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항상 귀여웠다.
각 반에 한 명은 있을법한 아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아마 전국의 고등학교에는 아이돌이 넘쳐났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처음부터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것 같다.
보통이라면 달콤한 꿈 정도로 치부할만한 일을 결국엔 해냈으니까. 우리에게 증명해보였으니까.
점심 시간이 지나고 나른한 태양빛이 교실 창가로 쏟아지는 와중에, 창 밖을 보다 눈이 마주친 그 아이가 이쪽을 발견했는지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 * *
"동생아. 친구는 있냐?"
학기가 시작하고 한참이 지났음에도 매번 혼자 집으로 정시퇴근하는 나를 보고 대학에 다니고 있는 누나가 걱정하는 투로 이야기했다.
"내버려둬."
괜스레 퉁명스럽게 대답하고선 거실을 지나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들었다.
확실하게 이야기하지만 꼭 집에 데려오거나 중간에 놀다 와야 친구인 것은 아니다. 쉬는 시간에 어제 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이야기나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
가끔 '그런데 쟤 이름이 뭐였더라?'라는 마음의 친구 오타쿠 제군의 수근거림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그건 그거다.
"뭐야~ 이제 좀 컸다고 차갑네. 누나가 좋다고 따라다니던 시절이 그립구만."
성공적인 고교데뷔를 거쳐 금발 갸루로 탈바꿈해 대학에서 인싸 생활을 즐기고 있는 누나가 섭섭한 티를 내며 마시던 캔맥주를 홀짝였다.
최근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아이돌 공연을 보러 다닌다고 하던데, 그러고보면 누나가 고교데뷔를 결심한 것도 갸루 아이돌인지 뭔지를 보고나서부터였다.
어쩐지 취하면 아저씨 같은 성격이 되어버리는 것이 단점이지만 갸루가 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잘 챙겨주고 있는 좋은 누나다.
아직 키가 작은 나를 위해 엄마가 매번 넣어두고 있는 팩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자니 누나가 이쪽을 돌아보며 뭔가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럼 친구도 없는 동생님. 누나랑 좋은 거 보러 갈래?"
"사사건건……뭐야 그건?"
"히히. 우리 동생님도 아이돌의 멋짐을 알아줬음 해서 말이지."
"뭐야. 카리스마 무슨 아이돌엔 관심 없다고 말했을텐데."
카리스마 무슨 아이돌에 욱한 표정을 잠시 짓던 누나는 이내 다시 씩 웃으며 슬그머니 다가와 티켓을 보여줬다.
"방과 후 클라이맥스 걸즈? 무슨 이름이 이렇대."
"데뷔한지 얼마 안 됐다더라. 미카 언니 라이브는 나중에 보고 신인 아이돌들부터 스텝업을 하자구~"
"스텝업은 무슨……."
짐짓 귀찮은 척 들러붙어오는 누나를 밀어내면서도 묘하게 티켓의 아이돌 유닛명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마침 공연은 이번 주말이다. 친구가 없, 아니 마음의 친구들만을 사귀는 내 방침으로는 주말에 일정이 없을테니 준비한 것이겠지.
못 이기는 척 티켓을 받아들고 문득 뭔가 뇌리를 스쳤다.
방과 후 클라이맥스 걸즈……어디서 들어봤더라?
분명 교실에서 오타쿠 제군들 중 아이돌 오타쿠 군이 이야기해줬던 이름 중 하나였을 것이리라.
뭐, 됐다. 주말에 약속만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밀린 만화나 보자!
"당신의 곁에 달콤한 치요코! 초코 아이돌 치요코를 기억해 주세요!"
약속했던 주말이 되어 누나와 함께 방과 후 어쩌고 아이돌의 라이브에 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째선지 라이브 후 악수회까지 끌려오고 말았다.
앞에는 뭔가 낯익은 소녀가 정해진 멘트를 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우물쭈물하고 있자 그쪽도 이쪽의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얼굴을 보다가 멈칫 하고는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앗! 같은 반의 유가미 군이네! 보러 와줬구나?"
"네, 네에 뭐……."
존재감을 지우고 살아가는 내 정체를 알고 있다니 놀랍다. 머쓱하게 손을 내미니 소노다가 적극적으로 손을 잡아왔다.
우와, 손이 엄청 부드럽다.
조금 사춘기 남중생같은 생각을 하면서 악수를 마치며 손을 떼는 소노다를 보자 라이브 때와 다름없는 활기로 말을 이었다.
"마침 잘 됐다! 좀처럼 물어볼 상대가 없었는데, 지금은 팬분들이 기다리시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응? 기다리다니……?"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여성 스태프가 다음 차례의 번호를 부르면서 소노다의 앞에서 떠나게 되었다.
기다려달라니? 아니, 그보다 나같은 걸 알고 있다니 놀라움의 연속이다. 히죽거리면서 놀릴 것 같아 누나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라이브도 굉장히 좋았다.
꿈이 피는 After school. 적어도 나오자마자 몰래 앨범을 살 정도로는 마음에 드는 곡이었다.
제목 그대로 꿈이 피어날 것만 같은 곡. 같은 반 여자아이인 소노다가 부르기에 딱인 곡이라고 생각한다.
여자아이라면 한 번 즈음 가져보았을 꿈을 현실로 만든 그녀는 꿈의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워냈다고 볼 수 있을 터다.
"유우. 여기서 뭐하고 있어? 집에 가야지."
악수회장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게 어느새 누나가 다가왔다. 놀랍게도 어떻게 했는지 모두와 악수를 했다나 뭐라나.
"음. 좀 기다려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동생……."
그러자 충격을 받았다는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누나가 연극이라도 하는 마냥 말을 이어갔다.
"이젠 상상의 친구가……흑흑."
"윽, 아니라니까!"
너무 시끄럽지는 않게 소리치고는 팔짱을 끼고 건물 벽에 등을 기댔다. 아마 아이돌을 좋아하는 누나라면 깜짝 놀라겠지.
오늘 라이브 무대에 올라간 방과 후 클라이맥스 걸즈의 소노다 치요코가 나와 만날 약속을 했고, 심지어 나를 그쪽에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말이다.
계속해서 끈질기게 들러붙는 누나를 떨어뜨리고는 같이 기다려준다는 말을 거절하고 먼저 돌려보냈다.
어쨌든 소노다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하니까.
아니, 사실은 그냥 어쩐지 비밀로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뭔가 소노다의 활동에 폐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였다.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으니 악수회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점점 줄어 이제는 회장의 정리를 하려는 스태프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오겠지.
아이돌이 정문으로 나오지는 않겠지?
그런 단순한 판단으로 라이브와 악수회가 진행된 작은 공연장의 정문과 반대쪽을 바라보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욥!"
"우왁!"
뜻밖에도 소노다는 정문으로 걸어나왔다. 우리 학교 교복과 검은 뿔테 안경의 조합으로 과감히 정문으로 나오는 것을 택했나보다.
장난이 성공한 아이처럼 키득키득 웃은 소노다는 곧바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어땠어? 방과 후 클라이맥스 걸즈 라이브."
아아, 이걸 물어보고 싶었구나. 그치만 이런 건 다른 팬들한테도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문을 제기하자 소노다는 뺨을 긁적이며 멋쩍게 대답했다.
"헤헤, 우리 또래 친구들의 의견도 궁금해서 말이지~ 그랬더니 프로듀서 님도 OK 해주셨거든."
무심코 귀엽다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낼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물음에 답했다.
"괘, 괜찮았다고……생각해. 여기 앨범도 샀거든."
"오! 우리 앨범 사줬구나. 다들 열심히 했어. 고마워라~"
"저……그런데 나는 어떻게 알았어? 내가 말하기도 그렇지만 솔직히 반에서……"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지! 헤헤헤~ 하지만 이 치요코 님께서는 반 친구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구~"
"님은 뭐야 님은. 하하."
높으신 분처럼 우쭐대는 소노다를 보고 살짝 웃음을 흘렸다.
정말 밝은 아이구나. 이런 부분이 아이돌 소노다 치요코의 매력이겠지?
"아, 그래. 드디어 이야기한 기념으로 발렌타인 초콜릿! 만들어줄게. 헤헤, 초코 아이돌이니까!"
"초콜릿?"
탐정처럼 턱을 짚고 잘난 표정을 짓는 소노다를 보고 있자니 긴장도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다. 표정이 바쁜 아이구나.
"궁금했는데, 남자들은 어떤 초콜릿을 선호해? 아, 그렇지 우리 선생님도 20대잖아. 선생님은 어떤 초콜릿을 좋아하실까?"
초콜릿? 연이 없는 친구네요.
그렇지만 모처럼 소노다가 물어본 것이니 대답해주고 싶다.
반에서 마음의 벗이라 생각하고 있는 오타쿠 그룹조차 모르고 있는 나를 알아준 아이니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이라면 말이지……."
* * *
아이돌 활동을 하는 반 친구가 직접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꿈과 같은 일이 있었던 이후 활동이 바쁜 그녀와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중간중간 마주치면 꼭 인사와 가벼운 대화는 나누는 사이가 되어 조금 더 그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던지, 멤버들과 얼마나 사이가 좋다던지.
그런 단순한 이야기들이라도 그날 밤 무대 밖에서 만났던 그녀와 교류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유모를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 사이 몇 번 정도 더 있었던 방과 후 클라이맥스 걸즈의 라이브나 행사도 몇 번 찾아갔고 소노다가 자주 나오는 버라이어티 예능도 챙겨보게 되었다.
내 변함없는 일상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소노다에게 조금 더 관심이 가고 있을 무렵, 발렌타인 데이는 찾아왔다.
소노다는 오전 수업만 듣고 오후부터는 발렌타인 데이 스케쥴을 소화해야 한다고 했으니 슬슬 약속했던 초콜릿을 주러 오지 않을까 싶었다.
예상대로 점심 시간이 끝나고, 소노다는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초콜릿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역시 나만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구나.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약속받은 초콜릿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 첫 초콜릿.
그 감미로운 울림과 기대감에 두근거림이 목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소노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지켜봤다.
"자! 유가미 군도 초콜릿! 그리고 잠깐 귀 좀 빌려줘."
느닷없이 귀를 빌려달라기에 당황스런 얼굴로 귀를 가져다대니 소노다의 입김이 닿았다.
움찔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유가미 군은 도와주기도 했으니까 특별히 수제야. DARS가 아니라구?"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자 다리에 책상이 걸려 드르륵 하는 소음을 냈다.
그 소리에 주변에서 이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그건 알 바 아니다.
소노다가, 그 방과 후 클라이맥스 걸즈의 소노다 치요코가 내게 '특별'하게 '수제' 초콜릿을 주다니.
이건 혹시…….
"아하하. 나도 깜짝 놀랐네. 유가미 군, 앞으로도 잘 부탁해?"
소노다는 그렇게 말하고 남은 DARS 초콜릿을 나눠주곤 조퇴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남이 볼 세라, 소노다가 준 수제 초콜릿은 책상 안에 잘 숨겨두자.
점심 시간 이후 오후 첫 수업이 시작될 무렵, 소노다는 학교를 떠났다.
사열대 앞에서 이쪽과 눈이 마주쳐 손을 흔든 그녀는 차를 교내로 끌고 들어와 기다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마 프로듀서인가 뭔가겠지.
그리고 소노다는.
내 '특별한 초콜릿'보다 더 소박해보이지만 의미는 명확한 초콜릿을 그에게 건넸다.
그리 멀지 않아 소노다의 표정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나의 착각일 뿐이었구나.
그녀는 고마움을 담은 특별한 초콜릿을 건네줬을 뿐, 앞으로도 친구로 잘 부탁한다는 뜻이었겠지.
소노다가 올라탄 차의 문이 닫히고, 배기음과 함께 차량이 교내를 떠났다.
소노다 치요코.
내가 처음으로 아이돌에 눈을 뜨게 만든 아이.
처음으로 나를 알아채준 아이.
평범한, 반에서 한 명은 있을 법한 아이.
아니.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녀는 항상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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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러 편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렇다고 대회에 여러 개 낼 수는 없어서 한 편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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