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Hornblower 중 3부인 "Hornblower and Hotspur" 중의 한장면입니다. 여기서, 작은 sloop 선의 함장인 혼블로워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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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블로워는 비좁은 해도실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 먹고 있는 염장 쇠고기에서는 여태껏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톡쏘는 맛이 나는 것이, 새 나무통에서 꺼낸 것이 틀림없었다. 이 새로운 풍미가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쇠고기는 다른 절임 작업장에서, 다른 종류의 소금을 가지고 절여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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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염장 쇠고기, salt beef입니다. 이 소금에 절인 쇠고기는 두번 구운 딱딱한 빵, 즉 비스킷(건빵)과 함께, 영국 해군 뿐만 아니라, 영국 육군에서도 주식으로 사용했던 식품입니다. 영국인들은 쇠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BBC에서 만든 Sharpe 시리즈의 최종판 "Sharpe\'s Waterloo" 편을 위한 광고판인데, 이때가 영국에서 광우병이 한창이어서, 영국산 쇠고기가 수출 금지되었던 때입니다. 그래서 저 광고판의 카피가 \'1815년에도 프랑스인들은 British beef를 안좋아했다\' 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영국인들의 유머 감각도 나쁘지 않지요 ? 참고로, beef라는 말에는 쇠고기라는 뜻도 있지만 힘, 근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실 쇠고기라는 것이 장기간 보존하기에는 영 껄끄러운 식품입니다. 그런데도 고기를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먼 바다로 나가면서도 꼭 쇠고기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보존을 위해서는 소금을 썼지요.
소금에 절이면 왜 고기가 썩지 않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잘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고기의 부패를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증식을 하려면 수분이 필요한데, 소금을 잔뜩 섞어놓으면 이 소금이 삼투압 효과로 고기의 조직에서 물을 빨아들이게 되고, 이때문에 박테리아 증식이 억제되는 것입니다.
이때 박테리아가 억제되면서 유익한 유산균의 활동이 대신 일어나는데, 그때문에 고기에는 산성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약간의 발효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 위에서 혼블로워가 먹는 염장 쇠고기에 톡 쏘는 강한 맛, 영어로는 tang 이라고 하는 것이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문제는 당시 소금은 결코 싼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야 소금은 당연히 염전에서 바닷물을 말려서 얻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조량이 부족한 영국에서는 그게 어려웠다고 합니다. 중부 유럽인 독일에서도 소금하면 바다소금보다는 암염이 더 많았지요 ? 영국에서는 해염과 암염의 비율이 어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소금은 뭐 그렇게 싼 물건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금에 절이는 것 만으로 고기의 부패를 막으려면, 적어도 소금 농도가 20%는 되어야 했다고 하니까, 정말 막대한 양의 소금이 필요했겠지요.
중국만 해도, 전국시대에 산동반도의 제나라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다에 면해있어서 염전으로 소금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니까, 화학 소금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기 전에는 소금이 비싼 물건이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마젤란이 지구를 한바퀴 돌겠다고 항해를 떠날 때 든 돈이, 요즘의 화폐가치로 따지면 콜럼비아 우주왕복선 발사 비용보다 더 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음식 절임에 들어가는 소금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에이 설마...
원래 서양 고기 요리는 대개가 맛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기회로 국내외 괜찮은 호텔에서 \'썰어볼\' 기회도 많았고 (제 돈 내고 먹지는 않았습니다) 카투사로 2년 복무하는 동안 양키 군대밥도 질리도록 먹어보았습니다만, 고기 요리는 역시 한국식이 제일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서양 고기 요리 중에서 제일 입맛에 맞았던 것을 고르라고 하면 콘비프(corn beef, corned beef)를 고르겠습니다. 우습게도, 이걸 먹어본 것은 호텔 같은 곳이 아니고 미군 짬밥으로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콘비프는 호텔 같은 곳에서 취급하기에는 좀 저급한 요리 같더군요.) 콘비프는 미국이나 영국에만 있는 요리인 모양이던데, 그냥 소금에 절인 쇠고기를 물에 삶은 것입니다. 색깔은 아래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핑크색이 나고, 맛은... 그냥 짭짤합니다. 대개 사우어크라우트(신맛이 나는 독일식 양배추 절임)와 함께 나오는데, 제 소박한 입맛에는 그나마 뭐 낫더군요.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영국 육해군에서도, 지급받은 염장 쇠고기를 대개 그냥 물에 삶아먹었다고 합니다. 뭐 따로 요리를 해먹을 재료나 도구도 없었을 것이고, 또 과다한 염분을 빼내려면 어차피 삶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 물에 삶은 염장 쇠고기가 바로 콘비프입니다. Corn beef라는 말은 원래 corned beef에서 나온 말이고, 여기서 corn이라고 하는 것은 밀이나 옥수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래나 소금, 곡물의 작은 알갱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즉, 굵은 소금에 절인 쇠고기라는 뜻이지요.
현재도, 특히 미국에서는 콘비프를 많이 먹습니다. (그러니까 군대 짬밥으로도 나오겠지요 ?) 특히 델리카티센 같은 샌드위치 속에 많이 넣어먹습니다. 바로 저 위의 사진처럼이요. 하지만 저렇게 무식한 베이글 샌드위치는... 음... 전 먹어본 적 없습니다. (저게 입에 들어가기는 하나 ?)
샤프 시리즈 중, 나폴레옹의 1차 퇴위 직전의 툴루즈 전투를 다룬 "Sharpe\'s Revenge" 편을 보면, 전투 직전에 아침으로 먹던 삶은 염장 쇠고기를 옆구리에 차는 식량주머니(haversack)에 넣어두는데, 전투가 끝난 뒤에 갑자기 시장기가 돌아 그걸 다시 먹으려고 꺼내보니 거기에 총알이 박혀있더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질기게 굳어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아마 소금에 오래 절여놓으면 고기가 질겨지겠지요 ? 더군다나,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음식을 주지는 않습니다.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쇠고기는 연골과 힘줄이 잔뜩 섞인 아주 형편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래의 샤프 시리즈 중 한 장면을 보면, 당시 영국군들이 이 염장 쇠고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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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플로우 중령은 네언 장군의 2개 잉글랜드 연대 중 하나의 지휘관이었다. 그는 키가 작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의 남자였는데, 툭하면 자존심을 구겼다고 생각하여 깜짝 놀랄만큼 무례하게 나오곤 했었다. 네언 장군은 이 성격 더러운 남자를 마음에 들어하는 편이었다.
"타플로우는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야. 그냥 전형적인 영국사내라고 생각하게. 고집세고, 멍청이같고, 굳세지. 마치 설익은 돼지고기 덩어리처럼 말이야."
"아니면 염장 쇠고기처럼이요." 샤프는 이 스코틀랜드인 장군의 낚시질에 걸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장군님께서 염장 쇠고기를 좋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엄청 많이 드시게 될테니까요."
... 중략....
"프레데릭슨 대위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 ?"
"그 명령이 수행되기를 바라신다면 특히 없겠지요. 하지만 그 친구는 일 하나는 딱 부러지게 해내지요. 그리고 장군님이 방문해주시면 그의 부하 병사들이 기뻐할 겁니다."
"물론, 물론." 네언 장군은 그의 차에 럼주를 더 부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프레데릭슨의 라이플 부대는 내 여단에서 제대로 먹는 유일한 부대란 말이야. 염장 쇠고기는 전혀 먹지 않더라고 ! 그런데도 한번도 약탈질을 하다가 잡힌 적이 없었지 ?"
"왜냐하면 그들은 라이플맨이거든요. 그 녀석들은 너무 영악해요."
네언 장군은 웃었다. "이 전투에서 이기면 최소한 염장 쇠고기는 더 안먹어도 될 걸세. 프랑스군 식량을 차지하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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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먹는 콘비프는 보존을 위해 절이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게 오래 절이지도 않고, 또 소금을 많이 사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뭐 그렇게 질기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요리 중에 Wellington beef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쇠고기 등심 위에 밀가루 패스트리를 살짝 얹어 구운 요리인데, 이 요리의 이름은 워털루의 웰링턴 공작에서 나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하지만 정작 웰링턴은 쇠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양고기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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