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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레드가 스티스니아의 뒤를 밟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스티스니아를 쫓아 관공서, 상점 그리고 주택까지 갈 수 있었다. 위생담당관이 술집은 물론 개인 가정집까지 드나들고 있었다. 구레드는 상점이라면 손님으로 가장하고, 가정집이라면 입구까지 쫓아가 스티스니아를 관찰했다.
아침, 맨손으로 출근을 한 스티스니아가 청소 도구가 든 양동이를 들고 관청에서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업무를 위해 가게로 들어 갈 때면 가게에 있는 모두가 잠시 경계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전형적인 귀족을 향한 눈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내 그녀가 들고 있는 도구를 보면 그들은 어느새 우월감이 섞인 무관심을 보였다. 다수는 아니었지만 가벼운 분위기가 지배하는 술집 같은 곳에선 몇몇이 대놓고 그녀를 비웃었다.
“저것 봐! 왕정 연금술사님이 우리의 뒷간을 청소하러 가신다고! 크하하! 왕정 연금술사 같은 귀족이 청소하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인물들 인거야? 크하하!”
그런 녀석이 나타나면 구레드는 술을 취한 척 덤벼들까 생각했지만, 어떤 이유로 그럴 수가 없었다. 구레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함에 화장실로 들어가는 스티스니아의 작아진 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가정집에서는 술집과는 다른 의미로 그녀의 등이 작아졌다. 그녀가 스스로 가정집에 들어가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집주인 또한 다른 사람이, 그것도 귀족이 그들의 화장실을 청소해준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부를 할 수 없었으므로 원하지 않으면서도 받아들어야 하는 냉담한 상황이었다.
그런 고생을 하는 그녀에게 구레드가 물어보았다.
“그 일, 그만두고 싶지 않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이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왕정 연금술사를 그만둔다는 의미도 되는 거야.”
“왕정 연금술사를 그만 두면 어때? 적어도 이런 고생은 그만둘 수 있을 텐데. 다른 일자리라면 내가 알아봐 주지.”
“왕정 연금술사는 내가 어릴 때부터 꿈꿔온 자리야. 게다가 국왕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왕정 연금술사를 내가 일하기 싫다고 그냥 그만둘 수 있을 거 같아? 천만에 말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이 약간 떨렸다.
“담당을 바꿔달라고 말해는 봤어?”
“웃기지 마. 안 봐도 뻔해. 그 작자, 나에게 수모를 주기 위해서 작정하고 이렇게 한 거야.”
“아니, 왜? 이번 시장은 부임한지도 얼마 안 됐잖아. 당신에게 무슨 감정이 있다고?”
“원한이 있지. 시장은 자신이 나 때문에 습격당했다고 믿고 있어.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스티스니아는 거기서 말을 잇지 못했다.
괜한 짐작이 아닌가 싶어 구레드가 직접 시장에게 찾아가 보았다.
“뭐? 스티스니아 위생 담당관은 귀족으로서 피지배 계급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임명된 거다. 이유는 그거 하나 뿐이면 충분하지? 던바튼의 시장인 내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데 어쩔 거야.”
그 말에 구레드는 왜 스티스니아가 ‘하지만’ 뒤에 말을 잇지 못했는 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이유이건, 심지어 이유가 없어도 시장의 마음이라면 그것으로 전부였다. 스티스니아가 어떠한 이유를 들어 부당하다고 증명해도, 그것이 시장의 마음인 이상 아무런 효력을 가지진 못할 것이었다. 스티스니아의 고생이 앞으로도 단단히 이어질 것 같아 구레드는 마음이 아팠다.
스티스니아의 변화와 궤를 맞추어 던바튼도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던바튼의 입구였다. 입구 옆에 마족으로 보이는 고블린과 오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역소에서 일하는 교역단원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그들은 새로운 던바튼의 경비대원들이었다.
입구 뿐만 아니라 던바튼 안에서도 사회화가 된 마족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광장이건 골목이건, 던바튼의 어디를 가든 순찰을 돌고 있는 마족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시민들을 상대로 심문을 하는 것을 즐겼다. 일종의 괴롭힘이었다.
던바튼의 치안을 마족들로 유지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경비대장 샤르트와 시장의 계획이었다. 샤르트는 계획이 수립된 후 영입되었을 것이므로 대부분이 시장 마더데몬의 계획이리라. 경비대장 샤르트는 벨바스트에서 영입한 마족들을 소개하면서 던바튼의 공정한 법집행이 사소한 인정에 의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마족들을 고용하여 철저하게 법을 집행하겠노라 공언했다. 아마 공정한 법집행을 계획한 것은 시장일 것이고, 마족을 영입하는 계획을 세운 것은 마족과 융합이 잘 이루어진 벨바스트 출신의 샤르트일 것이었다.
이는 마족과의 공존을 바라는 타라 왕성과도 부합하여 큰 무리 없이 진척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치안과 관련한 던바튼의 법이 더욱 엄격해졌다. 기존 범죄에 대해 처벌이 더욱 가혹 해졌을 뿐만 아니라, 혼란을 조장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행위 일체가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자는 별다른 재판 없이도 던바튼 광장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교수되었다. 경범죄자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마족들에 의해 즉시 처벌이 가능하게 되었다. 처벌이란 마족이 행할 수 있고, 가장 기초적이라 할 수 있는 폭력의 형태였다.
두 명 이상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예비 범죄자로서 마족들의 심문을 받기 일쑤였고, 부정한 물건을 검사한다는 이유로 상인들의 판매품을 가져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기존의 던바튼 주민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변화였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형식적이나마 그들의 손으로 뽑은 던바튼 시장이 승인하거나 추진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구레드는 스티스니아를 비웃는 취객에게 덤벼들 수가 없던 것이었다.
밤, 구레드는 그의 저택에서 스티스니아와 여느 날처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 술을 권했을 때는 일주일에 1~2번 꼴이었으나 이제는 거의 매일,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매번 술에 취해 있는 건 스티스니아였지만 술을 권한 것은 구레드였다. 나날이 약해져가고 초췌해져가는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구레드가 직접 나선 것이었다.
술을 주고받으면서 오가는 말은 없었다. 처음 서로 술을 주고받은 후, 계속 비워지는 스티스니아의 잔을 구레드가 채우는 것이 전부였다. 남에게 푸념하는 것은 그녀의 프라이드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또는 너무나 상심이 심해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라고 구레드는 침묵의 의미를 받아들였다.
구레드는 스티스니아의 빈 잔에 술을 정성스레 따라주며 역전된 관계를 생각했다.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이 여자에게 들러붙게 된 것일까. 시작은 이렇지 않았는데.
그들의 시작은 평범한 피해자의 가족과 수사관과의 관계였다. 구레드의 약혼자였던 구핑크가 살해를 당하고 그 사건을 수사했던 것이 스티스니아였다. 평범해 보이는 이 관계는 스티스니아가 평범한 수사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았다. 그녀는 악독했다. 수사를 빌미로 뇌물을 받는, 그런 부패한 관료였다. 그런 수사관을 믿을 수 없던 구레드는 피의 레드나이트가 되어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서 복수를 행하고 스티스니아가 범인에게 범해지고 있던 장면을 기록한 수정구를 얻어 스티스니아까지 협박하게 되었다.
그 후, 죽어버린 그의 불쌍한 약혼자와 같은 일이 없도록 그 자신과 스티스니아를 이용하여 던바튼의 평화를 지키려고 했지만 스티스니아는 기회가 될 때마다 구레드를 배신하고 도망가려고 하였다.
그 배신에 진절머리가 난 구레드는 확실히 그녀를 지배하기 위하여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감시했고 매일 같이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각인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남녀 관계가 그렇듯, 어느새 구레드는 스티스니아에게 분노를 제외한 다른 감정을 가지고 말았다. 그가 꺾으려고 하지만 결코 꺾이지 않은 그녀에게 감정을 느껴버린 것이었다. 남녀가 한 집에서 육체 관계를 지닌 것이 잘못이었다. 그렇게 후회를 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술을 따라주는 것이 구레드는 행복했다. 이렇게 단 둘이 있는 지금은 복수도, 원한도 그의 속에서 사그라져 갔다. 스티스니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대로만 계속 될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빌었다.
그 때, 스티스티아가 술자리에서 처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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