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제왕 팬픽: 이계의 관찰자 - 1화: 낯선 새벽
[경고: 이 팬픽은 '신비의 제왕'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싸늘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였다.
김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익숙한 형광등 불빛이나 부드러운 침대의 감촉 대신, 눈에 들어온 것은 거무죽죽한 얼룩이 진 낡은 목재 천장이었다. 코를 찌르는 것은 희미한 곰팡내와 싸구려 석탄이 타는 매캐한 냄새.
"...어디야, 여기?"
쉰 목소리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울렸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마치 오랫동안 앓아누운 사람처럼 근육이 삐걱거렸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앉자, 덮고 있던 것은 이불이라기엔 너무 얇고 거친, 누더기에 가까운 담요였다.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금이 간 세숫대야가 놓인 작은 탁자, 문짝이 간신히 달려 있는 낡은 옷장 하나. 벽에는 정체 모를 누런 자국과 긁힌 흔적이 가득했다. 마치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잠깐, 19세기 유럽?'
머릿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어젯밤, 분명 그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신비의 제왕' 최신 번역본을 읽다가 잠들었다. 클레인이 타로회를 막 시작하고, 포세이큰 랜드 오브 갓에 대한 단서를 조금씩 모으던 흥미진진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왜 이런 곳에...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발바닥에 닿는 차갑고 거친 나무 바닥의 감촉이 생생했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본 순간, 김지훈은 숨을 멈췄다.
뿌연 안개, 혹은 매연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거리. 희미하게 빛나는 가스등 몇 개가 음울한 새벽 풍경을 간신히 밝히고 있었다. 좁은 조약돌 길 위로는 간간히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멀리 보이는 굴뚝에서는 끊임없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축 양식은 명백히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시켰다.
"로... 엔 왕국? 아니면 인티스? 페네포트?"
익숙한 이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하는 불안감이 심장을 죄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방 안을 다시 살폈다. 탁자 위에 놓인 작은 거울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을 집어 든 지훈은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울 속에는 자신이 알던 얼굴이 없었다. 약간은 병약해 보이는, 창백한 피부의 젊은 서양인 남자의 얼굴.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푸른 눈동자. 이 몸은 명백히 김지훈의 것이 아니었다.
"빙의... 라고?"
웹소설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것도 하필이면... 신비의 제왕의 세계라니. 그 위험천만하고, 광기와 음모가 도사리는,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신들의 장기말이 되거나 괴물로 변해버리는 끔찍한 세계에!
패닉에 빠져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지훈은 문득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신문 조각을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집어 펼쳤다. 헤드라인은 흐릿했지만, 본문의 몇몇 단어는 명확하게 읽혔다.
"...로엔 왕국... 팅겐시... 연쇄 살인 사건... 경찰 인력 부족..."
팅겐(Tingen).
클레인 모레티가 처음 눈을 뜬 바로 그 도시였다.
"맙소사..."
지훈은 주저앉을 뻔한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팅겐이라면, 이야기가 막 시작되는 시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클레인이 시퀀스 9 '점술가'가 되기 전이거나, 막 되었을 무렵일 수도 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이 세계에 떨어졌다는 절망감과 함께, '신비의 제왕'의 독자로서 미래를 알고 있다는 미묘한 우월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뒤섞였다.
'일단... 지금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아야 해. 클레인은 어디 있지? 그리고 나는... 이 몸의 주인은 누구였던 거지?'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이 낯선 몸의 과거에 대한 정보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껍데기처럼, 김지훈의 의식만이 이곳에 덩그러니 놓인 느낌이었다.
'돈은? 가진 건 있나?'
그는 허겁지겁 낡은 옷의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몇 푼의 동전이 나왔다. 로엔 왕국의 화폐 단위인 페니와 솔리. 액수는 많지 않았지만, 당장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였다.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든.'
지훈은 굳게 다짐했다. 이 미치광이 신들과 끔찍한 괴물들이 넘실대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 바로 '신비의 제왕'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야 했다.
'첫 번째 목표는 정보 수집.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이 팅겐을 벗어나는 거다.'
클레인이 겪었던 사건들을 떠올리자 소름이 돋았다. 인체 실험, 사교도, 봉인물... 팅겐은 결코 안전한 도시가 아니었다. 특히 '관찰자'로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방인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창밖은 여전히 뿌옇고 음울했다. 하지만 김지훈의 푸른 눈동자에는 이전과는 다른,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 낯선 세계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위태롭게 밝아오고 있었다.
1화 끝
미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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