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보면서 성리학이 도교의 우주론과 불교의 형이상학적 관념을 통해 유교의 예의범절을 정당화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일종의 유물론적 진화론으로 이어졌다는 해외 촌평을 봄

왜 이런 촌평이 나오나 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단순한데

성리학은 인간이 자연의 이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한 이치가 자연의 이치와 각각 대응되는데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되는지는 걍 폐기해도 되는 형이상학이니까 패스함)

사람이 윤리적으로 어때야 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뭐 그런 거)과 그냥 툭툭 튀어나오는 칠정(희노애락 뭐 그런 거)가 구분된단 말임

뭐 여기서 사단이 칠정에 포함된다 안 된다가 조선 유학의 가장 큰 갈등이었고

다만 그럼에도 사단이 사람 본래의 본성이다 라는 전제 자체는 유학의 큰 전제로 남아 있긴 함

여기서 멈추고 실제로 사회동물학(윌슨 같은 거)이나 신경과학(지금 보고 있는 <스피노자의 뇌>)을 보면

우리가 공포나 기쁨 같은 경험을 하는 정서와 그것이 고통스럽다거나 좋다고 느끼는 느낌 사이에는 진화적으로 중간단계가 있다고 봄

애초에 느낌 자체가 공포로 몸을 떤 '이후'에 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거라 시간 선후관계도 느낌이 정서보다 뒤고 (이건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인데 번역도 원문도 좆같음)

그 의식적인 느낌을 못 느끼는 동물도 느낄 수 있는 어떤 '그래야 한다'는 협의의 정서가 있는데

여기에 우리가 흔히 사회적 행동이라고 부르는 온갖 것들이 뭉텅이로 들어가는 사회적 정서...가 포함됨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우리의 도덕을 찾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더러움을 버리고 깔끔해지면 된다는 신유학의 성선설이 여기서 일치하는 거지

문제는 현대사회는 이것만으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데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도 각 개인의 수양이 결코 도덕적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없다는 걸 지적했고

(애석하게도 이건 신유학의 격물치지에서 이어지는 기본 테제-개인 수양에서 평천하까지-의 부정임)

<옳고 그름>에서는 오히려 이런 도덕적 본능의 작용이 부족적 집단에서의 도덕적 판단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 외에는 수술하는 의사가 살을 째기 전에 느끼는 거부감처럼 제대로 된 판단을 방해한다는 걸 지적함

(물론 이건 무엇이 어쨌든 더 사회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공리적인 관점이라 내 생각에는 이미 '도덕'이라고 논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행정의 문제에 가깝지 않을까 싶음)

(왜냐면 이건 실제로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워서라도 큰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도덕 딜레마에 긍정하게 될 거니까)

그래서 그냥 좀... 반어적으로 웃김

사람이 모두 사람답지 않게 되어야 하는 세상이 나오기 전까지는 안 끝날 거라

(자크 엘륄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