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임메카=류종화 기자] 모름지기 주인공이란 혼자 있어서는 빛이 안 난다. 통키 옆에 타이거가, 한지우 옆에 오바람이, 사이타마 옆에 음속의 소닉이(?) 함께 하듯이 라이벌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특히나 개별 캐릭터의 인기를 중요시하는 대전격투 게임들은 대부분 주인공의 라이벌을 설정해 둔다. 그래야 더 자주 싸우고, 더 강해 보이니까.
그러나, 시리즈가 지속되다 보면 초기에 별 생각 없이 라이벌 관계로 설정해 놨던 캐릭터들이 어느새 쩌리로 내려앉는 경우가 있다. 보다 멋진 라이벌 캐릭터가 나오거나, 주인공의 행보에 따라 더욱 센 상대를 만나면서 옛 라이벌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 주 [순정남]은 분명 처음엔 주인공 라이벌이었는데, 어느새 사이드로 밀려난 대전격투 캐릭터들을 모아 봤다.
TOP 5. KOF-니카이도 베니마루, 원래 화재vs번개 콘셉트였는데…
KOF 94의 주인공 격인 일본 팀은 각각 화재, 번개, 지진이라는 일본 3대 재난을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들로 이루어졌다. 그 중 번개를 다루는 베니마루는 설정부터 불을 다루는 쿄의 라이벌로 배정됐다. 과거 쿄에게 패배한 후 그를 꺾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료 설정인데, 초기작만 해도 별다른 스토리가 없었던 드림 매치였던 탓에 그냥 동료보다는 라이벌 기믹을 더한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KOF 시리즈가 인기를 끌며 야가미 이오리라는 쿄의 평생 라이벌이 추가됨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불과 1년 만에 쿄-이오리 구도가 굳어지면서, 베니마루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쿄를 이기고 싶다’ 정도의 생각만 가진 쿄의 동료이자 조력자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뭐, 그래도 쿄 주변에서 계속 맴돌며 어느 정도 메인 스토리에도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아래에 소개할 같은 SNK 집안의 우쿄보다는 낫다.
TOP 4. 스트리트 파이터-사가트, 최종보스에서 무섭지만 착한 아저씨로
스트리트 파이터가 막 첫 발을 디뎠을 당시, 고독한 무도가 주인공 류의 라이벌은 무에타이 황제 사가트였다. 1편 최종 보스로 등장한 사가트는 장풍 한 방에 플레이어 체력 반 이상을 깎아먹는 강함으로 류를 압박했지만, 결국 류의 승룡권에 패배하고 만다. 이 때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류에 대한 복수심을 필두로 악역 라이벌의 입지를 쌓아간다.
그러나 1편에서 류의 색상 팔레트 2P일 뿐이었던 켄이 2편부터 정식 캐릭터로 참전하며 새 라이벌 구도를 이루고, 슈퍼 스파 2부터 사숙인 고우키가 새로운 라이벌 역할을 맡으며 사가트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결국 사가트는 은근히 비추던 순수 무예가 이미지를 살려 선역의 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무섭지만 상냥하고 착한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뭐, 아직까지도 스토리상에서 류와 선의의 경쟁자로 여긴다는 기믹이 약간 남아 있으므로 아래 소개할 캐릭터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TOP 3. 버추어 파이터-울프 호크필드, 라이벌 하기엔 인기가 부족했다
1993년 발매된 세계 최초의 3D 대전격투게임, 버추어 파이터. 주인공은 왠지 류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격투바보’ 아키라였으나, 라이벌 캐릭터가 마땅치 않았다. 라우는 나이가 너무 많고, 카게는 고고한 닌자고, 제프리는 왠지 동네 아저씨 느낌이고, 파이나 사라 같은 여성 캐릭터들을 내세우기도 약간 안 어울리고… 결국 재키와 울프 정도만이 라이벌로 어울리는 인물들이었는데, 결국 재키가 여동생 사라 스토리에 집중하면서 가장 만만한 울프가 라이벌로 낙점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격투를 사랑하는 진지한 무도가 아키라와 자연을 사랑하는 진지한 레슬러 울프는 겹치는 부분이 많아 딱히 라이벌 관계의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버추어 파이터 4 에볼루션에서 새로 참전한 악당형 암살자 히노가미 고우가 새 라이벌로 등극함에 따라 울프는 뒤로 밀려났다. 5편에선 혼자 있기 심심했는지 복면 레슬러 엘 블레이즈와 새로운 라이벌 기믹을 쌓았지만, 시리즈가 더 이상 진척되지 않고 있어 그저 눈물만 흐를 뿐이다.
TOP 2. 사무라이 스피리츠-타치바나 우쿄, 이제 꽃길만 걷자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타치바나 우쿄는 앞서 소개한 베니마루의 독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임 역시 하오마루라는 주인공의 라이벌 필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됐었다. 닌자나 외국인, 괴물, 악당, 덩치 캐릭터 등을 넣기엔 조금 폼이 안 나고, 검사인 야규 쥬베이는 이미 하오마루의 선배이자 스승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나코루루를 넣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고. 그렇기에 초기에는 폐결핵을 앓고 있는 미소년 검사 타지바나 우쿄가 라이벌격 캐릭터로 배정돼 스타트 포인트와 튜토리얼에서 하오마루와 함께 했다.
그러나, 2편부터 안티 히어로 캐릭터인 키바가미 겐쥬로가 등장하면서 우쿄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겐쥬로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함께 동문이었던 하오마루를 정정당당한 결투로 처치한다는 목표까지 가지고 있는 반면, 우쿄는 그냥 병약한 미남 검사라는 것 외에는 딱히 스토리상 얽히는 부분도 없어 겐쥬로 등장 이후 곧바로 뒤로 빠져버렸다. 결국 우쿄는 메인 스토리에서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꽃을 찾거나 여자들이 쫒아다닌다거나 콜록거리거나 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TOP 1. 철권-폴 피닉스, 쿠마랑 싸우는 내가 알고 보니 카즈야의 라이벌?
철권 시리즈의 주인공은 한 명으로 요약하기 어렵지만, 일단 첫 작품 당시에는 확실히 미시마 카즈야였다. 1편의 스토리는 헤이하치가 연 ‘철권’이라는 무술대회에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카즈야를 비롯한 격투가들이 참전한다는 내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어색했는지 카즈야의 라이벌 격 캐릭터를 한 명 집어넣었다. 그가 바로 미국인 격투가, 폴 피닉스다.
폴은 분명 라이벌에 어울리는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철권 시리즈가 2편을 지나 3편으로 넘어오면서 주변 상황이 변했다. 주인공이었던 카즈야는 데빌이 됐지만 헤이하치에게 다시 죽임을 당하고, 20여년이 지나 그 아들인 카자마 진이 새로운 주인공이 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미시마 집안과 큰 관계가 없던 폴의 위치는 붕 떠버렸다. 결국 그는 철권 3에서 오우거(변신 전)를 때려눕히고 “와 챔피언!”이라며 퇴장한 후, 줄곧 개그 캐릭터 자리에만 머물러 있다. 새로운 라이벌 쿠마와 함께 티격태격하거나, 친구인 마샬 로우와 함께 왁자지껄 시트콤을 찍고 있는 폴의 모습을 보자면,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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