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었는데, 별 건 아니고 글 내용에 좀 궁금한 게 두 가지 있어서 그럼.

나도 무직전생 아직 안 읽어봤으니 솔직히 뭐라 더 할 말이 그닥 없는데

이거 두 개는, 약간 내가 평소에 고민하던 부분이랑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서 좀 물어보고 싶다.

1. '성장이 긍정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 어케 생각함?

이건 솔직히 내가 무직전생을 안 읽어봤으니 설명을 들어도 '고런가...' 이상의 답을 못 들을 테고

솔직히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온 문제 같아서 귀찮으면 답 안 해도 됨.

명백히 성장소설에서 주인공의 성장 방향이 긍정적일 필요는 없잖음.

어리버리하지만 착한 청년이 어쩌다 보니 범죄 세계에 엮였다가

결말부에서는 지가 사랑하는 사람들 다 지 손으로 죽여버리는 내용의 물건이라도,

이 귀결이 주인공의 능동적 자아 실현의 결과물이라면, 명실공히 성장물이자녀.

일단 유열은 이 작품이 성장물이라는 건 긍정한 거 같고,

이 성장이 능동적 자아 실현이라는 것도 동의하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장'이라는 것이, 주인공의 과거나 혐오스러운 인격과

유의미한 연관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불만족스럽다... 는 걸로 나는 이해가 되는데,

근데 이렇게 파고 들어보면, 댓글창에서 무직전생팸들이 주장하는

'결국 니가 말하는 그 왜곡된 성장이라는 게 그냥 주인공 인간성이 역겹다는 말과 뭐가 다르냐,

한술 더 나아가, 역겨운 인간상이란 소설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밖에 더 되느냐'는 지적에

어느 정도는 힘이 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임...

극단적으로 말해서, 주인공이 아주 선량하게 살았지만 교통사고로 무고한 사람 몇 명을 죽여버린 다음에

지가 자살을 했건 피해자 가족에게 보복을 당했건 그렇게 죽고 이세계 전생해서

'이번 세계에서 바퀴 달린 거 몰면 내가 사람새끼가 아니다' 라고 다짐하는 주인공을 가정해 보면,

네가 설명하고 있는 무직전생의 플롯에 이런 주인공이 들어갔을 때,

거의 모든 그 후회와 반성의 문제네 하는 것들은 희석되고,

그 대신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더 맹탕이 되어버리는 것으로, 이 문제가 끝나버리는 것처럼 읽힌단 말임...

2. 왜 회귀하는 게 유의미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건지, 그 점을 좀 물어보고 싶음

이거는 무직전생과는 무관한 이야기로도 성립하는 거기도 하고

내가 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은 거라서, 꼭 답해줬으면 함.

'패악질 부린 당사자에게 갚는다'는 걸 회귀물의 장점으로 제안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조금 의구심이 드는 게,

내가 패악질을 부린 가족들과,

과거 시점에서 내가 패악질을 벌이기 전의 가족들은, 원론적으로 동일 존재가 아니잖음???

내가 '과거의 내 가족'에게 무언가 벌충을 한다는 것이

내가 괴롭힌 그 가족 당사자들의 그 때 실재했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닐 테고

그 당시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가족들이 나를 받아들여 준다는 것이

내가 괴롭힌 그 가족 당사자들이 나를 용서한다는 의미도 안 될 거란 말임...

좀 극단적인 예시로,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회귀자'를 가정해보자고.

이 회귀자는 루시우스보다도 인성이 구데기라서, 지 전생에 가족에게 패악질한 것에

정말 일말의 유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근데 얘가 그냥, 순수하게 지 이기심으로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노력에서

굳이 가족에게 패악질을 부릴 이유가 1도 없다는 이유만으로

전생보다 가족에게 훨씬 더 잘 대해주는 것처럼 가족 당사자들은 느꼈고,

심지어 금전적인 낙수 효과도 충실하게 누렸다고 생각해 보면,

이걸로 이 새끼가 '아, 전생의 나보다는 가족들에게 잘 해 줬군'이라고 독백한다면,

나는 이게 솔직히 더 윤리적으로 파탄난 전개가 아닌가 싶거든요...

그니까 '이세계에 전생해서 자신의 이기적인 도덕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회귀해서 자신의 이기적인 도덕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불쾌할 이유가 뭔가 하는 문제임.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자신의 악행을 실제로 '수정 가능한' 세계 쪽이

작가의 윤리관을 경계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인지라.

귀찮으면 답 안 해도 됨... 나도 벼락치기 해야 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