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키한테 좀 산뜻한 느낌의 향기가 난단 말이지..."
간만의 한가로운 사무실 풍경
눈꺼풀이 눈을 어둡게 만들 정도의 밝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그래서 프로듀서는 조금 늦게 자신의 실언을 눈치챘다
"엑, 프로듀서 기분나빠"
프로듀서의 예상대로 미카는 질렸다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거 좀 이상하게 들렸겠네
그런데 요즘 시키가 좀 이상한거 같아서
혹시 뭐 아는거 있어?"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카였지만
자기 자신도 신경쓰였던 말을 꺼내니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요즘 시키 얼굴 보기 좀 어렵긴 해~
후레짱도 잘 못 본다길래
오히려 일 할떄 만나는 프로듀서가 뭔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분나쁜 소리나 하고~★"
"잘못한거 아니까 그만 좀 놀려
아무튼 예전보다 더 집중 못 하던거 같던데...
게다가 너희들도 자주 못 만난다면..."
"...이상한 실험에 빠진 걸지도★"
프로듀서와 미카가 동시에 같은 생각에 도달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뭔가에 정신이 팔려있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었다는건 분명 의미하는 바가 있으니까
실험체 후보 1호와 2호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보니 프로듀서가 향기 어쩌구 한 거 있잖아"
"그만 놀리라니까"
"놀리는 거 아니야
나도 요즘 자주 못 봐서 살짝 애매하지만
시키 근처에서 평소완 다른 어떤 냄새가 났던 거 같은데..."
"...풀 냄새?"
"...그런 이상현상을 눈치챘으면 진작에 알려달라구★"
조금 전에 시키의 향기 어쩌구 했다는 이유로 놀려먹은 건 누구냐
라고 말할 뻔한 걸 참아낸 프로듀서였다
"요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어딜 가든 풀냄새가 진동하잖아
그래서 한동안은 기분 탓인가 했지"
미카도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싱그럽고 따사로운 봄 날씨에
가로수도 잔디도 눈에 띄게 무성해서
도시 한가운데서도 초록빛이 눈에 띄게 늘어나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상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설마"
"설마?"
"시키가 온 세상을 풀밭으로 물들이고 있고...
그 실험을 하느라 누구보다 짙은 풀냄새가 나는거면..."
"..."
"생각해봐 프로듀서! 요즘 풀냄새가 심한거랑 시키의 풀냄새 사이에 연관이 없을리가 없어!
시키의 장난에 한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쏟아내며 점점 더 혼란해하는 미카를 보며
프로듀서는 오히려 좀 침착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너랑 같은 생각을 하고있긴 한데 전후관계가 좀 달라"
"전후관계?"
"풀냄새가 짙어지니까 그 냄새를 맘에 들어한 시키가 비슷한 향의 향수를 만들고 있는게 아닐까?"
"아"
미카의 얼굴이 빠르게 달아올랐다
"뭐, 그, 그 렇네... 향수... 향수라..."
그런 미카를 보며 장난기가 발동한 프로듀서는 늦지 않게 복수의 기회를 잡아냈다
"동료를 매드 사이언티스트 취급하다니... 미카 실망이야..."
"시 시끄러! 시키 오면 향기 어쩌구 한 거 일러바친다!"
유달리 나른해지는 시간 속
초록빛이 늘어 더 싱그러운 느낌이 드는 창문이 걸린 사무실에서
프로듀서와 미카는 오늘도 늦는 시키를 기다리며 티격태격 담소를 즐긴다
어자피 시키는 지각정돈 신경도 안 쓰니까 그들도 별 기대 없이 편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시키는 신경이 곤두선 채 플라스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는 순조로웠다
방금 전까지는
그녀의 아버지는 시키의 지식욕을 알고 있었기에 요청할 걸 예상했다는 듯이 연구자료를 보내주었다
문서뿐인 자료라 그것만으로 뭔가 연구하기엔 턱없이 모자라 보였지만 그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천재성 때문이라기보단 샘플이 지천에 깔려있기 때문에
요즘 유난히 무성해진 잡초 한 포기면 샘플을 구할 수 있었다
식물에서 추출됐으면서 '채식주의자'라는 별칭이 붙은 물질
연구기록에 따르면 바이러스도 균도 아닌 이 정체불명의 물질은
아무 전조 없이 다양한 식물 안에서 나타났고
식물들이 이 물질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언뜻 보면 그저 굉장히 신기한 발견으로 보이지만
식물들이 서로에게 생존을 위한 정보를 교환하기라도 하는 듯이
점점 독성 물질을 만들어 내보내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라는 별명의 유래는
한 연구원이 풀 먹는 풀이 결국 사람 잡아먹게 생겼다고 한 별로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인류의 상식을 벗어났기에 발견조차 우연히, 뒤늦게 발견되었고
중화시키거나 제거하려는 시도는 전부 무위로 돌아갔다
동물실험도 해봤지만 그저 식물에게 유용한 비료가 늘어났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그 물질에게 인류가 협조적이라고 설득시키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학자들이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렸지만
지구가 감염된 식물들로 뒤덮여 독성 대기로 가득 차는 날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키는 자료를 읽고 나서 자신에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학자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만 있는 것이 있었다
시키는 가벼운 마음으로 온실에서 키우는 각종 실험식물들로 연구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함부로 다루면 무시무시한 독초가 될 수도 있다는 특징 외에도
이 식물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시키가 꾸준히 그녀만의 비법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온 시키 전용 실험식물이란 것이다
연구의 목표는 식물의 독성에 면역력을 갖추게 해주는 약을 만드는 것
틈 날 때마다 연구실에 와서 실험을 했고
워낙 자기에게 특화된 실험식물들을 사용했기에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관에 부딪힌 건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독성물질의 예상 발달 속도가 너무 빨랐다
실험실 안의 그녀의 실험식물들도 서로 독성을 발달시켰지만
실험실 밖의 식물들은 연결될 수 있는 범위가 무궁무진했기에 상대가 안 됐다
그렇게 연구의 전제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받아들인 시키는
실험식물로부터 추출해 낸 '채식주의자'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접근방법을 떠올리고 지워버리는 걸 반복하던 시키는
문득 프로듀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시키짱이 되지 않는 이상 파악할리가 없잖아'
이 물질이 하는 작용은 일종의 동화작용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전혀 다른 걸로 인식해서 양분으로 삼지만
이 실험식물들의 경우 유전자 단위부터 시키에게 맞춰져 있다
게다가 스스로의 면역력을 위해 사용해와서 시키 자신도 식물들에 맞춰져 있다
이걸 이용해 '채식주의자'와 동화되는 약을 만든다면
도박성이 있지만, 가능성이 있다
"냐하하하♪ 역시 프로듀서, 꽤 하잖아~"
그렇게 그녀는 떠오른 대로 약 제조에 들어갔다
'연구의 시작도 끝도 네 덕분이라...
시키짱 이런거 좋아할지도~♪'
얼굴에서 자꾸만 새어나오는 미소를 내버려 둔 채
지금쯤 또 지각중인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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