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뷰 빡글론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흔히들 '레뷰'라는 줄임말로 부르는 이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는 작중의 말로 설명하면 이러한 것이다.
자신의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켜 무대 위의 '톱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무대소녀'들.
하지만 그것은 꿈에 부푼 희망과 낙관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무대소녀'로 있기 위해 평범한 삶의 방식을 잘라내고 바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무대소녀'의 연료로 소비해간다.
그런 무대소녀들의 앞에 단 한 명을 '톱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의문의 오디션의 공지가 도착하고.
하염없이 톱스타에 집착하는 무대소녀들은 바라고, 굶주리고, 목말라하며 서로 빼앗기 시작한다.
그리고 매일을 늦잠 자고 지각하며 '무대소녀'로서 살고 있지 않았던 반푼이 주인공 아이죠 카렌은 '오디션'에 참가할 '무대소녀'로서 선택받지 못했지만,
전학생으로서 오디션에 참가한 소꿉친구를 보고 어린 시절 '톱스타'를 목표로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줄거리만 보아도 눈치 빠른 몇몇 사람들은 떠올렸을 것이다.
관객들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를 보여주며 매료시키는 데에 일생을 건 자들.
'연기'란 '빡글'이고,
'오디션'은 '고독'이며,
'톱스타'는 '업계탑'.
…'무대소녀'는 '수라'.
수라=무대소녀
'글먹'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수라'로 있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잘라내고 바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수라'의 연료로 소비해간다.
…그리고 매일 늦잠자고 지각해가며 더 이상 '수라'가 아니게 된 '버러지' 또한 있다.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 몰살의 빡글
앞의 이야기로 '레뷰'에 고독 항아리에 갇힌 '글먹 수라'들의 경쟁이 그려져있다는 건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레뷰의 속편이자 극장판이 바로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wi(l)d-screen baroque)'이다.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란 무엇일까? 이 또한 듣기만 해서는 제대로 감이 오지 않는다.
풀어서 생각해보면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라는 것은 와이드스크린 바로크'와, '야생(wild)'과, '바로크'의 합성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이드스크린 바로크
와이드스크린 바로크란 복잡기괴함과 과장성을 특징으로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의 설정들과 시계열, 그에 반해 심플한 플롯을 가지고 있는 SF의 서브 장르다. 대표적으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SF판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거! 타이거!'가 있으며, 이러한 와이드스크린 바로크의 특징은 인간관계와 심상을 크게 부풀린 무대장치들,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맥락 없이 휙휙 바뀌는 장면들, 뜬금없이 사라졌다가 이후 시점에 등장하고 이전 시점에 이미 다시 돌아와있는 다이바 나나(천마) 등으로 표현된다.
우리들 또한 수라가 되어 한글을 켤 때마다 '지옥'에 갔다오며 1만자를 빡글할 때마다 세상을 찢는다. 분충은 매서운 감평에 사지가 찢기며 피를 토하고, 아까까지 자신이 수라라 했던 녀석은 어느 샌가 칼바람 나락에서 바이킹이 되어있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수라의 빡글. SF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빡글 또한 와이드스크린 바로크 빡글이라 할 수 있겠지.
와일드
그렇다면 와일드, 즉 야생이란 무엇일까?
극장판이 시작되고 조금 뒤, 작중 최강의 수라인 다이바 나나(천마)는 고독 항아리에서 승리한 두 명의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모든 등장인물을 불러모은다.
뜬금없이 이상한 질문을 하며 칼을 꺼내 공격해오는 천마에게 다른 수라들은 기겁하지만, 학년 수석이었던 '완벽한 수라' 한 명만은 동요하지 않고 대답한다.
천마 : "룰을 알고 있나요?" "열차는 반드시 다음 역에. 그러면 무대는? 우리는?"
완벽수라 : "관객이 바란다면, 나는 이미 무대의 위."
문답의 의미는 (다른 곳에서의 암시도 많이 있지만) 이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의 가사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역할을 끝마쳤다면 죽어서 꽃처럼 지고, 새로운 배역으로 다시 태어나라.'
극장판 초반의 등장인물들은 그저 TVA '레뷰 스타라이트' 등장인물들의 연장선상에 있기만 한 모습만을 보여줬고, 그것은 다시 말해 (야생, 자연의 섭리와 같이) 죽고 다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완벽수라는 "자신은 이미 무대의 위"라는 대사로 새로운 배역을 연기하며 계속해서 이전의 자신을 죽이고 관객을 매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그리고 '아직 죽지 못했기에' 천마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나머지 여섯 명은 그대로 천마에게 강제로 죽임당한다.
죽임당함으로써 다시 태어나, 단순히 TVA 레뷰의 등장인물들의 연장선이 아닌 극장판만의 신전개가 시작되는 것이다.
'역할을 끝낸 과거의 자신은 죽어야 한다.'
글먹 분충이라면 누구나 이 말의 무거움과 무서움에 공감할 것이 틀림없다. 흔히들 '스킨만 바꿔끼웠다', '패턴이 똑같다'라고 표현되는 클리셰의 남용 혹은 자기복제. 자신의 스타일에 매몰되어 '이 작가 거는 맨날 똑같네'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그렇기에 실로 다음 단계에 나아가려면 자기 자신을 죽여버려야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용기를 지닌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용기가 있다 해도 '이 작가는 쓰던대로 쓰지 이상한 거나 하네'하고 조롱을 들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분명히 아주 편안한 일이며, 프로로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는 명분까지 있다. 그럼에도 독자는 이기적으로 작가가 과거의 자신을 깨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해도, 진정으로 '수라'라면 독자의 기대에 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할을 끝내면 죽고 새로운 생명에게 다음을 맡긴다는, 야생의 섭리 와일드 빡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
그리고 세 번째 요소이자 야생(wild)의 또 다른 의미가 바로 '바로크'다.
바로크라 하면 당연히 서양 예술사에서 한 시대이자 사조를 의미하는 용어로서, 대체 바로크랑 레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하는 의문이 충분히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바로크에 앞선 두 시대의 양식의 이름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면 된다.
르네상스 - 매너리즘 - 바로크.
(TVA '레뷰 스타라이트' 주인공의 최후반 각성 장면.)
르네상스(Renasissance, 재탄생=재생산)는 당연하게도 본편인 TVA 레뷰 스타라이트를 의미한다.
'버러지'였던 주인공이 고대(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것(약속)을 되살리며, 무대소녀로서 부흥해가는 이야기. '반짝임의 재생산', '이야기의 재생산', '운명의 무대의 재생산'. 계속해서 반복되는 '재생산'이라는 테마 또한 르네상스의 정의 그 자체와 직결되어있다.
TVA 레뷰 스타라이트는 대단히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내보이며 관객들이 애착을 가지게 된 등장인물들은, 그 후일담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그녀들답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르네상스는 '다음 시대'로 이행된다.
'매너리즘'이다.
아름다웠던 르네상스 양식의 표현법이 발전하고 정착해, 조화롭고 안정된 상태를 추구하는 시기.
이미지로서는 완벽한 구슬 형태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진주다. '몰살의 레뷰'가 시작되기 전 극장판 초반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캐릭터였고, 그것에 어떤 종류의 완성감, 균형감을 느끼며 편안해하는 관객들 또한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레뷰의 '신극장판'에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매너리즘이 아닌 바로크,
무대소녀의 죽음.
그렇기에 천마는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 개막'과 함께 매너리즘을 몰살시켜 강제로 다음으로 이행시킨다.
바로크(Baroque,Barocco) = 상처입은, 일그러진 형태의 진주를 뜻함
관객이 '총집편'이 아닌 '신극장판'에서 보고 싶은 것은 TVA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 TVA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 TVA에서는 조명되지 않았던 싸움이다. 그렇기에 천마에게 한 번 몰상당해 죽은 무대소녀들은 새로운 배역-극장판에서의 역할-을 받아, TVA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카오루코와 후타바의 싸움에서 둘은 말하지 못했던 본심을 드러내며 관계에 상처를 입었다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고,
(후타바가 카오루코를 기다리게 하고.)
마히루와 히카리의 싸움에서 둘은 말하지 못했던 본심을 드러내며 관계에 상처를 입었다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고,
(마히루가 히카리를 몰아붙이고.)
나나와 쥰나의 싸움에서 둘은 말하지 못했던 본심을 드러내며 관계에 상처를 입었다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고,
(쥰나가 나나에게 화를 내고.)
마야와 클로딘의 싸움에서 둘은 말하지 못했던 본심을 드러내며 관계에 상처를 입었다 새로운 관계로 나아간다.
(클로딘이 마야를 이긴다.)
카렌 또한 TVA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와 속내를 보여주며, 지금까지 줄곧 거짓말해온 것을 관객에게 고백한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야생의 자신을 드러낸 탓에 상처입은 관계는 처음과는 다른 형태로 수복된다. 깨진 미러에 꽃잎이 내려앉고, 부러진 미스터 화이트의 목에 박스테이프가 감기고, 쥰나와 나나의 찢긴 사진은 물에 젖어 접히고, 칼날에 베인 클로딘과 마야의 계약서 위에선 두 사람의 손이 겹친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을 드러낸 탓에, 상처입고 일그러졌지만 그렇기에 아름다운 진주.
그것이 야생(wild)의 또다른 의미이자, 르네상스-매너리즘을 타파하는 바로크라는 것.
빡글에 있어서 바로크란, 능숙하고 안정된 글이 아닌 작가가 자기 자신을 그대로 토해내는 글. 보여주기 창피한 모습을 그럼에도 독자에게 전부 보여주며 그 글의 고유성에 더더욱 매료시키는 일일 터다. 작중에서 텐도 마야(완벽수라)가 말했듯 어떤 장르라도 템플릿대로 쓰며 어떤 트렌드에도 대응할 수 있는, '상업작가로서 완벽한 형태' 또한 하나의 도달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독자가 '바로크'를 바란다면, 상처입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크 빡글.
결론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와이드스크린 바로크와, 야생(wild)과, 바로크.
이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진 것이 바로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 인 것이다.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나는 수라가 되겠다'라고 선언하는 건 쉽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어떻게 해서 수라가 될 것이냐' 하는 질문에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극장판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 - wi(l)d-screen baroque'를 본 나는 비로소 그것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수라가 취해야 할 빡글의 형태. 그것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빡글하며 과거의 자신을 끊임없이 물어뜯고, 상처입은 진주처럼 취향도 본모습도 전부 내보이는.
와일드 스크린 바로크 빡글.
나아가야 할 길이 명확해졌다면, 나머지는 묵묵히 그 길을 걷는 일뿐.
…빡행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p.s. 이 글(5,220자)은 어제자 패배 선언문과 오늘자 패배 선언문 두 개를 20분 일찍 병합해 올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1월 11일
김 혜음(와일드) 拜上
https://www.youtube.com/watch?v=Fjz8uOq77lYEnding : Revue Starlight "wi(l)d-screen baroque" - 우리들은 이미 무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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