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이희승 "딸깍발이"앱에서 작성

허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22 14:22:36
조회 205 추천 0 댓글 0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 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혀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 다니는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산골 샌님이 마른 날 나막신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얘깃거리가 될 것도 없다. 그 소리와 아울러 그 모양이 퍽 초라하고, 궁상이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생으로서 한 고비가 겨워서 머리가 희끗희끗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변변치 못한 벼슬이나마 한 자리 얻어 하지 못하고(그 시대에는 소위 양반으로서 벼슬 하나 얻어 하는 것이 유일한 욕망이요, 영광이요, 사업이요, 목적이었던 것이다) 다른 일 특히 생업에는 아주 손방이어서, 아예 손을 댈 생각조차 아니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극도로 궁핍한 구렁텅이에 빠져서, 글자 그대로 삼순구식(三旬九食)의 비참한 생활을 해 가는 것이다. 그 꼬락서니라든지 차림차림이야 여간 장관이 아니다.

두 볼이 여윌 대로 여위어서, 담배 모금이나 세차게 빨 때에는, 양 볼의 가죽이 입 안에서 서로 맞닿을 지경이요, 콧날은 날카롭게 오똑 서서 꾀와 이지만이 내 발릴 대로 발려 있고, 사철 없이 말간 콧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그래도 두 눈은 개개 풀리지 않고, 영채가 돌아서, 무력이라든지 낙심의 빛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아래윗입술이 쪼그라질 정도로 굳게 담은 입은 그 의지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많지 않은 아랫수염이 뾰족하니 앞으로 향하여 휘어 뻗쳤으며, 이마는 대개 톡 소스라져 나오는 편보다, 메뚜기 이마로 좀 편편하게 버스러진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타이프이다.


이러한 화상이 꿰맬 대로 꿰맨 헌 망건(網巾)을 도토리 같이 눌러 쓰고 대우가 조글조글한 헌 갓을 좀 뒤로 잦혀 쓰는 것이 버릇이다. 서리가 올 무렵까지 베중의 적삼이거나 복(伏)이 돌도록 솜바지 저고리의 거죽을 벗겨서 여름살이를 삼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자락이 모지라지고, 때가 꾀죄죄하게 흐르는 도포나 중치막을 입은 후, 술이 다 떨어지고, 몇 동강을 이은 띠를 흉복부에 눌러 띠고, 나막신을 신었을망정 행전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이 치고 나선다. 걸음을 걸어도 일인들 모양으로 경망스럽게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느럭느럭 갈짓자(之) 걸음으로 뼈대만 엉성한 호리호리한 체격일망정, 그래도 두 어깨를 턱 젖혀서 가슴을 뻐기고, 고개를 희번덕거리기는 세로에 곁눈질 하나 하는 법 없이 눈을 내리깔아 코끝만 보고 걸어가는 모습 이 모든 특징이 '딸깍발이'란 속에 전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샌님들은 그다지 출입하는 일이 없다. 사랑이 있든지 없든지 방 하나를 따로 차지하고 들어앉아서, 폐포파립(弊袍破笠)이나마 의관을 정제하고, 대개는 꿇어앉아서 사서오경을 비롯한 수많은 유교전적을 얼음에 박 밀 듯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내리 외는 것이 날마다 그의 과업이다. 이런 친구들은 집안 살림살이와는 아랑곳없다. 가다가 굴뚝에 연기를 내는 것도, 안으로서 그 부인이 전당을 잡히든지 빚을 내든지, 이웃에서 꾸어 오든지 하여 겨우 연명이나 하는 것이다. 그러노라니 쇠털같이 허구헌 날 그 실내의 고심이야 형용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샌님의 생각으로는, 청렴개결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로서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어찌 감히 이해를 따지고 가릴 것이냐. 오직 예의·염치가 있을 뿐이다. 인(仁)과 의(義) 속에 살다가 인과 의를 위하여 죽는 것이 떳떳하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배울 것이요, 악비(岳飛)와 문천상(文天祥)을 본받을 것이다. 이리하여 마음에 음사(淫邪)를 생각하지 않고, 입으로 재물을 말하지 않는다. 어디 가서 취대(取貸)하여 올 주변도 못 되지마는, 애초에 그럴 생각을 염두에 두는 일이 없다.

겨울이 오니 땔 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동지 설상 삼척 냉돌에 변변치도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 올라오고, 다리 팔 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몸이 골아 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때도 웅크리고 안간힘을 꽁꽁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 해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 하고 벼르더란 이야기가 전하지마는, 이것이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사실로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는 지조,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신조였다.

실상 그들은 가명인(假明人)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를 소중화로 만든 것은 어쭙지 않은 관료들의 죄요, 그들의 허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강직하였다. 목이 부러져도 굴하지 않는 기개 사육신도 이 샌님의 부류요, 삼학사도 딸깍발이의 전형인 것이다. 올라가서는 포은(圃隱) 선생도 그요, 근세로는 민 충정(閔忠正)도 그다. 국호와 왕위 계승에 있어서 명·청의 승낙을 얻어야 했고, 역서의 연호를 그들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마는, 역대 임금의 시호를 제대로 올리고, 행정면에 있어서 내정의 간섭을 받지 않은 것은 그래도 이 샌님 혼의 덕택일 것이다. 국사에 통탄한 사태가 벌어졌을 적에, 직언으로서 지존(至尊)에게 직소한 것도 이 샌님의 족속인 유림에서가 아니고 무엇인가. 임란 당년에 국가의 운명이 단석(旦夕)에 박도되었을 때,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의 두목들도 다 이 딸깍발이 기백의 구현인 것이 의심 없다.

구한국 말엽에 단발령이 내렸을 적에, 각지의 유림들이 맹렬하게 반대의 상소를 올리어서, "이 목은 잘릴지언정 이 머리는 깎을 수 없다."고 부르짖고 일어선 일이 있었으니, 그 일 자체는 미혹하기 짝이 없었지마는, 죽음도 개의하지 않고 덤비는 그 의기야말로 본받음직하지 않은 바도 아니다.

이와 같이 딸깍발이는 온통 못생긴 짓만 하고 있었든 것이 아니라 훌륭한 점도 적지 않아 가지고 있었든 것이다. 쾨쾨한 샌님이라고 넘보고 깔보기만 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일면을 지니고 있었든 것이다.

현대인은 너무 약다. 전체를 위하여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자기본위로만 약다. 백년대계를 위하여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일, 코앞의 일에만 아름아름하는 고식지계(姑息之計)에 현명하다. 염결(廉潔)에 밝은 것이 아니라,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다. 이것은 실상은 현명한 것이 아니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 꾀에 제가 빠져서 속아 넘어갈 현명이라고나 할까. 우리 현대인도 딸깍발이의 정신을 좀 배우자.

첫째 그 의기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을 배우자. 그 지나치게 청렴한 미덕은 오히려 분간을 하여 가며 배워야 할 것이다

- dc official App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매니저들에게 가장 잘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5/03/10 - -
AD 이래서 LS증권 LS증권 하는구나? 수수료 할인 개막 운영자 25/01/01 - -
AD [삼성선물] 미국주식/ETF옵션,거래할수록 싸다! 운영자 25/01/09 - -
7809416 아 ㅅ ㅣ 발 청산 부갤러(211.234) 22:39 27 0
7809415 경제 아직 하나도 안망함 ㅇㅇ(125.240) 22:38 51 1
7809414 상남자중의 상남자 전두환 대통령은 사이좋게 지내는걸 좋아했다 ㅇㅇ(110.70) 22:37 26 0
7809413 몰린 병목 차츰 차츰 풀린다! 지금 좆나 몰린거 ㅋㅋ 부갤러(119.231) 22:37 39 0
7809411 보통 허세쩔고 폭력성향 있는 양아치가 일이 잘못될시 [1] ㅇㅇ(110.70) 22:35 45 3
7809409 우리나라 국민들 다시 한번 박근혜가 대통령 되길 (118.235) 22:34 33 4
7809408 종교는 개뻥이지 ㅇㅇ(211.226) 22:34 36 1
7809407 전세사기 당한 외국인 ㅇㅇ(121.145) 22:33 45 2
7809405 지금 엔으로 존나 몰렸다… 부갤러(119.231) 22:31 69 1
7809404 병신드라 지금 엔 살때가 아니고 일본주식살때지 ㅋ [1] ㅇㅇ(223.39) 22:29 46 1
7809401 지금 엔으로 들어 가는 길 병목 떴다.. “포지션 조정” 부갤러(119.231) 22:26 57 1
7809399 가세연 김세의 이새끼 대원외고ㅡ서울대네ㅋㅋㅋㅋㅋㅋㅋ [5] ㅇㅇ(106.102) 22:24 118 2
7809398 가족 다 죽이고 ㅈㅅ하는 부모는 애미든 애비든 미친거 아니냐 [1] ㅇㅇ(182.222) 22:24 40 0
7809397 중고등학교때 싸움질못해본놈들은 찐따인거 맞음 [2] ㅇㅇ(223.39) 22:23 51 0
7809395 어제 미장 투자자들 쇼크.. “일단 빼고 대기” 부갤러(119.231) 22:20 84 0
7809394 시간 지나니 메이저갤이 편하네요 라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9 29 1
7809392 지인 부를때 ”자기“ 라는 용어 씀???? [2] ㅇㅇ(223.39) 22:18 47 0
7809390 술 먹고 ㅅㅅ vs 맨정신 ㅅㅅ 뭐를 더 선호함? [2] 부갤러(182.227) 22:17 60 0
7809389 왜 배고프지? ㅡㅡ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6 46 0
7809388 남자는 깡다구가 젤 중요하다 [6] ㅇㅇ(223.39) 22:13 103 0
7809387 나대지말어라 씹새끼들아 어차피 직장도나온거 부갤러(222.239) 22:13 29 0
7809386 스크류 박는 라인 공정에서 스크류 잘박는 소소한 팁이라도 있냐? ㅇㅇ(211.36) 22:12 22 0
7809385 트럼프의 ”경기침체 각오“ 이게 대형방화 부갤러(119.231) 22:11 94 0
7809384 가난할 수록 뚱뚱한거 맞다 ㅅㅅ(27.115) 22:10 43 0
7809383 환전했다 오늘도 산다 ㅡㅡ [1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0 106 1
7809382 트럼프 ㅁㅊ놈ㅋㅋ [2] ㅇㅇ(118.235) 22:10 119 0
7809381 보수는 ‘성장보다물가’ 라서 반도체가 중국에 따여도 타격없음 [1] 부갤러(211.234) 22:09 27 0
7809380 보광역은 찬성 신한남역은 반대 [1] 빌라노인(118.235) 22:08 26 0
7809379 부산 vs 평택 vs 청주 vs 파주 vs 경기광주 순위 매겨주셈 부갤러(218.54) 22:08 13 0
7809378 입지추천좀: (1)광명푸르지오포레나vs(2)사당자이vs(3)사당우성2단지 알이즈웰(203.152) 22:08 20 0
7809376 한 달 만에 '10조' 날렸다…테슬라 개미들 그야말로 '공포' 부갤러(211.234) 22:07 40 0
7809375 24년 로이터의 정배가 맞는 듯 부갤러(119.231) 22:06 44 0
7809374 업체별 숨겨둔 영업비빌 모음 [2] ㅇㅇㅇㅇ(115.144) 22:05 46 1
7809373 돌판에서 올려치기 하는 멜롱의 실상 ㅇㅇ(39.7) 22:05 32 0
7809372 등드름 바디워시 추천하나 해줌 ㅇㅇㅇㅇ(121.126) 22:05 21 0
7809371 지금 사업하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부갤러(118.221) 22:05 75 6
7809370 가난할수록 뚱뚱하다?개소리 하지마 씨발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4 49 1
7809368 히틀러 ㅋㅋㅋ 부갤러(211.234) 22:03 29 0
7809367 28살이면 인생 다시 시작하기 충분하냐? [2] 부갤러(220.88) 22:03 45 0
7809366 가난할 수록 뚱뚱하다 ㅅㅅ(27.115) 22:02 45 0
7809365 방금 어떤.좆병신새끼가 애새키한테 시키라고햇냐 [1] 부갤러(222.239) 22:02 23 0
7809364 안양의 문제점ㅇㅇㅇ [6] ㅇㅇ(39.112) 22:02 65 0
7809362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이었을 사건들은 [4] 천억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0 71 1
7809361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 신입공채 [1] 부갤러(118.221) 22:00 52 0
7809360 지금 상태면 파리바 130엔 전망도 깨진다 부갤러(119.231) 22:00 50 0
7809359 나스닥떨어지면 부갤러(110.12) 22:00 20 0
7809358 김수현 드라마로 뜬 사람 아니냐???? ㅇㅇ(223.39) 22:00 31 0
7809357 이 갤은 수익 최대한 내게 하고 나 간다 부갤러(119.231) 21:58 39 0
7809356 중국잃은 표정 ㅋㅋㅋㅋㅋㅋ [1] ㅇㅇ(211.246) 21:57 119 9
7809354 김수현은 일루미나티임 [1] 천억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55 93 0
뉴스 덱스 “보증금 없어 OO에서 생활”…눈물겨웠던 과거 상경 사연 디시트렌드 18:0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