나, 게임 한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내적 부분 둘 다, 넘쳐나는 시간으로 씹고 뜯기에는 충분했다.

어쨌든, 수빈은 지식 측면에선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린 결론은 매우 상식적인 판단.

한번 강화될 때마다 기본 스탯이 올라가고 최고 단계에서는 아예 스킬 자체가 달라지는 이 밀레니엄이라는 쓰레기 게임에서, 0성 기본 영웅들만으로 완승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혹시라도 ‘진심’으로 그런 상대와 승부를 봤다가 지기라도 하면, 민수로서의 자존심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수빈의 플레이는 대체로 야비하거나 비정석적이었다.

정통 플레이를 하며 정석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손실을 버리는 식과는 달리, 한번 통과하면 이득이 크지만 실패하면 게임이 터져버릴 만한 도박수들.

게임 시작 후 2분 만에 보스몹에 머리를 박고 한 번 죽으면서 부활 후 바로 복귀해 간당간당한 피로 보스몹을 잡아버린다거나.

아예 안전 지대에서 나오지 않은 채 졸개를 강화해 라인을 밀어둔 채로 다른 라인에서 갑자기 나타나 다른 라인을 터뜨려버린다거나.

미묘하게 맵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스킬을 쓰며 스택을 쌓다가 갑자기 터뜨린다거나.

통하면, 상대가 5성이 아니라 175성이어도 게임을 가져갈 수 있다.

[서렌 ㄱ]

안 통하면 다음 판을 돌리면 그만이다.

뒤가 없는 플레이 방식 자체가 매우 민수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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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에겐 같은 기술이 통하지 않아!]

게임 시작하고 3분차……

진짜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해서 벽에다 논타겟 스킬 날려봤는데

바로 체력1 상태로 흩어져 있던 죽광 본체 발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예전에 이걸로 날먹당했는데 두번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

점수 고맙다 죽광아 잘 빨아간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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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아그저아무도모르는초견살날먹빌드 아니면 아무도 못 이기는 ^죽^
ㄴ이런 글엔 또 귀신 같이 댓글 안 달듯ㅋㅋㅋㅋㅋㅋㅋㅋ


……약간 수치스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게다가 수빈은 이런 글을 꼭 싫어하지만은 않았다.

우스운 일이지만, 현실에서 모든 친구를 잃어버린 기분을 받던 수빈에게 인터넷, 특히 밀레니엄 갤러리는 일종의 유사 친구 단톡방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줍잖은 허세를 부리고 그게 통하면 잘 된 일이고, 못 되어서 한심하단 욕을 먹어도 그게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

오히려 그런 욕을 먹지 않으면 약간 아쉬워서 괜히 좀 더 욕을 하고 긁어보다가 원하는 반응이 오면 그제야 기분 좋게 게시글을 끄고 다시 게임을 돌리는 식이다.

죽음광대라는 닉네임과 친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자기와 너무 친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불편했을 것이다.

친한 사람끼리는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 거라서.

물론, 수빈 본인이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죽음광대가 적당히 욕을 먹는 지금 상황은 나쁘지 않다.

온 갤러리가 자신을 주목하며, 실력은 적당히 있지만 인성은 나쁘고, 또 엄청나게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과도한 추앙으로 반발을 사지도 않는, 심술꾸러기에게 딱 맞는 상황이다.


––––––––––––––––––––––––––––––––––––––––––––
[근데 죽광 솔직히 매크로꾼 아님?]

게임이야 머 적당히 잘하겠지 ㅇㅇ;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 큐 돌리는 시간이랑 별개로 재화까지 시간 박으면서 캘 수 있을리가 없음

그 시간에 뭐 이상한 빌드를 깎든 삶을 살든 뭐라도 해야 할 텐데

밀레니엄 입문한 놈들 대가리 깨는 노가다를 돈 한 푼 안 쓰려고 매일 풀로 돌린다?

중국에선 업자들이 사람 써서 돌려서 파는 그거를?

흠………

(대충 페페 고민하는 짤)
––––––––––––––––––––––––––––––––––––––––––––
ㄴ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ㄴ어차피 또 귀신같이 숨어서 답글 안 달 예정ㅋㅋ
ㄴ(내가 손이 딸려서 핵을 켰냐? 콘)
ㄴ(아무튼 노가다도 실력입니다 콘)
ㄴ돈 주고 샀다고 해도 매크로 돌렸다고 해도 븅신같네


본격적으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뒤흔들려 하는 이런 글만 아니라면 말이다.

통칭 재화라고 불리는 갖가지 제물은 일종의 소비 아이템으로, 저마다 다른 스탯 보정 및 능력을 갖고 있어 한 게임에 세 개까지 들고 올 수 있지만, 게임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 수급처는 두 곳인데, 하나는 일종의 협동전으로 끔찍하게 재미없고 반복적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아직 게임을 얼마 하지 않은 초보자들은 아예 들고 오지 않거나 하나만 쓰기도 하지만, 당연히 세 개를 전부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 재화는 현금을 쓴 뽑기에서 곧잘 퍼주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흠……’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
[비인가 프로그램 관련 음해 해명]
작성자: DieClown

안녕하세요, 밀레니엄 갤러리 유저 일동분.

오늘도 게임 수준에 걸맞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글을 씁니다.

무엇을 했느냐를 증명하는 것이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를 증명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차라리 매크로를 돌리며, 이런 쓰레기 게임을 위해 직접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으리라 생각하기는 합니다.

허나 진실을 왜곡할 수는 없는 법,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제 VR기기의 메타데이터를 일부 공유합니다.

그 어떤 외부 프로그램도 접속한 흔적이 없는 새 기기이기에 여러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애초에 재화를 매번 구할 필요 없이 PC로 플레이할 수 있는 아이기스가 있다는 걸 여러분, 알고 계셨나요?

아마 모르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이기스의 선진 재화 시스템을 소개하겠습니다.

(대충 아무도 안 읽는 매뉴얼 복붙글)

감사합니다.

아이기스 유저, DieClown 올림
––––––––––––––––––––––––––––––––––––––––––––


다시 생각해보면, 고민이 조금 더 길고 행동도 조금 더 느렸어야 할 법한 선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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