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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후쿠오카 여행기 02

‘파타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1.25 19:55:42
조회 704 추천 18 댓글 48
														

(많관부)(많은관심부탁이라는뜻ㅎ)


이후 체크인까지는 계속 짐을 끌고 다녔는데, 하카타항 인근의 교통은 생각보다 일본스럽다기보다는 한국스러운 모습이었다. 오전 일찍 회사원이나 선원들이 자주 오가느라 그런지 교통 신호를 딱 '지키기는 한다' 수준으로 준수하면서 초록불이 켜져 있는데 횡단보도를 빠르게 지나가며 내 바로 앞까지 와서야 차가 코를 보도에 들이민 채 기다리고 있는 그 정겨운 모습이란. 그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사진이나 찍고 있을 노릇일 수는 없으니 찍을 수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후쿠오카에서 제일 찍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도쿄에서는 못 느꼈던 인간미가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 육식맨 유튜브에서 일본 시골 식당에 갔다가 뱀술 따위를 권해주고 있는 걸 보면서도 느꼈지만, 동북아가 새삼 참 서로 깍쟁이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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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근처 나가하마 수산시장의 오키요 식당에서 고마사바(참깨 고등어회) 정식에 아지타이(옥돔) 프라이를 먹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돼지인 편이라 거의 식사를 꼬박꼬박 잔뜩 먹다시피 했다. 대체로 교통수단을 따로 안 쓰고 걸어다닌 편이라 소화는 아무 문제없이 다 됐긴 하다만...... 배가 7시 반에 도착하고 식당은 9시부터 시작이라 도착한 뒤에도 앞의 의자에 앉아서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기다리는 동안 일본인 노부부가 앞의 메뉴를 보더니 야스이!(싸다) 하고 외치면서 함께 기다리던 게 조금 웃겼다. 바로 옆 자리에는 나처럼 혼자 온 일본 청년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뻐드렁니라 새삼 일본 치열이 참 특이했다는 게 떠올랐다. 교정기를 끼고 있어서 특이해 보인다고 싫어하는 아이는, 사실 그걸 안 끼고 있을 때보다 훨씬 고와보일 거라는 걸 모르겠지, 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뭐 외모가 딱히 잘난 것도 없으면서 속으로 흉을 보고 있었다. 


고마사바와 아지타이 프라이 둘 다 무척 맛있었다. 다만 아지타이 프라이는 약간 맛있는 명태 생선까스처럼 느껴졌는데, 이래서 내가 튀김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다. 튀김은 재료가 어떻든 약간 균일하게 저점을 보장해주는 느낌이라 '막 나온 튀김'이라는 큰 틀 안에서의 맛이 크게 달라지는 걸 별로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이 튀김이라는 요리는 이제 막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서서히 그 품질 경합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만, 모든 요리가 다 그런 것이 튀김은 유독 기름 쩐내 탓에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있자니 슬슬 한국인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아, 역시 후쿠오카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야 솔직히 서로 얘기할 일이 있으면 한국인이 근처에 있는 게 속 편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조금 낯부끄러운 관광객과 함께 있었던 이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쨌든 그건 지금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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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천천히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며 공원을 돌기도 하고 근처 후쿠오카 성터를 돌아보기도 하며 나아가다가 후쿠오카 미술관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쉽진 않았는데, 불현듯 주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전거나 좌측통행인지 우측통행인지 알기 어려운 조깅하는 사람들이 주변을 오가고 있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약간 민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니까 민폐인 건 내가 아니라 존재감도 없이 뒤에서 속도를 내며 오던 자전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다 갖고 있었던 탓이다. 물론 일본에 왔으니 입만 열면 스미마셍, 시쯔레시마스 따위를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다만 다행히 그럴 일까지는 없었다. 이 마음고생은 미술관에 도착해 코인락커에 짐을 다 던져버린 뒤에야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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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미술관은 일본 대형 미술관이 으레 그렇듯 상당히 잘 관리되어 소장품도 상당한 편이었다. 몇 가지는 사진을 찍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사진 촬영은 엄금이라 찍을 수는 없었고, 개중 사진 찍을 수 있는 것 몇 가지를 찍어보았다. 처음은 주변 시민의 출품작 중 웬 쿠로미가 떠오르는 멘헤라 캐릭터가 있어서 조금 웃겨서 찍어 보았고, 그 다음은 모나 하툼이라는 웬 팔레스타인 예술가가 설치해둔 <+와 ->라는 예술 작품으로, 저 기계 날개가 모래 위를 천천히 돌아가며 한쪽으로는 굴곡을 없애고, 다른 한쪽으로는 굴곡을 만들어 나간다. 한국 카페 <타임 투 비>에서 비슷한 모래 시계 같은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본 것처럼 멍하니 저 날개가 몇 바퀴 회전을 하는 걸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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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신기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처럼 실제로 그림을 현장에서 그리면서 그리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이쪽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라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것 같았는데, 모양새를 보면 사진에 비해 상당히 아름다워서 이 대규모로 길게 뻗은 그림의 완성품을 보진 못한 게 약간 아쉽다가도, 그림의 구성 자체가 지금처럼 어느 정도 빈 것처럼 완성될 듯해서 지금 상태에서 이를 본 것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 화가 웹사이트에서 퍼온 그림으로(링크), 재일교포가 그린 일본의 단정함과 그 단정함을 위해 부조화를 교정하는 잔인함이 배경에 언뜻 보이는 한국계 선전 포스터를 뒤덮고 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는 사실 유명한 걸로 유명한 듯한 팝아트 작가(리히텐슈타인, 워홀 등)나 별 감흥은 없는 습작 따위를 보면서 이걸 소장하고 있다니 돈이 아깝다는 약간 속물 생각을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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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숙소로 슬슬 가는 길에 적당히 근처 카페에 들려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책을 읽고 시간을 보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솔직하게 얘기해서, 커피나 간식이 맛있었다면 기억해두지 않았을까?-그래도 사이폰으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처음 봐서 신기해 사진을 찍어두었다. 함께 읽고 있던 미시마 유키오의 <새벽의 사원>은 앞으로 일본 여행에서 두고 두고 함께 할 악우로 남았다. 일본에 가니까 그래도 책은 일본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며 들고 온 책 중 하나인데-다른 책으로는 마이조 오타로의 <연기, 흙, 혹은 먹이>와 후쿠시마 료타의 <나선형 상상력>이 있고 전자는 배에서 전부 읽은 상태였다-책이 영 애매해서 그만. 미시마의 <풍요의 바다> 4부작 중 세 번째 편에 속하는 이 책은 기존 두 권과는 달리 배경도 태국, 인도, 전후 일본(곧, 미군 점령기의 준-미국화된 일본)이라 구성도 구성이거니와 일본에서 읽는 의미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내용도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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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탕테이루 후지라는 이름의 식당에 갔다. 소의 혀(탕) 및 꼬리(테이루)를 전문으로 파는 듯한 곳으로, 식전에 간단하게 나온 오코시와 감자 소주를 한 잔 하고, 소꼬리 구이 및 소혀 구이를 먹은 뒤 소꼬리 라멘에 감자 소주를 또 한 잔 했다. 소주 이름을 기억해뒀으면 좋았을 텐데, 이곳에서는 정말로 일본어 외에는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보니 뭘 제대로 기록해두지는 못했다. 감자 소주는 처음이었지만, 두 잔 모두 나름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구마도 감자도 '이모'라고 부르는 건 대체 왜? 분명 그 앞에 다른 말이 더 붙지 않았던가?) 소혀는, 한국에서 왜 굳이 취급하진 않는지 알 수 있었다. 탄력감 이외에는 큰 매력은 없었다. 소꼬리 구이는 매우 맛있어서 소꼬리 라멘도 함께 시켰던 것인데, 이 라멘이 한가운데에 있는 새콤한 우메보시와 어우러져 정말 괜찮았다. 에그누들을 사용해서 그런가 약간 한국 <칭키면가>의 완탕면이 생각나는 듯한 맛이기도 했고, 한국적이지는 않은 느낌으로 소꼬리 사골을 우려내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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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한 바 Rummy에 가서 럼주를 마셨다. 세보니 8잔 정도를 마셨는데 금액이 아마 만삼천엔 정도였던가. 확실히 일본이 취급하는 주류의 종류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고 세계에서 제일 술 큐레이션에 유리한 것 같다. 마셨던 술들도 영국 식민지의 Rum 뿐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의 Rhum, 스페인 식민지의 Ron 등 다양한 것들이라 이런 것들이 실제로 일본에 들어온다는 것도 참 신기했고, 바텐더 분도 실제로 여러 국가에 다녀와 술을 마셔보고 가져오신 듯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또 하나, 드디어 영어가 통하는 곳이기도 했다. 일본어를 잘 못하는 입장에서 혼자 일본을 다니며 소통을 하고 있으면 손발이 묶인 듯한 기분이 강했는데, 오죽하면 차라리 미국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때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해야 할까. 여러 곳에 다녀온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 영어를 잘 말하지는 못해도 듣는 건 문제 없이 하신다고 해서, 일본어를 하다가 도저히 표현이 생각이 안 나면 그냥 영어로 문장을 말하는 등 그럭저럭 좀 막힌 입을 풀어놓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신 럼의 종류는 앞에서부터 쿠바의 Santiago de Cuba (마찬가리로 쿠바 럼인 아바나 클럽 마에스트로와 비슷한 단내가 풍기는데, 내가 마셔본 럼 중 이 럼을 제일 좋아해서 첫 잔으로 참 반가웠다), 페루의 Ron Millonario (향은 향긋한 쪽이든 고약한 쪽이든 훨씬 더 미미하되 달다), 라오스의 Laodi 56k 화이트 럼(화이트 럼이라 맛보다는 향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 과들루프의 Damoiseau (프랑스 Rhum의 향이 궁금했는데, 실제로 화사하다), 가이아나의 Versailles (마찬가지로 백합내가 화사하게 풍기는 프랑스 Rhum), 자메이카의 Requiem (은근한 단맛과 바닐라향 뒤로 씁쓸하게 풍기는 아교의 냄새와 쌉쌀한 뒷맛의 영국 Rum), 콜롬비아의 Dictador Episodio (안 그래도 단 럼을 포트 캐스크에 넣은 더 달달한 럼이라 디플로마티코가 떠오르던...), 그리고 자메이카의 Hampden (이쪽은 이제 셰리 캐스크에 넣어서 PX 셰리의 건포도 느낌이 사탕수수의 단맛에 더해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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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다 떨면서 근처 손님이랑 같이 바텐더와 얘기하며 계속 마시고 있자니, 근처 손님이 자기도 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며 일본 소주 회사 명함을 주고 떠났다. 일본어도 어색한 손님과 일본어+영어로 소통하는 게 참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게 좋은 걸로...... (별개로 일본인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위압되는 게 느껴질 정도다. 잠시 살짝 악취미로 일부러 영어를 좀 길게 말해보다가 그 분위기가 확 와닿을 정도라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한국어에도 영어 단어가 많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처럼 온 간판에 다양한 유럽어가 들어가 있는 곳이 또 없기도 해서 뭔가, 탈아입구의 본류를 슬쩍 엿본 듯해서 기분이 묘하기도 했고......) 이후 살짝 취한 상태로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하다가 후쿠오카가 처음이라고 해서 태워다주겠다는 약간 폭주족스러운 옷차림의 손님이 있어서 얻어타서 취한 상태로 벳커버의 あいどる을 부르기도 하면서-노래 곡조가 무슨 옛날 노래 같다고 메이지 시대 사람이냐! 하는 소리도 듣다가-숙소에서 한참 떨어진 이상한 곳에서 내려서 간만에 한국어로 하씨발씨발씨발하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돌아와서 잤다.


여기까지가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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