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임메카=류종화 기자] 1993년작 ‘둠’은 게임사 전체를 통틀어 파급력 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다. 발매 당시엔 나름 최신 기술이 적용된 게임이었지만, 발매로부터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이도 옛 말이 됐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컴퓨터는 물론, 각종 휴대기기에서도 둠을 돌릴 수 있는 세상이 왔다.
그러자, 언젠가부터 컴퓨터나 게임기가 아닌 다른 용도의 기계를 통해 둠을 돌리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숫제 ‘누가누가 더 기발한 기기에서 둠을 돌리나’ 경쟁이라도 벌이는 양, 상상조차 못 했던 기기에서 둠을 돌리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늘은 그 중 가장 독특한 사례 다섯 가지를 뽑아 봤다.
TOP 5. 현금입출금기(ATM)
돈 찾으러 왔는데 ATM에서 둠이 가동되고 있다면?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이가 있다. 물론 ATM은 아래에 소개할 기기들에 비하면 꽤 고해상도 모니터를 지니고 있고, 버튼 수도 충분한 데다 충분한 성능의 CPU를 내장하고 있기에 하드웨어 사양 자체는 충분한 편이다. 그러나 기기 구조나 보안 등이 꽤나 엄격하게 막혀 있는데다, 애초에 기기를 손에 넣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 와중, 이를 해낸 용자가 나타났다. 각종 기기 개조 및 수리 콘텐츠를 주로 올리는 유튜버 Aussie50은 보급형 ATM인 NCR Personas 77 머신을 구해, 둠을 돌리기 위한 마개조에 돌입했다. 그 결과 12.1인치 LCD 화면 가득히 둠을 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이동은 숫자키로, 그 외 조작은 오른쪽에 달려 있는 입금, 출금, 수정 버튼을 사용한다. 단 하나 단점이 있다면 기기와 연결된 영수증 인쇄기에서 자꾸 뭔가 징징대며 출력된다는 것인데, ATM에서 둠을 즐길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감수하자.
TOP 4. 맥북 프로
맥북 프로에서 둠을 돌릴 수 있다면? 이 무슨 숟가락으로 밥 먹는 것 같은 당연한 소리인가 싶지만, 정식 모니터가 아닌 키보드 위에 있는 터치 바에서 가동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모티콘부터, 색이나 음량 조절, 단축키 지정, 지문 로그인 등 다방면으로 사용되는 그 길쭉하고 좁은 터치 바 말이다.
사실 이 터치 바가 본래 용도 외 제 2의 모니터로 사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로로는 충분히 길지만, 세로 사이즈가 기껏해야 0.5cm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화면에서 둠을 돌린 것은 정말이지 집착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물론 화면이 옆으로 잡아 늘린 모양새라 가독성은 최악이지만, 둠을 27년 간 해 온 마니아들은 눈 감고도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하니 큰 문제는 아닌 듯 싶다.
TOP 3. 전자계산기
계산기는 가장 고전적이면서 기본적인 구조의 컴퓨터다. 이 계산기로 둠을 돌렸다면 믿겠는가? 물론 선 몇 개로 숫자만 겨우 나타내는 수동형 LCD 액정을 가진 저가형 계산기는 아니고, 나름 그래프까지 그려주는 공학용 계산기이긴 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계산기일 뿐, 범용성을 지닌 OS조차 탑재되지 않은 기기에서 둠을 돌린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게이머들이 계산기에서 둠을 구동하는 데 성공했다. 2011년 2월 한 해외 게이머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2011년 출시한 TI-엔스파이어 CAS 시리즈로 게임을 돌렸는데, 나름 컬러 액정과 320x240 해상도를 지원하는 기기이기에 원작 그대로 잘 구동됐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 않던가, 흑백 화면에 도트식 그래프 정도만 그릴 수 있는 1999년형 계산기 TI-83으로도 둠을 가동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사실 이쯤 되면 그래픽부터 아예 새로 만든 휴대용 게임 수준이지만, 어쨌든 분명히 둠이다!
TOP 2. 임신 테스트기
전통적인 임신 테스트기는 보통 소변 속 호르몬과 화학적으로 반응해 임신 여부만 알려주는 용지가 막대에 붙어 있을 뿐이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액정이 달려 호르몬 농도를 분석해 임신 몇 주차인지까지 알려주는 기기도 나오고 있다. 일회용이기 때문에 액정 자체는 간신히 결과 정도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해상도도 낮다. 그 외에는 결과치를 숫자로 변환해서 출력해 주는 자그마한 CPU와 배터리가 내장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 사양만 해도 둠 마니아들에게는 도전해 볼 가치가 있었나 보다.
지난 9월 초, foone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트위터 이용자는 클리어블루 디지털 임신 테스트기에서 둠을 가동한 영상을 올렸다. 그는 임신 테스트기를 분해해 배터리와 CPU, 액정을 분석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다, 결국 CPU가 재프로그래밍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교체해가면서까지 둠 가동에 성공했다. 호르몬 센서 외엔 별도의 입력장치가 없어 블루투스 키보드를 동원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둠 E1M1 스테이지를 플레이 하는 모습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TOP 1. 둠
둠을 돌리는 기기를 언급하라는데 왜 둠이 나오냐고? 사실, 양덕들의 둠에 대한 집착은 둠 게임 내에서 또 다른 둠을 돌리는 데까지 도달했다. 2015년, 어느 유저들이 둠 소스 포트 중 하나인 GZDoom을 이용해 둠 내부에서 다양한 아케이드 머신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개시했고, 결국 둠 안에서 둠을 돌리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사실 게임 내에서 또 다른 게임을 돌리는 행위는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있어왔다. 마인크래프트 역시 복잡한 연산 작용을 구현해 게임 화면을 만드는 괴수들이 존재하니까. 그러나 그 바탕이 최신 게임이 아니라 1993년 게임 소스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2005년 나온 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작업일 수 밖에 없다. 조금만 있으면 둠 안에서 둠을 가동하고, 그 안에서 또 둠을 가동하는 것까지 가능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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