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머릿속이 완전 뒤죽박죽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를 보러 왔는데, 왜 내 옆자리에는 베아트릭스 키도가 앉아있는 거지? 스크린 속 사무라이들이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지금 내 상황보다는 덜 위험해 보였다. 이건 <7인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킬 바우>다. 장르가 갑자기 스릴러로 바뀌었다. 우마 서먼 씨, 아니 예빈 씨, 결혼식장에서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기억은 안 나지만 일단 죄송합니다…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곁에 앉은 예빈 씨는 미동도 없이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숨 막혔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나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내뱉은 ‘군대 머리’ 같은 헛소리는 이미 그녀의 귀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멍청한 대답마저도 그녀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참 이상하네요.”

갑자기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스크린을 향한 채였지만, 그 말은 분명 나를 향한 것이었다. 심장이 바닥까지 쿵 떨어졌다.

“분명 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데, 바우 씨 주변 공기는 왜 이렇게 긴장감이 넘칠까요? 꼭… 다른 장면 속에 있는 사람처럼.”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이 여자, 정말 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 어느 쪽이든 등골이 서늘했다. 내가 타란티노 영화 속에 있다고 느낀 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애써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눈동자는 자꾸만 그녀 쪽을 향했다.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이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 끝을 아슬아슬하게 비추고 있었다.

“혹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바우 씨?”

그녀의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웠지만, 내 귀에는 쇠사슬처럼 무겁게 감겨왔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나를 의자에 묶어놓은 것 같았다.

스크린 속에서는 사무라이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칸베이! 키쿠치요! 제발 여기 좀 봐줘요! 여기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니까! 하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이 암흑 속에서 나는 완전히 고립된 채, 정체 모를 위협과 단둘이 마주하고 있었다.

예빈 씨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내 얼굴을 관찰하는 듯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포식자처럼 보였다. 그녀가 내뱉는 숨결 하나하나가 내 귓가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가올 다음 대사를 기다리는 삼류 배우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제발, 엔딩 크레딧이 빨리 올라오기를. 아니면 누가 이 극장에 불이라도 질러주기를.

아웅 이게 소설이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