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한 일: 놀랄 만한 일. 일 자체가 단순한 해프닝 이었지만,
오늘 낮시간 까지도, 내가 그 단순한 해프닝에 대해 떠올리고 있으며,
또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니면,
"당황" 스러운 일: 전혀 예고하지 않았던 순간에, 사실 우리에게
새로운 사건과 상황은 늘 연출되어 지니까, 그리 당황해야할 이유도
없지 않았을까 싶지만...

 어제, 영국의 한 유명한 박물관 디렉터가 스피커로 초청된
짧은 강의가 하나 있었다. 사실, 내 친구와 가려했는데,
썩 내켜하지 않아 보여서...그 아이를 데리고, 지옥행을 할 순 없으니...
나 혼자 가기도 좀 뭐했고, 마침 같이 있었던 분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은 잘 주무셨고...나도 대충 노트정리 좀 하고,
슬슬...서로의 갈 길을 가고, 헤어져, 집에 돌아오던 지하철 안에서...

 한 10분여쯤, 내가 탈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마침 차가 들어오고...내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털썩 주저 앉았는데...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는,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차림의 딱 봐도 사회 초년생.
마침, 나도 인턴쉽을 구하고 있어서 그런지...
예전 같았으면, "그래 너도 이제 사회인으로써 살아 가게 되는구나.
넌 나보다 나은 인간이겠군. 넌 사회 적격자군. 너도 뻔한
그 무리중 하나군." 하고 시덥지 않게 여겼겠지만...
어제는, 왠지 나와 같은 동질감을 느낄 수가 있었어.

 그 강연회때,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건 나와 내 무리여서 그랬는지...
그 아이의 엉거주춤한 폼에, 아직 아이티가 빤히 나는 외모에
약간은 큰 그 양복차림이, 나의 관심을 끌었어.
난 그 아이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봤어.
딱, 김치맨이었어.
게다가, 한쪽어깨로 맨 공대생같은 가방이 웃기지만 좋았어.
mp3인지, 핸드폰인지 손에 들고있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귀에는 뭘 꼽고선 서있더군.
아쉽지만, 두 정거장 뒤에 먼저 내려서 떠날 애였어.


 참 신기한 것 같아.
누구와, 오랜시간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 이름도, 나이도,
성적 취향도, 고향도, 전공도, 직업도, 몰라도...
이렇게 내 관심을 끌고, 내 맘에 들다니 말이야.
그건, 그 아이와 나와의 동질감과 동시에,
왠지 무관심한척, 멋있는척, 당당한척, 애쓰는 태도에서 발견한
깊은 유대감과 미안함이었을 거야.
그 아이도...집에가면 디씨나 하겠구나 싶었는데.
그럼 차라리,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을래? 하고 싶었지만,
사회적 통념속에 너무나 깊이 익숙해져 버린 나, 김치새끼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어.


 전화번호도...이름도 모르고...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 아이를, 집에 돌아보냈다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아이에게 확하고 호감을 느낀건,
내가 좋아했던 그 공대생 아이를, 사실 가슴 깊이 그리워하고 있는
그 애증때문 이었을까....문득, 그 아이도 어느덧,
회사에 입사하였거나, 돈도 못받는 인턴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사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가끔씩 울고 난리치고, 약에 의존하고, 광란스럽게 살던 그 아이가....
속은 아주 많이 여려서, 어른스러운 레쥬메와 양복속에도...
그 애띈 보조개가...선명하게 기억에 남거든.


 뭐, 그렇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