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단순한 인테리어로 장식된 조용한 대기실 안.
한 명의 거한이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슈가랜드입니다.
서너명은 넉넉히 앉을 수 있을법한 가로형 의자도 거한이 앉자 빈 자리가 없었다.
손에 든 것 또한 사실 스마트폰이 아니라 태블릿이었는데, 덩치에 걸맞게 손도 워낙 큰 탓에 비율 상으로 따지면 그냥 스마트폰을 든 것처럼 보였다.
앉은 채로도 어지간한 사람은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남자의 이름은 김휘.
헌터 강국인 한국의 A급 헌터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내였다.
그런 그가 지금 무엇에 집중하고 있느냐 하면.
- 얼마 전에 헌터 쪽 관련해서 빅뉴스가 하나 있었죠? 이미 아실 분들은 다 아실텐데, 그래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우선 영상 먼저 시청하고 넘어가도록 할게요.
이어서 태블릿 화면이 전환되고 재생되는 영상 하나.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서 찍은 터라 화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영상의 인물 중 한 명은 지금 영상을 보고있는 A급 헌터, 김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키가 2m에 달하고 전신이 근육으로 뒤덮인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 야… …… 다시… …!!
- …… …너…
거리가 꽤 있는 탓에 영상 속 인물들의 대화 내용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영상 속의 주요 인물은 두 명.
한 명은 거한의 사내 김휘고, 다른 한 명은 그보다 키가 훨씬 작아보이는 여성이었다.
여성의 키가 그리 작은 편은 아니었다.
성인 여성의 평균 키보다 약간 작은 정도지만, 워낙 큰 놈 옆에 있다보니 마치 스마트폰처럼 보이는 태블릿마냥 작아보인 것이다.
특이한 점은, 둘의 의상이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김휘는 택티컬한 인상의 전투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척 봐도 튼튼해보이는 전투화에, 격한 움직임도 소화할 수 있도록 근육의 결을 따라 빈 틈 없이 짜인 상의.
모범적인 헌터의 차림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오히려 정반대.
프릴이 잔뜩 달린 드레스는 결코 전투에 적합해보이지 않았다.
길게 늘어뜨린 핑크색 머리카락이 작은 움직임에도 물결처럼 휘날렸고, 깔맞춤이라도 한 듯 핑크색으로 장식된 무언가를 어깨에 걸치고 있다.
혹자가 그녀를 본다면, 어떤 단어를 가장 먼저 떠울릴 것이다.
마법소녀.
만화영화 속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한 그녀의 이름은 유하연.
한국의 여섯 S급 헌터 중 한 명인 그녀가 김휘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빛이 번쩍였다.
다시 돌아온 화면엔 마법소녀가 손을 뻗고있는 모습이 비춰졌고, 급히 움직인 화면에 건물을 부수고 쳐박힌 김휘의 모습이 잡혔다.
유하연의 선제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꿈쩍하지 않는다는 듯, 김휘는 일어서서 반격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었다.
- 쾅! 쾅!
사내는 겉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휘의 손에 들린 거대한 둔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위협적인 소리가 울리고, 이따금 어디 부딪힐 때면 그것이 벽이든 바닥이든 산산조각을 내버리곤 했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한 번 땅을 박찰 때마다 화면이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저돌적인 코뿔소를 연상시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에 대응하는 유하연의 움직임은, 둘의 복장 대비와 마찬가지로 그와 상반되었다.
육체 강화를 중점으로 둔 김휘와 달리, 그녀는 마법소녀라는 이름 그대로 마법을 주력으로 삼았다.
지척에 다다른 김휘가 둔기를 휘둘렀을 때, 분명 이에 직격당했어야 한 유하연은 어느새 빛무리만 남기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표적을 놓친 김휘가 다음 움직임을 취하기 전까지 짧은 딜레이가 생긴 사이, 수많은 마력 광선이 그를 뒤덮었다.
이런 양상은 계속 이어졌고, 싸움은 5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끝내 유하연을 따라잡지 못한 김휘의 움직임이 축적된 데미지로 인해 둔해지고, 이를 놓치지않은 유하연의 제압용 마법이 그를 짓눌렀다.
바닥에 엎드린 채 구속 마법에 봉인된 김휘.
카메라를 든 자도 싸움이 끝났다는 걸 인지했는지, 화면이 그들에게 가까워졌다.
- 후욱. 후욱. 후…
김휘는 거친 숨을 몰아내쉬고 있었다.
짧았으나 격한 싸움이었다는 증거였다.
- 야, 다시 한 번 말해봐. 뭐라고?
반대로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유하연.
그녀는 김휘의 머리맡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에 질세라, 패배했어도 마음만은 지지 않았다는 건지, 김휘가 이를 짖씹으며 내뱉었다.
- 아가리. 씨, 발. 핑챙년아…!
- 쾅!
그리고 즉각 보복이 있었다.
유하연이 김휘의 머리를 발로 내려찍어 바닥에 안면을 박아버린 것이다.
- 약해빠진 주제에 자존심은. 병신새끼.
경멸하는 눈빛으로 김휘를 내려다보던 유하연이 한 손에 마력을 모았다.
끝장을 내려는 걸까? 하지만 헌터 간의 ‘사소한 다툼’은 몰라도 살인은 금지되어 있다.
주변인이 말리려는 찰나, 그것이 하늘에서 도착했다.
- S급 헌터 유하연. 시가지 전투 행위를 중단하십시오.
기계적인 목소리를 내는 그것은, 게이트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헌터를 상회하는 무력으로 치안을 책임지는 ‘센티넬’이다.
차가운 인상을 주는 흑색 외피와 붉은 안광은 생김새만으로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센티넬이 도착하자 유하연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력을 거두었다.
- 촬영을 중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습을 촬영하던 건 현재 화면의 주인 뿐 아니어서, 센티넬이 주변 인파에 경고했다.
당연히 화면의 주인 또한 황급히 카메라를 집어넣었고, 그것으로 영상은 끝이었다.
- 네 다들 잘 보셨죠? 이게 며칠 전 성북구에 발생한 청색 게이트를 닫은 헌터들끼리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요, 아직 직접적인 싸움 원인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둘의 대화로 미뤄봐서 네티즌들의 추측은…
여기까지 보고, 김휘는 태블릿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긴급한 게이트라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헌터 몇 명을 소집해서 들어갔는데, 거기에 유하연이 포함되어 있었다.
S급 헌터가 하나에 A급 헌터가 둘, B급 헌터가 열이라는 다소 호화로운 구성이었다.
그러나 게이트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사소한, 별 것 아닌 실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갖고 쬐끄만 년이 자꾸 자신에게 사과하라며 시비를 거는 것 아닌가.
게이트를 닫고 나온 후에도 그러길래, 홧김에 그 단어를 입에 담았을 뿐이다.
왜, 생긴 게 딱 그거 아닌가? 핑챙.
S급 놈들은 하나같이 생긴 게 좀 특이하다지만, 유하연은 그 중에서도 별종이었다.
면전에서 한 것도 아니고 궁시렁대듯이 한 소리였는데, 그걸 또 어찌 들었는지 유하연은 다짜고짜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가 영상 속 내용이었다.
“후. 씨발년.”
김휘는 벽에 머리를 기댔다가 짜증을 풀려는 듯 뒤통수를 쿵 쿵 찍어댔다.
아직도 분이 풀리질 않았다.
중학생 시절 각성자 판정을 받고, A급 헌터로 살아온 것도 벌써 10년째.
주변인들은 A급도 대단한 거라며 우러보지만, 등산 중인 자의 눈에는 산의 정상밖에 안 보이듯이, 김휘 또한 그런 칭송이 그닥 와닿지 않았다.
S급 헌터!
전 세계에 60명 남짓 있고, 그 중 6명이 한국에 있는 헌터계의 정점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리를 반복해온 끝에 A급의 최상위권에는 올랐으나, 그럼에도 S급과의 간극은 멀기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S급은 노력이나 일반적인 수단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성 스킬’
단순히 마력을 느끼고 다루며 체화하는 능력을 갖춘 일반적인 헌터들과 달리, S급 헌터들은 하나같이 그 특성 스킬이란 걸 다시 한 번 각성한 자들이다.
마력을 다루는 것만으로 충분히 초인이라고 할 만하지만, 특성 스킬은 그야말로 영화 속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소유자에게 선사한다.
김휘는 그것을 직접 몸으로 겪은 당사자였다.
그렇기에 갈망했다.
자신도 특성 스킬을 각성해서 이 지긋지긋한 A급 딱지를 떼고 S급 헌터가 될 수 있기를.
그러나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발전하는 연구자들의 검사 기술에 따르면, 김휘의 성장한계선은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할 뿐이었다.
“김휘 님. 준비 끝났습니다.”
“음.”
대기실에 들어온 연구원이 김휘의 상념을 깨뜨렸다.
김휘가 일어서자 연구원을 완전히 내려다보게 되었다.
몇 번이고 보는 것이지만 그의 덩치에 도통 익숙해지지 않은 연구원은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그는 한국 남성의 평균 신장을 가지고 있으나, 김휘의 앞에서 그건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는 뜻밖에 되지 않았다.
김휘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런 연구원의 반응을 즐겼다.
평소에도 그랬다. 자신의 덩치와 힘 앞에 ‘쪼는’ 일반인 혹은 약한 헌터들 대부분의 반응을 즐기는 건 김휘라는 사내가 성장을 마친 후 질리지도 않고 해오던 일이었다.
연구원을 따라 보안 게이트를 여러번 거쳐 어딘가로 들어간 김휘는 곧 복잡한 형태의 장치와 마주쳤다.
중졸인 김휘로서는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조차 없는 온갖 기계 장치와 화학 용매 탱크가 전선, 파이프 등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십수명의 연구원들이 그것들을 조작하며 마지막 점검을 마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방 중앙에는 자신의 커다란 몸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캡슐이 자리잡고 있다.
“김휘 님. 이미 동의서는 여러 번 작성하셨지만 지금이라도 취소하실 수 있습니다. 정말로….”
“한다니까. 거 했던 말 자꾸 하게 하지 맙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시죠.”
김휘는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캡슐 안에 자연스럽게 몸을 안착시켰다.
그러자 캡슐의 틈새에서 구속구가 나와 그의 몸을 안쪽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절대 캡슐에서 나오시면 안됩니다. 어느 정도 통증이 유발될 수 있는데, 이를 반드시 참으셔야 합니다.”
“그 소리도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네. 그냥 좀 시작합시다 제발.”
김휘의 단언에도 연구원은 불안했는지 몇 번이고 주의사항을 읊었다.
당연한 일이다. 일반적인 헌터들과 달리, 저 구속구조차 김휘가 마음만 먹으면 부숴버릴 수 있을 테니 본인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무운을 빌죠.”
연구원이 물러나고, 캡슐의 덮개가 닫혔다.
큰 일을 치르기 직전까지 오자 긴장했는지 여태껏 잠잠하던 김휘의 심장도 약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국헌터기술원의 특성 스킬 인공 각성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된 건 순전히 자신의 뜻이었다.
여태껏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것에라도 걸어보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걸 김휘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선택한 것이다.
희망적 관측은 충분히 있었다.
여태껏 인공 각성이 실패해온 건 대상이 되는 각성자의 마력적 내구성이 부족해서 과부하는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김휘의 내구성은 A급 헌터임에도 S급 헌터와 잠시나마 비빌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연구원들도 그걸 알기에 김휘가 참여 용의를 밝혔을 때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는 듯이 기뻐했다.
- 우우웅
이윽고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김휘의 감각에 마력적인 유동이 감지되었다.
전투 중에는 볼 일 없는, 대단히 섬세하고 복잡한 움직임이었다.
느껴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김휘는 아예 머리를 비우고 그 흐름에 편안히 몸을 맡겼다.
- 치지직
그리고 그 흐름은 점점 빠르고 거세어져가더니 어느 시점부터 통증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비유하자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듯했다. 물론 자신은 그래도 별 일 없겠지만,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그런 느낌이었다.
“끄으으.”
흐름은 폭포를 벗어나 태풍에 가까워지고, 그에 따라 통증도 점점 극에 달해갔다.
금방이라도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참았다.
이를 으스러져라 악물고, 전신의 근육을 경직시켜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억제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휘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 꽈아아앙…
몸 안에서 뭔가 터져나가는 듯했다. 심장인가?
아아, 역시 안 되는 건가.
어차피 죽음 또한 상정했던 일이다.
남아서 슬퍼할 가족도 없고, 이렇게 되면 그저 아쉬울 뿐.
S급이 되고 싶었던 것도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거기에 S급이라는 등급이 있는데, 목숨을 걸어서라도 달아보고 싶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
김휘가 그런 상념에 잠겨있을 때였다.
- …… …! …!!
- 김… ……차…!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며, 김휘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힘겹게 눈을 뜨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연구원이다.
“기, 김휘 님. 정신이 드십니까?”
“… 아…….”
죽지 않은 건가?
몸의 움직임을 막는 구속구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신이 구타라도 당한 듯 뻐근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김휘는 곧바로 일어서 캡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
뭐야.
내가 왜 이 놈을 올려다보고 있는 거지?
02
김휘가 이 기막힌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약 두 시간이 걸렸다.
신체검사실.
연구원들은 분주하게 검사 결과를 체크하고 저들끼리 뭐라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앉아 쳐다보다가, 김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숨소리가 평소보다 가늘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숨구멍 자체가 예전보다 훨씬 좁아졌을 테니까.
시선을 옮겨 양 손을 쳐다보면, 이전의 굳은살 투성이의 솥뚜껑같은 손바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다.
대신 그 곳에 자리잡고 있는 건 잡티 하나 없는 하얗고 작은 손바닥이다.
어찌나 작은지, 언뜻 보면 꼼지락거린다는 인상마저 들었다.
김휘는 무의식적으로 흔들거리던 다리를 멈췄다.
이전엔 작게만 느껴지던 의자였는데, 이젠 앉으면 아슬아슬하게 발이 바닥에 안 닿아서 신경쓰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흔들거리게 되었다.
김휘는 이 꼴이 되고 처음 거울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어째선지 매우 당황한 듯 보이는 연구원의 손에 팔을 붙들려 따라간 곳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한쪽 벽면을 통째로 채운 커다란 거울.
거기엔 연구원과 한 명의 소녀가 비춰지고 있었다.
‘??’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흑단발의 소녀.
겉보기엔 이제 막 사춘기를 맞이할 법한 나이로 보였다.
붉은 눈망울이 흔들렸다.
일반인에게선 잘 나타나지 않는, 각성자 특유의 다채로운 홍채 색깔이다.
처음엔 그게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개를 몇 번 흔들고,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어본 후에야 거울 속의 소녀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소스라치게 놀라서 몸에 힘이 빠진 탓인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후로 두시간.
김휘는 조금씩 상황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먹물쟁이 새끼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감수했다.
그런데 이건 뭐야?
난데없이 몸이 애새끼가 되어버리는 부작용이라니, 이런 건 김휘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겠지?’
이 몸은 시야가 너무 낮았다.
무엇이든 올려다 봐야했고, 방 하나 가로지르는데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걸어야했다.
심지어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막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즉, 이대로는 A급 헌터는 커녕 크냥 일반인 소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김휘는 솔직히 이 모습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일단은 몇 가지 신체검사를 받고 연구원들이 바쁘게 뭔가 하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그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연구원이 김휘에게 다가왔다.
“저, 김휘 헌터님. 어느정도 결과가 나왔는데….”
“어떻게 됐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휘가 급히 물었다.
어린 애가 떼쓰는 듯한 목소리도, 지금 이 순간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연구원은 김휘의 옆에 서 몸을 낮추고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임상시험은 성공입니다. 김휘 헌터님은 특성 스킬을 성공적으로 각성하셨습니다.”
“…허?”
그게 뭔 개소리야.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고있는 소녀에게, 연구원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여기 검사 결과를 보시면 이 수치가 임계점을 넘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
“요점만 말해봐 좀!”
말이 길어질 조짐을 느낀 김휘는 금방이라도 주먹을 내지를 듯한 기세로 연구원을 재촉했다.
물론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기에, 연구원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김휘 헌터님이 그 모습이 된 건 특성 스킬의 영향입니다. 저희 연구진들은 그렇게 결론내렸습니다.”
“아니, 그게 뭔. 그런 특성 스킬이 어딨다고?”
김휘는 한 때 S급들의 정보를 조사해본 적이 있었고, 적어도 특성 스킬이 공개된 자들 중에선 성별을 바꾸는 일 따위 일어난 적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구원의 다음 말을 듣고 김휘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이해하고야 말았다.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 남성 헌터가 ‘마법소녀’ 특성을 각성하는 일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아.”
S급 헌터의 기준인 특성 스킬은 그 클래스가 크게 일곱 분류로 나뉘어져있다.
히어로. 기사. 마법사. 무림인. 도사. 전대.
그리고, 마법소녀.
김휘는 만약 자신이 S급으로 각성하게 된다면, 아마 히어로, 무림인, 기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왔다.
재각성 시 어떤 클래스 각성하게 될지는 헌터 개인의 성향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은 철저한 육체파 전위 헌터였고, 그러니 당연히 그 세 클래스 중 하나로 각성하게 되리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마법소녀라고?
“헌터의 재각성은 학계에서도 아직 그 기전을 파악하지 못한 현상입니다. 인공 재각성의 성공 사례도 김휘 헌터님이 세계 최초일 거고요.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봐야 할 겁니다.”
“….”
말문이 턱 막혔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김휘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S급 각성에 성공한 건 분명 좋아할 일이다.
10년 동안이나 바래왔던 일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이건….”
그 대가가 본래의 신체를 잃어버리고, 웬 여자아이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김휘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되돌릴 방법은?”
“…죄송하지만, 재각성 헌터의 특성 스킬을 없애는 연구는 저희 연구소 관할이 아닙니다.”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김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좋든 싫든, 자신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결국 앞으로 이 몸으로 살아야함을 김휘는 서서히 체감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김휘는 여자아이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잊고있던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그런데 나 재각성한 거 확실하긴 해?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연구원에게 설명을 듣기 전까지 임상시험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있다.
김휘는 자신의 몸에서 그 어떠한 마력도 느낄 수가 없었다.
각성자 판정을 받고 헌터가 되기 이전, 일반인의 느낌이 이러할까?
괜히 불안해졌다. 검사 결과로만 각성했다고 나타날 뿐, 사실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몸이 된 거라면?
“그건 전문가의 소견이 필요하겠네요. 연락 넣어드릴까요?”
한국헌터기술원 소속이라곤 하지만, 일개 연구원인 그로선 전 세계에 열 명이 채 안 되는 마법소녀에 대해 잘 알 리 만무했다.
그러니 전문가의 소견을 구하는 건 학자로서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뭐? 전문가라면….”
“한국에도 마법소녀가 한 분 있지 않습니까. 유하연 헌터님… 아.”
거기까지 말한 후에야, 연구원은 김휘와 유하연 간에 있었던 사건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김휘의 반응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연구원들이야 기밀을 반드시 지켜준다지만, 그 년한테 이 사실을 알릴 수는 없다.
무슨 놀림을 받을 줄 알고?
“일단 나 혼자서 해결해 볼 테니까, 그 전까진 입 다물고 있어.”
김휘는 지금 당장 마법소녀의 힘을 쓰는 법을 알아내는 것보다, 유하연에게 이 사실을 숨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아, 알았습니다.”
연구원도 그런 김휘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더 말하지 않았다.
- 꼬르륵
그런 대화가 오가던 와중, 김휘의 배꼽시계가 울렸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6시를 넘기고 있었다.
“…우선, 밥부터 좀 먹자. 배고파.”
“그러죠. 구내식당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김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는 연구원을 따라갔다.
자신보다 연구원의 보폭이 더 큰 탓에, 김휘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만했다.
하여튼 좋은 점이라곤 없는 몸뚱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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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떼우고, 몇 가지 신체검사를 추가로 마친 후 김휘는 임시 숙소로 안내받았다.
“으윽. 배불러….”
식사 도중, 김휘는 퍼온 양의 절반조차 먹지 않았음에도 벌써 배가 부르다는걸 느꼈다.
몸이 바뀐 걸 고려해서 평소보다 훨씬 적게 퍼왔는데도 그랬던 것이다.
오기가 생긴 김휘는 퍼온 밥과 반찬을 악으로 깡으로 먹어치웠고, 그 결과로 식사 후 몇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속이 더부룩했다.
김휘는 침대에 퍼질러 누워 다음부터는 좀 더 적게 받자고 다짐했다.
“후우….”
낯선 천장이다.
당분간은 연구소에서 지내며 이것저것 검사해봐야 하기도 하고, 이 몸으로는 혼자 운전해서 집으로 갈 수도 없었기에 임시 숙소를 받았다.
연구원들은 이래저래 김휘의 편의를 많이 봐주었다.
그래서 소녀의 몸으로 지내며 거슬리는 점 몇 가지 -누구든 올려다봐야 한다던가, 보폭이 좁아서 느리다던가- 를 빼면 아직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연구소 밖으로 나가면?
자신이 이런 몸으로 혼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젠장. 뭐 이런 걱정을.”
김휘의 저렴한 말투와 여자아이의 고운 목소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혼잣말을 하면서도 그것이 체감되었기에, 김휘는 지금 상태로는 말조차 별로 하고싶지 않았다.
침대 옆에는 자신의 태블릿이 놓여있었는데, 평소 스마트폰처럼 쓰던 것임에도 지금의 김휘에겐 너무 커서 다루기가 힘들 정도였다.
유튜브라도 좀 보다 잘까 하다가, 밥을 먹은 직후라 그런지 살살 졸려오는 느낌이 들어서 김휘는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자다 일어나니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있을지.
말도 안 되는 희망적 관측을 하면서, 김휘는 낯선 이부자리 속에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김휘가 눈을 감은지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제야 겨우 혼자가 됐네. 마음은 좀 정리됐어?]
눈이 번쩍 뜨였다.
급히 몸을 일으킨 김휘는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의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숙소 방에는 필요한 가구만 갖추어져 있었는데, 침대와 옷장 그리고 책상, 의자 따위가 전부였다.
목소리는 분명히 책상 쪽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뭐지? 환청?
당황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김휘의 시야에, 문득 책상 위에 놓여있는 인형 하나가 들어왔다.
무슨 동물을 형상화한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나름 귀엽다고 할만한 디자인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저런 게 원래 있었나…?
하며 의문을 가진 순간이었다.
[나 맞아. 프로 헌터에게 말하는 인형 정도는 신기할 일이 아니지 않아?]
“뭣…!!”
김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물론 말하는 인형 정도야 그것 자체로는 엄청나게 이상하진 않았으나, 문제는 장소였다.
김휘가 알기로 이 연구소는 S급 헌터가 직접 설치한 마법적 방어체계로 보호받고 있었다.
비록 헌터는 아니지만 국가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두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기에 치안유지용 센티넬도 배치되어, 김휘 자신도 이 곳에 무단으로 침투할 자신은 없었다.
즉 이형의 존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너, 너 뭐야?”
[아하. 넌 유아기에 만화영화를 보고 자라지 않은 친구구나?]
“뭐?”
만화영화? 그런 걸 볼 수 있을 리가 있나.
김휘는 고아로 자랐기에, 그런 매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흐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 간단히 설명하자면, 난 그거야.]
인형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너를 진짜 마법소녀로 만들어 줄 마스코트.]
“마, 마스코트?”
그건 어디 지역축제에서 내세우는 캐릭터같은 거 아닌가?
확실이 이 녀석은 그런 거랑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역시 모르는구나. 그럴 땐 좋은 방법이 있지.]
인형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공중에 떠서 다가왔다.
인형이 한숨을 내쉰다는 게 뭔가 이상했지만, 김휘가 느끼기엔 그랬다.
벽에 등을 붙이고 앉은 김휘의 코앞까지 다가온 인형이 즉시 말했다.
[나무위키 켜! 지금 당장.]
“어, 어….”
김휘는 허둥지둥 하면서도 인형의 말에 따랐다.
그 과정에서 태블릿을 습관대로 지문 인식으로 잠금 해제하려다 실패하고 패턴으로 여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그로부터 대략 10분 후.
김휘는 마법소녀와 마스코트에 대해 약간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구르미엄마가 쓴 버전이 훨씬 나아서. 그냥 폐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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