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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엑스포, 개막 코앞인데 티켓 반도 못팔아... 음식가격도 지나치게 높아
[시리즈] 실시간 폭망중인 오사카 박람회 · 일본 오사카 세계 박람회가 폭망중인 이유 · 日오사카 엑스포 공사비 급증에 참가 철회 속출... 일본만 속앓이 · 日교원단체, 오사카 엑스포 초대 단호히 거절... 이유는 가스폭발 · 오사카 엑스포 가스폭발까지 펑펑... 日, 전혀 위험하지 않다 황당 해명 · 日오사카 엑스포, 또 수천억 예산 증액해 논란... 그리스는 참가 포기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준비 과정 내내 부정적인 뉴스 일색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도 문제가 속속 터지고 있음 오사카 엑스포 '사전판매 티켓'의 목표 판매량은 1400만장 하지만 개막까지 50일도 안 남은 현재 판매된 건 787만 정도에 불과함 그나마도 80% 이상, 그러니까 700만장은 기업이나 단체 등 재계가 일본 정부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구매해준 거고 보통 개인들이 구매하는 공식사이트에서의 판매는 6%에 불과한 상황 구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업 등 상대 판매는 이미 작년 10월 초에 종료되었음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 구매자가 거의 없다는 건 앞으로도 판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근데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님 1400만장이라는 목표는 '사전예매 티켓'의 목표 판매량임 진짜 목표는 사전예매 티켓, 패스권 등 모든 종류를 합해서 2300만장을 파는 것이고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800만장은 팔아야 함 현재 800만장도 못 팔았으니 반도 못 채운 셈인데 만약 폐막 때까지 만화하지 못해서 적자가 나면 '일본정부, 오사카, 경제계' 셋이서 그 손해를 누가 책임질지 폭탄 돌리기를 해야하는 상황임 그래서 일본 정부&오사카는 '당일권'을 판매하기로 함 (당일권은 사전 예매 없이 당일에 현장에 방문해서 구매할 수 있는 입장권을 말함) 당초 오사카 엑스포 협회 측은 박람회장의 혼잡도를 줄이고 대기 시간을 없애 열사병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 당일 판매권 없이 무조건 날짜는 물론이고 방문시간까지 세세하게 예약하는 예약권 100%를 고수했음 근데 지들이 봐도 심각할 정도로 티켓이 안 팔려서 폭망 + 미친듯이 적자가 발생할 게 뻔해지니꺼 결국 당일권 상시판매 가능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 이게 적자 엑스포을 벗어나기 위해 긴급 대책으로 발표된 개선안임 1. 당일권 판매 2. 예약권 구매 관련 간소화 3. 패스권 할인 근데 또 문제가 되는 게 3번임 정부와 오사카를 믿고 구매한 기존 고객들은 패스권을 3만엔에 구입했는데 갑자기 대폭 깎아서 판매해버리니까 먼저 구매해준 사람들만 손해를 보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패널들도 이런 건 운영측의 대응이 엉망이라고 지적함 게다가 이런 새로운 시도가 판매량 증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임 작년 10월에도 하도 안 팔리니까 100%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종이티켓을 판매하게 했는데 지금까지 5000장 팔린 게 고작임 이번 시도도 비슷한 정도의 효과를 낸다면 적자탈출은 절대 불가라는 소리 게다가 티켓판매 부진과 별개로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음 현재 엑스포 출점기업들의 예상에 따르면 라멘 1그릇이 2000엔 정도 할 거라고 함 엑스포 회장 내에서 판매하는 음식이니까 시중가보다 어느정도 비싼 건 이해할 수 있어도 2~3배가 넘는 건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로 여겨질 가능성이 큼 근데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함 우선 쓸데없는 요구조건이 너무 많다보니 비용이 과다하게 증가함 음식의 다양성, 예컨대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한 음식 같은 걸 내놓으라고 하니까 신메뉴를 고안해야 하고 그 개발비가 다른 음식에도 전가될 수밖에 없음 그리고 친환경 때문에 용기나 포장재를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써야하니까 그걸 구하는데도 인건비가 들고, 그런 특수 소재는 그 자체가 비싼 문제가 있음 또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라니까 식재료나 젓가락 같은 걸 전부 수입품 대신 국산품을 써야하는데 그러면 또 가격이 상승함 이것 뿐만이 아님 엑스포 회장 측이 강제하는 규칙이 너무 까다로운 점도 음식 가격 상승의 요인 중 하나임 박람회장에 재료를 반입하려면 안전 문제 때문에 낮에는 안 되고 무조건 새벽이나 심야에 하라고만 한다는데 이러면 인건비와 배송비용이 더 높아지고, 식재료의 중간 보충이 안 되니까 여분을 필요 이상으로 사야해서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난다고 함 게다가 이런 조건을 처음에는 설명조차 해주지 않다가 나중에야 알려줬다는 것 ㅋㅋㅋ 티켓이 안 팔려서 방문자도 적어, 음식값은 너무 비싸... 과연 장사가 제대로 될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함 엉망인 마스코트 이상으로 엉망진창인 2025 오사카 엑스포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기대됨
작성자 : 난징대파티고정닉
식민지인이었던 내가 대영제국의 체스 챔피언?!
[시리즈] 체스사 시리즈 · 체스 유럽 전파 초기의 무서운 이야기 · 1000년 전의 이슬람 체스 퍼즐, 만수바(مَنصوبة) · 15세기의 체스 대격변 패치, "여왕의 체스" · 대수기보법과 오스만제국 출신 체스마스터 이야기 · 1824년, 런던 - 에든버러 클럽 서신체스 매치 · 에반스 갬빗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 인디언 오프닝과 어느 시골 브라만의 이야기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上 - 영웅편 -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下 - 악귀편 - · 윌리엄 슈타이니츠 : 세계 체스 챔피언의 탄생 · 엠마누엘 라스커와 지크베르트 타라쉬, 두 독일 유대인 체스마스터의 삶 · 체스 선수는 기보 저작권의 꿈을 꾸는가? · 미국체스협회 레이팅 2위를 달성한 살인범의 이야기 · 체스 역사 속의 TMI들 1904년부터 1세기 넘게 매년 개최되고 있는 전통 있는 대회, 영국 체스 챔피언십(British Chess Championship).영국의 체스 챔피언을 선정하는 이 대회의 우승자 목록을 살펴보면, 평범한 서양 인명들 사이에 유독 이상한 이름이 하나 눈에 띈다.미르 술탄 칸(Mir Sultan Khan)이라는, 도무지 영국인스럽지 않은 이름.1929년, 1932년, 1933년, 세 번에 걸쳐 영국 챔피언이 된 이 체스선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술탄 칸(Sultan Khan)은 1903년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 펀자브 주(現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마을의 종교 지도자 겸 소(小)지주로, 좀 사는 집안이었다는 모양.좀 사는 집안답게 아버지는 취미로 자식들에게 어릴적부터 체스를 가르쳤다는데, 이때의 체스는 서양의 체스는 아니고, 당대 유행하고 있던 인도식 체스 변형이다.18~19세기경 인도는 이슬람의 영향과 유럽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이슬람식 샤트란지와 유럽식 여왕의 체스가 혼합되고 자체 변형까지 들어간 기묘한 체스를 하고 있었다는 모양.비숍과 퀸의 움직임은 서양식인데, 폰은 한 칸씩만 전진하고, 캐슬링 대신 King's leap만 있고, 룩폰은 룩으로, 나이트폰은 나이트로, 비숍폰은 비숍으로 승급하는 등의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술탄 칸은 이 인도식 체스로 펀자브에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라고 소문이 났는데, 사실 그래봐야, 인도 변방에서 체스 좀 둔다는 평범한 있는 집 자식으로 끝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펀자브 지방의 대부호, 우마르 하야트 칸의 눈에 들지 않았더라면.우마르 하야트 칸 티와나(Umar Hayat Khan Tiwana).영국의 인도 정복에 협력하여 크게 가세를 불린 티와나 가문의 가주였던 그는, 그 역시 인도 제국군 출신이기도 했으며, 펀자브 주에서 제일 가는 토지 소유자 중 하나였다.동서고금의 부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는 여러 예술가들의 후원가 역할을 자처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곤 했는데, 술탄 칸도 그의 트로피 중 하나였다.술탄 칸에게는 다른 트로피보다는 좀 더 특별한 역할이 부여될 예정이기는 했지만.1926년, 스무 살 갓 넘긴 술탄 칸은 우마르의 후원을 받고 본격적인 체스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한다.줄곧 인도식 체스만 두었던 그에게 우마르 경은 강사를 붙여 서양 체스를 가르쳤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28년, all-india championship에서 술탄 칸은 8승 1무라는 성적으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였다.물론, 환경이 환경이다보니 아직 경기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사실, 술탄 칸을 후원한 우마르 경의 목적은 정치적인 데에 있었다.당시 영국령 인도는 독립운동으로 정치적 혼란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간디의 소금행진이 1930년.)특히 이 과정에서 점차 커져가는 힌두계의 목소리에 무슬림들은 긴장하고 있었다.우마르 경은 펀자브 무슬림의 대표이자 인도 출신 군인의 대표자로서, 런던에서의 외교 활동에 뛰어들 생각이었으며,런던의 정치판과 사교계에서 활용할 자신의 브로치로서, 술탄 칸을 키워냈던 것이었다.1929년, 이렇게 술탄 칸은 인도부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India)의 자문위원회에 임명된 우마르 경을 따라 런던 체스계에 진출하게 된다.유럽에 처음 왔을 당시, 술탄 칸은 기보도 못 읽고 영어도 거의 못했으며, 일류 선수들과의 경쟁은 어려운 실력이었지만,프레드 예이츠(Fred Yates), 윌리엄 윈터(William Winter) 등 영국에서 제일 가는 선수들이 코치로 붙어 그를 가르쳐주었다. (물론 우마르 경의 머니파워였다.)예이츠 왈, 술탄 칸은 서양 체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프닝이 매우 처참하였으나, 미들게임과 엔드게임에서 이미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술탄 칸은 빠르게 성장하여....얼마 뒤 1929년 British Championship에서 곧바로 우승, 영국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ㅅㅂ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렇지 이게 말이 됨?" 싶은 급전개지만, 당시 Carlsbad International Tournament라는 훨씬 격 높은 국제대회가 영국 챔피언십과 동시에 개최되어, 일류 선수들은 그쪽으로 빠져나간 것이 한 가지 원인이었고,또, 사실 당시 영국의 체스선수 라인업이 국력에 비해 유독 부실하기도 했다.당시 영국 최고 선수들로는 프레드 예이츠, 윌리엄 윈터, 조지 앨런 토마스 정도가 언급되곤 했는데,이 영국의 일류 선수들도 저 국제대회에 출전해서는 전체 22명 중 17위(예이츠), 21위(토마스)로 꼬라박았을 정도였으니, 영국의 체스선수 풀이 얼마나 쳐박았는지 알만하다.물론 어쨌거나 주요 선수가 없었다고 한들 엄연히 우승은 우승이었고, 우마르 경은 매우 흡족해하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승리를 한껏 이용하였다.그러나 술탄 칸의 본격적인 커리어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술탄 칸은 더 많은 훈련을 받았고, 점점 더 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커리어 끝까지 오프닝은 개못했지만.)scarborough 국제 토너먼트에서는 4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영국 선수들 예이츠, 윈터, 토마스보다 훨씬 더 앞선 성적이었고,Liège Masters’ tournament에서는 사비엘리 타르타코워에 이어 2위,헤이스팅스에서는 막스 에우베(5년 뒤 세계챔피언), 카파블랑카(전 세계챔피언)에 이어 3위를 차지하였다.타르타코워와의 12판 매치에서는 4승 5무 3패로 승리하기까지 하며, 자신의 영국 챔피언 타이틀이 결코 물로켓이 아니었음을 거듭 증명하였다.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유색인종에 식민지 출신.모진 핍박과 인종차별을 겪으며, 영국 사회의 어둠 속에서 체스 하나를 무기로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같은 이야기는 딱히 없고, 단숨에 영국의 스타 선수로 등극하였다.워낙 영국의 체스선수 풀이 개박살이라, 술탄 칸은 영국 국기를 달고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유일한 선수가 되었고,체스 올림피아드(국가대항전)에서도 영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1번 보드를 세 차례나 맡았다.헤이스팅스 대회에서 카파블랑카 상대로 승리를 따냈을 때는 아예 영국 신문들 헤드라인에 걸렸을 정도였다.팀전이나 인맥으로 좌우되는 스포츠들이라면야 모를까,순수 개인전인 체스에서 실력 있는 사람을 억까를 할래야 할 방법도 없고...우마르 경이라는 어마어마한 뒷배도 달고 있었으니.....1932년에는 우마르 경이 인도에서 '미스 파티마'라는 여성 체스 플레이어를 한 명 더 데려왔는데,오픈 부문에서는 술탄 칸, 여성 부문에서는 미스 파티마가 우승하며 인도 출신이 챔피언 자리를 다 뜯어가버리기도 했다. (이때 파티마의 전적은 충격적인 12전 11승 1무.)이렇게 유럽 체스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술탄 칸이었지만, 사라지는 것도 혜성처럼 순식간이었는데,1933년, 후원자였던 우마르 경의 자문위원회 임기가 끝나, 술탄 칸도 함께 인도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술탄 칸은 눈물을 머금고,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체스 커리어를 모두 내려놓은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같은 이야기는 딱히 없고, 술탄 칸은 집에 돌아가는 것을 엄청나게 기뻐했다고 한다.주변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술탄 칸은 심각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엿같은 런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각종 호흡기 질환을 내내 달고 살았다고 한다.기후가 도저히 적응이 안 돼서 영국에 더 있으면 오래 못 살 것 같다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고.사실 집 떠나와 이역만리에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몇년째 체스만 두고 사는데 행복하면 그게 오히려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술탄 칸은 매우 짧았던 커리어, 언어 장벽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에서 경쟁하며, chessmetrics상 세계 6위라는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준 뒤 곧바로 체스계에서 영영 사라져버렸다.그는 고향 펀자브로 돌아가 평범하게 가진 땅으로 농사나 짓고 살았으며,집에서 가끔 취미로 체스를 두긴 했지만 토너먼트 초대는 모조리 거절했고,체스를 진지하게 가르쳐달라는 아들의 부탁에는, "그럴 시간에 공부처럼 더 생산적인 일이나 해라"라고 답했다고 한다.2024년, FIDE는 술탄 칸을 명예 그랜드마스터로 지정, 늦게나마 그의 업적을 기렸다고 한다.
작성자 : 김첨G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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