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당일. 카페 앞에서 만남.

일단 들어갈 때 문열고 혼자만 불쑥 들어가며 하는 말

"저희가 아무사이도 아닌데 남이 들어오는 문까지 왜 열어줘야 되죠?"

빠르게 닫히는 문을 다시 열며 여자는 따라 들어온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려다 남자는 대뜸 생각난 걸 말해본다.

"저는 전화하면서 다른 걸 못해서 전화는 싫습니다. 문자가 낫습니다."

이 말을 듣고 방금 전 전화로 어딨는지 물어봤던 여자는 순간 씨부랄거 잘못 걸렸다 생각됐지만 그냥 맞춰주기로 한다.

"그렇게 하는 게 깔끔하고 편한 거 같네요"

남자는 흠칫 놀랐다. 지금껏 이런 여자는 없었던 것이다. 보통은 네.. 라고 말하는게 일반적인데 자신의 생각까지 곁들여 동조해주다니. 이 여자는 어쩌면.. 진짜일지도...?

일단 빙수를 주문했다. 선불이었기 때문에 눈치게임이 올 것을 직감하고 매너를 발휘해 보았다.

"저는 약간 경제적으로 얘기하는 거 좋아해요. 그러니까 효율적으로."

"네"

빙수값 15,000원을 나눠서 7,500원씩 따로 계산하였다.

큰 흡족함에 남자는 좋은 표정을 힘겹게 숨기며 "생각하는 게 저랑 많이 비슷하시네요"라고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보이지 않아 아무래도 2층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빙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다. 빙수를 받아 둘은 계단을 찾았다.

계단 앞에 다다르자 온갖 경험으로 단련해온 자신의 매너를 어필하고 싶어졌다.

"제가 먼저 가는 게 편해요? 아니면 먼저 가실래요?"

"네? 먼저 갈게요. 상관없어서.."

"이런 거 또 예민한 분들 있더라고요. 밑에서 자길 보는 게 싫다는 분들이 있어서"

남자는 일상적 예의를 알고 있음을 어필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 만난 잘 맞는 여자에게 점수를 따고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여자는 머릿속으로 예정에도 없던 변태를 떠올렸다.

자리를 잡고 빙수 수저를 놓으려다 이번에도 남자는 자신의 곤조를 어필하고 싶어졌다.

"수저 밑에 휴지같은 거 안 깔아도 되죠?"

여자는 휴지를 뽑으려다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남자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자신의 멋진 모습을 어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남자는 여자가 일반적인 흔녀인지 판단하기 위해 준비해온 질문을 던져 보았다.

"메추리알 까주는거 오바다? 아니다? 새우까주는거 오바다? 아니다?"

정답이 정해진 질문임을 직감한 여자는 남자에게 최대한 맞춰주며 대답했다.

어라? 이 여자.. 나한테 딱일지도...?

15분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여자가 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며 가봐야 한다고 한다.

남자는 그러면 어쩔 수 없군요. 라고 말하며 남은 빙수가 아까웠지만 싸갈 수 있는지 없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입맛만 다시며 자리를 정리했다.

그렇게 그날 더치페이로 소개팅은 마무리 되었고 무엇하나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남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주선자에게 계속 만나볼 의향이 있다고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