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지난 4분기 연속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업률은 오히려 급락하는 등 또다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올 3분기(7~9월) 연율로 3.9%(분기 대비)에 이르는 깜짝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대졸자 취업 내정률이 57.6%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고 미래 경기를 예측하는 소비자태도지수가 4개월 연속으로 하락하는 등 불황의 시그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내수시장 역시 성장 한계점에 달했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며, 대규모 플랜트 수출 등 해외시장 개척 역시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엔고로 인한 생산기지 이전으로 산업공동화가 더욱 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989년부터 시작된 헤이세이 장기 불황 때는 저성장 고실업이었지만 이번엔 성장 속 실업 증가가 일본의 새 장기 불황 사태의 특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인문학부 4년생인 이노우에 신지로 씨(22)는 일본의 실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올해 하반기 7개 회사를 대상으로 인터뷰 면접을 실시했지만 모두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중국어나 영어 등 외국어 특기자들 위주로 신규 채용되면서 인문ㆍ상경계는 물론 공대 출신 대학 졸업자들도 일자리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대학 4년생의 취업 내정률은 올해 10월 현재 57.6%에 머물면서 1996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저 수치를 기록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졸업을 6개월 앞둔 대학 4년생 중 절반가량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주요 기업들의 상반기 취업 내정이 대부분 전년 하반기 종료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취업 졸업 예정자들은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취업 재수생으로 생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대졸자들의 취업 내정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 하락한 수치이며 사상 최악의 취업 빙하기로 불렸던 2003년(60.2%)보다 더 낮은 수치다.

일본 주요 기업들이 3분기(7~9월) `반짝 회복`에도 불구하고 신규 채용을 줄이는 이유는 해외로 생산ㆍ투자시설이 대거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6개월 이상 엔화 강세가 지속된 데다 자국 내 내수시장이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조짐을 보이면서 자동차, 전자, 유통 등 고용 파급효과가 큰 주요 기업들이 해외 위탁생산이나 생산시설 이전을 잇따라 확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호텔 체인회사인 도요코인이 중국 본토 진출을 선언했고 관광회사인 긴키투어가 대만과 인도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등 최근에는 호텔 관광 등 서비스업계의 해외 진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도쿄 시내 빅3 호텔로 알려진 오쿠라호텔도 일본 국내 투자를 동결하는 대신 내년 상반기 중국 상하이 등 아시아 지역에 직영 호텔을 개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하반기 이후에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일본 국내 시장의 산업 공동화 추세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염려했다. 기업들이 해외 투자에만 주력하면서 일본에서는 취업 활동에 성공하지 못한 `슈쇼쿠 로우닝`(취업 재수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 인터넷 사이트와 동우회도 생겨나는 등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정착될 조짐마저 확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민간 연구기관과 금융시장 전문가들 10명을 대상으로 4분기(10~12월) 경제성장률 전망을 취합한 결과 평균 -1.7%(연율 기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극심한 불황을 기록했던 전년 대비 기저효과와 에코포인트 제도 등에 따른 대기수요로 지난 3분기 반짝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다시 빠른 속도로 경기 상황이 냉각될 수 있음을 예상한 대목이다.

이처럼 일본 경제의 4분기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이후 미ㆍ일 간 금리차이가 확대되면서 엔화강세(달러약세) 기조가 반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