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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0원으로 누린 최고의 호사

임승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03 09:58:43
조회 213 추천 2 댓글 1
														

때는 2014년 여름. 풍문으로 애플망고빙수라는 놈이 그렇게 맛있다는 얘기를 접했다. 호기심이 동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파는 곳을 찾아보았는데 남산 신라호텔 1층의 더라이브러리 라운지 카페였다. 1시간 안에 가닿을 곳이지만 사회적 거리감은 1광년은 될 법한 곳. 순간 위축됐지만 그래도 빙수인데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나 싶어 신라호텔 홈페이지에 접속해 가격을 확인했다 4,200원. 피식. 괜히 마음졸였구먼. 그런데 아무래도 동네 분식집이 연상되는 가격에 싸한 느낌이 들어 다시 살펴보니, 아뿔싸 42,000원! ‘0’을 하나 빼먹었구나. 촌닭이라 빙수가 42,000원이나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해서 저지른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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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진입니다.)


먹느냐, 안 먹느냐(To Eat or Not to Eat),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다고 하니, 온 가족 한 끼 외식이라고 치자. 다만 그 42,000원짜리가 빙수여서 당황스러울 뿐. 까짓것 올여름 빙수는 이거 하나로 끝이다. 주말이면 붐빌 것 같아 평일을 골랐다. 첫째(당시 5살)를 어린이집에서 일찍 하원시키고, 갓 돌이 지난 둘째에다가 아내까지 온 가족이 차에 몸을 실었다. 지리적으로는 그렇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1시간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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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진입니다.)


당시 타고 간 차는 2004년형 중고 투싼. 2012년에 24개월 할부로 구매해 착실히 할부금을 납부하고 있었다. 호텔 앞에 도착하니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 “주차 도와드리겠습니다. 내려주세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할부 안 끝난 2004년형 중고 투싼 따위에게 이 무슨 과분한 처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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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진입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주차하겠습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호텔 앞은 발레파킹 전용 구역입니다.”

“네? 발레요? 공연 보러 온 것 아닌데요?”

“아! 발레파킹은 주차대행 서비스입니다. 호텔 앞에서는 고객님이 직접 주차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주차 대행만 가능한 구역입니다.”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혹시…… 주차대행 서비스는 따로 비용이 청구되나요?”

“네, 비용은 2만원입니다.”


하핫. 42,000원짜리 빙수 먹으러 왔는데, 주차 요금 2만 원을 내야 한다고? 찬찬히 직원의 설명을 들어보니, 직접 주차하려면 저 밑의 주차 건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만치 보이는 곳까지 돌아가서 주차하고 한여름에 가파른 오르막을 걸어 올라 다시 호텔 앞으로 오면 된다는 얘기다. 그것도 돌이 갓 지난 아기까지 동반해서! 고작 빙수를 먹기 위해! 힘이 턱 빠지는 느낌이었다.


“저기요… 차 뒷좌석을 보시면 다섯 살짜리 아이와 돌이 갓 지난 아기가 있습니다.”

“네.”

“저 밑에 주차하고 이 땡볕에 애들 데리고 다시 오려니 눈앞이 막막하네요. 저희는 그저 여기 애플망고빙수가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오늘 그거 먹으러 총출동했는데요.”

“………”

“제가 이런 데 처음 오다 보니 잘 모르고 그냥 무작정 호텔 앞까지 왔네요. 진짜 빙수만 먹고 바로 집에 갈 건데요. 어떻게 봐주실 수 없을까요?”


신라호텔 직원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측은지심이 감지되었다. 뭔가 도와주지 않으면 몹쓸 인간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시추에이션 아닌가. 결국 그 직원의 배려로 우리는 발레파킹 구역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었다. 드디어 일차 관문을 어렵사리 통과했다. 초장부터 주차 때문에 주눅 들긴 했지만, 우리 가족은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갖고 호텔 입구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괜스레 로비의 사람들이 힐끗힐끗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신라호텔 로비의 그 유명한 크리스탈 장식을 보며 아이들이 “우와!! 진짜 예쁘다!”를 연발하는데, 제발 좀 그만했으면 싶다. 유독 우리 가족만 행색이 초라해 보여 시선은 하방 15도를 지향하고 몸과 마음은 모두 구부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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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진입니다.)


쭈뼛쭈뼛 두리번두리번 더라이브러리 라운지 카페에 들어서니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소리가 어우러진 삼중주 음악이 들린다. 역시 신라호텔이라 음악도 라이브 연주인가 보다. 마침 연주자 가까운 쪽에 빈 좌석이 있어 직원의 안내를 받아 냉큼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주문을 받는 직원이 다가왔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음… 애플망고빙수… ‘하나’ 주세요.”

“애플망고빙수 ‘하나’ 말씀이죠?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가요?”

“음…. 네….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빙수가 나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깜빡했네요. 저기… 숟가락은 ‘네 개’ 부탁드려요….”

“숟가락 ‘네 개’ 말씀이지요? 알겠습니다.”


차마 두 개 시킬 수는 없었다. 84,000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숟가락은 네 개 필요했다. 낯선 문화권에서의 어렵고 긴장된 주문을 마치고 한숨 돌리니 그제야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삼중주의 선율과 화음이 귀에 들어온다. 특히 둘째가 무척 신기해하며 집중하는 것 아닌가. 자연스럽게 둘째를 품에 안고 일어나 삼중주 라이브 연주자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섰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 문화권에서는 나밖에 없었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유리구두 신은 신데렐라는 그저 빙수만 먹고 자리 뜨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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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진입니다.)


드디어 애플망고빙수 등장. 역시 모든 면에서 동네 분식집 빙수와는 격이 다르다. 대패처럼 얇게 썰린 연유 얼음이 층층이 쌓여 있는데, 입에 넣으면 각각의 층이 순차적으로 녹는 오묘한 질감을 선사한다. 큼직한 깍두기처럼 썰린 제주산 애플망고는 입에 넣고 한입 물면 과연 씹히는 것인지 이빨에 닿아 녹는 것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부드럽다. 양도 생각보다 많아서 성인 둘이 먹기에도 충분할 정도다. 물론 4인 가족에게는 좀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 더 시킬 수는 없는 노릇(형편) 아닌가.


접시의 얼음 한 톨까지 싹 비운 후 호텔을 이곳저곳 구경했다. 발레파킹 구역에 무료로 주차했으니 오히려 2만 원 벌었고,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삼중주 연주까지 듣지 않았는가. 집에서 애플망고빙수를 즐기며 연주자를 섭외해 라이브 연주를 들으려면, 42,000원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2014년 우리 가족은 어쩌면 42,000원으로 가능한 최고의 호사를 누린 것일지도 모른다.


** 제가 2018년에 출간한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작은 사치로 큰 행복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연말에는 가족과 조그마한 사치를 부려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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