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선지를 모르는 열차에 무단승차한 세 사람은 이것저것 무언가 잡담을 하며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고, 잡담의 화제는 엉겁결에 전술적인 것으로 넘어갔다. 그 시작은 엘란의 의문에서부터 출발되었다.
“하지만, 통상 교전에서 참호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참호는 어디까지나 은폐를 주 목적으로 하는 방어용….”
“통상교전에서 참호 활용은 당연한거 아닌가? 애초에 참호의 개념이 해자에서 출발한 만큼….”
“어이, 이봐. 참호가 해자에서 출발했다는 건 어느 개소리야??”
남자가 데일리잇의 말을 끊고 끼어들자, 데일리잇은 당연한 소리를 말해야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댁들이 무슨 상식을 갖고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애초에 우리 대륙 쪽에선 참호는 대규모 회전에서 최전선이 돌파당했을 시를 대비한 개념에서 시작했어. 공성전의 해자에서 확장한 개념이랄까? 다리 깊이까지 땅을 판 뒤, 판 흙은 전방 쪽에 쌓고 다지고, 적이 다가오는 방향에서 쉽게 타고 넘어가지 못하도록 끝을 날카롭게 한 가시장벽을 설치하는 방식이지.”
“뭐?”
“최전선에 선 부대가 돌파될 시에, 1차적인 방어선 역할을 하여 적의 돌파력을 상쇄시키고, 적이 주춤했을 시 역습을 걸 수 있는 구조물로서 시작된 게, 참호 아니야?”
데일리잇의 설명에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소리를 들었으니, 남자의 성격 상 곧바로 반박이 튀어나왔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참호는 당연히 주둔지점에다 설치하고 버티라고 있는 거지! 무슨 전장 한복판에다 그런 걸 깔면서 한다고 그래?”
“오히려 내 쪽으로선 댁이 이해 못 하는게 더 이상한걸. 그게 당연하다구. 그래야 기동성을 살린 병종이 돌파하지 못하고 우회로를 찾게 눈을 돌리는 거지.”
하지만 데일리잇은 당연한 걸 왜 당연하지 않다는 듯 말하냐는 식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을 끌어모으며 반박에 나섰다.
“임마, 그런 식으로 나가면 적군은 가만히 있냐? 당연히 머리 위에 화살이나 뭐 갖다 쏟아부을 거 아냐? 그리고 댁들 마법사도 있다며? 걔네들은 어떻게 할 건데?”
“그야 당연히 참호전술엔 방패를 지붕 삼아 구축하는 것도 있지. 4인 1조 체제로 2명의 방패는 하늘로 돌리고, 2명의 방패는 가로세워서 전방을 막고. 방패벽은 참호의 기초 운용교리야. 무슨 군대가 골 빈 허수아비들인줄 알아? 그리고 마법사나 포병대를 상대로 한 참호전술은 이거랑은 다르지. 이건 어디까지나 초기 참호전술이니까.”
물론 데일리잇은 자신이 알고 있는 참호라는 개념의 시초에 대해서 설명했었다. 데일리잇이 알고 있는 최초의 참호전술은 그가 설명한 것에서 시작되었고, 전쟁에서 마법사들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던 시기와 화약식 병기가 도입되면서 여러 갈래로 변화하여 현재 사용되는 참호전술에 도달했다는 것이 데일리잇의 지식이었다.
물론 남자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일 뿐이었다.
“나 참, 그게 말이나 되냐고.”
“아니, 그럼 댁은 참호가 대체 뭐 어떤 거라고 알고 있는 거야?”
“직사형 투사무기인 총이 표준 장비로 채택된 뒤에, 탄을 엄폐하기 위한 방어선이 참호지. 그리고, 이 무식하게 생긴 쇳덩어리는 그 방어선을 뚫어보자는 거에서 시작한 물건이란 말이야. 대포도 본격적으로 활용된 시기인 만큼, 포격에 노출되지 않도록 깊게.”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진리라도 되는 양 그렇게 대꾸했지만, 데일리잇은 오히려 그런 남자의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허점을 짚었다.
“그게 오히려 말이 안 되지. 깊은 참호를 사용하면 역습을 어떻게 하자는 거야? 상황 봐서 적의 기세가 꺾일 때 타고 넘어가야하는 판에. 묏자리도 파는 거냐?”
“당연히 반격용이 아니니까 그렇지.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전술이라니까 그러네.”
“아니, 그렇게 방어선을 짠다 쳐도 포병이나 마법사 병단이 두들기면 고개도 못내밀 거 아냐? 그 사이 보병대가 느긋하게 접근해서 머리를 검으로 내려칠 상황이 뻔히 그려지….”
“그러니까 우린 보병대가 아예 라이플로 무장되었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그 포병대가 두들길 걸 대비해서 최대한 깊게 파고 방호물도 세운다고. 무슨 바본 줄 아냐?”
사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렇게 맞부딪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데일리잇이 살고 있던 대륙의 전술과 남자가 있던 세계는 전혀 다른 곳이다. 발전 방향도 다르고, 상대방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조건 속에서 발전한 전술이 동일할 리가 없었다. 기초적인 것은 비슷하겠지만, 남자나 데일리잇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개념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다.
데일리잇과 다른 마법사들이 왔던 서쪽 대륙에선 마법이라는 개념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세계다. 마법사들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던 시기가 도래하게 되자, 대규모 밀집병력은 그야말로 마법의 제물이 되기 딱 좋았고, 이어서 등장한 대포의 추가로 밀집형 전술은 한 번의 포화에 병사들을 날려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간격을 넓혔다간 그대로 대열이 돌파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최전선에 맞붙은 대열은 최대한 밀착하는 대신, 후위에 세워진 대열들부턴 대열과 대열 간의 간격을 넓히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데일리잇이 말하는 참호전술은 이런 상황 속에서 쉽사리 돌파당할 수 있는 앞 대열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전세를 최대한 막기 위한 방식이었다. 물론 참호가 움직일 순 없지만, 어차피 대규모의 포격이 투입되는 전장에선 그만큼 후위에 세워진 대열 수가 늘어나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게다가, 서쪽 대륙의 주력 무장은 아직 근접형 병기다. 붙어야지 쓸 수 있는 근거리 병기로 무장된 병사들이 주력인 이상, 이런 식으로 고착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총은 있지만 운용하기엔 아직 발전 수준이 미미하고, 그 총이 발전되는 것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마법사들이 하고 있다.
물론 남자의 세계에선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되었다. 애초에 무기 자체가 달라졌기에 그 무기에 맞춰진 전술이 도입되었다. 그러니, 데일리잇이나 남자나 상대방의 세계의 전술에 대해 이해를 못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총이라는 게 좋아보여도 보급이 그렇게 만만하게 되나? 탄환에 화약만 해도 환장하기 직전까진 가던데 말이야. 뭐 보급이 된다고 해도 실용성은? 연발총이라고 쳐도, 장전은 해야 할 거고, 장전시간은 당연히 장전 수만큼 해야 할 거잖아. 그걸 전쟁에서 써먹을 수는 있기나 하냐? 활 몇 대 쏘는 와중에 총알 하나 가는 수준인 판에 뭘 더 원해?”
“야, 임마. 너 싸울 때 내 장전속도 때문에 쩔쩔매던 놈이 그런 소리가 나오냐?”
남자가 자신의 라이플을 데일리잇의 면전에 들이밀자, 그제서야 자신이 된통 당했던 기억을 떠올린 데일리잇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하긴 그 정도 장전속도면 충분히 되긴 하지만… 그렇게 소모된 탄은? 일일이 만든다 쳐도 보병 한 명이 쓸 총알 개수가 장난이 아니겠는데?”
“그야 당연히 대량으로 뽑는 기술이 있으니 되는 거잖아.”
더 이상 설명해주기도 지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데일리잇은 그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럼 댁들은 대체 전쟁을 어떻게 하는 거야?”
“설명해줘봤자 니놈이 알아들을 수준이 아냐. 애초에 사용하는 무기 자체가 개념이 다르니까.”
“전쟁이 거기서 거기지 뭐가 또 다르겠어?”
“너같으면 눈에 뵈지도 않는 산 너머에서 포탄이 날아와서 근방을 불바다로 만드는게 상상이 되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지 그래.”
“거 봐, 임마. 넌 말해줘도 평생 이해 못한다니까 그러네.”
저기선 일종의 전장에서의 해자개념으로 탄생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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