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이재오 기자] 2010년대 이후 데뷔한 국내 아이돌은 대부분 독특한 설정을 보유하고 있다. EXO의 각 멤버들은 태양계 외행성 엑소 플래닛에서 온 존재로서 독특한 초능력을 가졌다고 하며, 드림캐쳐는 7명의 소녀들이 7개의 악몽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게임 속에서 여러 퀘스트를 해결해 나간다는 콘셉트의 체리불렛 같은 걸그룹도 있다. 독특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풀어내는 것은 아이돌 활동의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오랜 시간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이돌 역사에 유례없을 만큼 깊이 있고 훌륭한 세계관과 스토리라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Love your self 기승전결', 'MAP OF THE SOUL'에 이르기까지 줄곧 내용이 이어지는 앨범을 출시하며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스토리텔링은 BTS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4일 출시된 'BTS 유니버스 스토리'는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열거된 방탄소년단의 줄거리를 종합해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BTS 유니버스의 공식 스토리를 풀어낸 스토리게임을 감상할 수 있으며, 게임에서 제공하는 소스를 활용해 아예 새로운 설정의 BTS 유니버스를 만들고 공유할 수도 있다. BTS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플레이어의 능동적인 참여를 중시한 게임
BTS 유니버스 스토리는 지난해 넷마블에서 출시한 'BTS 월드'에 이어 두 번째로 출시한 넷마블과 빅히트의 협업 작품이다. 전작은 플레이어가 직접 BTS의 매니저가 된다는 내용을 다뤘다면, 이번엔 BTS 유니버스를 직접 탐방하고 이를 활용해 직접 스토리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일종의 샌드박스 게임이다.
전작이 정해진 스토리 라인을 진행하며 수집요소를 확보하는 수동적인 게임이라는 지적을 받은 덕분인지, 이 게임은 능동성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다. 애초에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지를 고르고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스토리 게임을 메인 콘텐츠로 내세웠으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게이머가 직접 만든 스토리를 공유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쉽게 말하면 커뮤니티 기능을 보유한 팬픽 플랫폼인 셈이다.
게임은 크게 스토리 감상, 제작, 콜렉션 모드로 나뉘어져 있다. 감상모드에선 제작진이 직접 준비한 스토리를 비롯해 플레이어가 만든 스토리 등을 즐길 수 있으며, 제작 모드에선 플레이어가 스토리 게임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콜렉션 모드에선 수집한 의상과 배경 등을 사용해 캐릭터를 꾸미고 AR 카메라를 이용해 현실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BTS 유니버스의 정수를 담은 감상모드
제작진에서 직접 준비한 스토리는 그동안 BTS의 앨범과 뮤직비디오, 콘서트 등을 통해 선보이던 BTS 유니버스를 총 집합한 형태다. 팀의 맏형이자 BTS 유니버스의 핵심 인물인 멤버 '진'의 시점에서 타임루프를 반복해가며 비극에 처한 멤버들을 구해내는 이야기다. 본래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상징적으로 암시만 되던 각 멤버들의 사연이 여기선 여러 대사와 함께 사뭇 진지하게 진행된다.
이 준비된 내용들은 새롭게 유입된 팬덤 입장에서는 과거에 나왔던 각종 스토리와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위에서 말했던 BTS는 데뷔 이후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각종 영상물과 콘셉트북, 트위터, 웹툰, 책 등을 통해 BTS 유니버스를 확장해왔다. 사실 최근에 팬덤으로 유입된 사람에게는 이를 하나하나 쫓아가며 세계관을 이해하기엔 벅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제공하는 기본 모드를 충실하게 플레이한다면 빠른 시간에 각 멤버들에게 부여된 설정과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래된 팬들 입장에서도 이번 작품에서 제공하는 스토리는 BTS 유니버스를 이해하고 정립하는데 꽤나 중요한 단서로 작용된다. 지금까지 BTS 유니버스는 팬들 사이에서도 해석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워낙 다양한 상징물과 복선이 존재하는 데다가 제작사인 빅히트 측에서 의도적으로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제공하는 스토리는 기존에 나왔던 뮤직비디오나 앨범 아트에 비해서 훨씬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팬들 입장에선 세계관을 해석하는데 당연히 중요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BTS 골수팬과 일반 유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팬픽 제작 툴과 유통 플랫폼, 수익 구조까지
감상모드가 BTS 유니버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면 제작모드는 그 이해도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2차 제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아이돌 팬덤에 있어서 이런 세계관은 그 자체로 자유롭게 즐기고 놀 수 있는 놀이터이자 재료다. BTS는 이를 특히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각 멤버들에게 얽힌 스토리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각종 상징물과 암시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기 때문이다. 팬들은 이를 해석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BTS 유니버스 스토리의 제작 모드는 그 상상의 나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제작 툴이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 스스로 BTS 유니버스 스토리를 배경과 캐릭터의 움직임, 화면 전환 효과, 대사 출력 시점, 대화창, 캐릭터 의상 등 모든 것을 직접 구상할 수 있다. 스토리 게임 메이커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섬세한 설정이 가능하다. 이를 이용해 뱀파이어가 된 멤버들의 이야기라던가, 고대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해야 하는 영웅이 된 방탄소년단 등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만드는 것만 잘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공유하는 체계도 잘 잡혀 있다. 에피소드의 인기도와 그 수준에 따라서 프로 크리에이터 작품, 중급 크리에이터 작품 등으로 구분돼 있으며, 5분 내외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토리 등 플레이어의 성향에 맞춰 추천해주는 스토리도 준비돼 있다. 인기가 있고 잘 만들어진 작품은 별도로 재화를 지불해서 감상해야 하며, 이는 제작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팬픽 제작과 유통, 수익 구조까지 구현해 놓은 셈이다. 당연히 팬들 입장에선 반가울 수밖에 없는 요소다.
기획 의도와 시스템이 조화로운 게임
전반적으로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스토리를 즐기고 만들게 하려는 의도와 모든 시스템이 조화롭게 갖춰져 있다. 물론 과금이 필요한 요소가 지나치게 많다는 단점은 있다. RM 이외에 다른 멤버의 기본 스토리를 즐기거나 프리미엄 스토리를 감상하는데는 과금이 필요하며, 스토리 제작이나 콜렉션을 모으는데 있어서도 하나하나 과금이 필요하다. 다행히 패키지 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고액의 과금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참작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이 게임은 BTS 팬들을 위한 제전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잘 만들어졌다. BTS의 팬덤 입장에선 세계관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2차 저작물을 마음껏 만들고 놀 수 있는 장이 생긴 셈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제작진과 팬들이 만든 스토리의 완성도가 상당하다.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세계에서 인정받는 아이돌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진가를 몸소 체감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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