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는 달라. 레이는 유이 씨가 지켜냈어. 그녀는 나처럼 완전히 침식당하지 않았지. 플러스를 채워넣어, 0(레이)로 만들었으니까. 나는… 실패작이야. 레이를 만들기 위한 선행 모델. 언제든 폐기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결함품. 겐도 씨가 말한 대안이라는 건, 아마 나보다 더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사도를 죽일 수 있는 무언가겠지. 내가 없어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탕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스카는 할 말을 잃은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만들어졌다. 실패작. 결함품. 그 단어들이 아스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황당무계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남자의 눈동자 깊은 곳에 자리한 공허함, 그의 비정상적인 능력, 그리고 이카리 부부와의 기묘한 관계를 떠올리자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어떤 익숙한 감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너… 너도…." 아스카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파일럿이 되기 위해… 그렇게 길러진 거야?"
아스카 자신의 삶. 어머니의 미치광이 같은 집착. 오직 에바 파일럿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 쳐왔던 시간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최고의 파일럿이 되어야만 자신의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었던 나날들. 그것이 남자의 이야기와 기묘하게 겹쳐 보였다. 시작점은 다를지 몰라도, '에반게리온 파일럿'이라는 굴레에 묶여 존재 가치를 강요당하는 처지는… 다르지 않았다.
에반게리온 파일럿인라는 굴레에 묶인 두사람은, 성격과 능력이야 달랐으나, 기묘할 정도로 비슷하게 at필드를 의식하고 있었다.
아스카는 내장에 있는 이물질을 개워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껄여댔다.
"이러니 그 빌어먹을 싱크로 훈련… 안무 같은 거…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 벽은…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으니까! 무너지면… 무너지면 안 되니까…!"
마지막 말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소리가 커다란 만큼 위태롭고, 도리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어쩌면 저것이 아스카가 보인 최초의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생각했다.
'「닮았구나」.'
정말로 그랬다. 문득 그는 어쩌면 그녀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뛰어넘어, 이카리라는 결함품을 완벽하게 불필요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 겐도 사령관이 말한 '대안'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라는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
어쩌면 그녀가 그런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내 손으로 수정이야 좀 거쳣다지만 이거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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