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정연호 기자] 초대형 자산운용사 캐피탈그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및 금리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10가지 투자 테마를 발표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가격 결정력, 배당주로의 전환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인플레이션 부담이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해 수익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가격 결정력이 관심을 받고 있다. 가격 결정력이 있는 기업에 투자를 해야 안전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빅테크 등의 성장주는 저금리와 고성장 환경에서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왔는데, 글로벌 긴축 우려로 인해 이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기준금리를 0.75%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미국이 더 강한 긴축에 나설 것으로 보이면서 성장주들의 추락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주는 성장하는데 필요한 투자를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금리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금리가 높아지면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성장성이 떨어지면 투자 가치도 내려가게 된다. 반면, 경기침체 상황에서 안정적 수익을 바탕으로 높은 배당수익률을 유지하는 배당주는 매력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뮤렉스파트너스의 이범석 대표이사, 출처=뮤렉스파트너스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탈(VC)의 투자도 급격히 줄고 있다. 이제 VC들은 스타트업이 과거처럼 미래의 성장만 약속하는 대신 수익성도 높여야 한다는 요구를 한다. 이에 뮤렉스파트너스의 이범석 대표이사를 만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 투자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ㅡ뮤렉스파트너스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뮤렉스파트너스는 설립한 지 4년 반이 넘은 VC다. IT영역에서 소프트웨어, 인터넷, 모바일 산업 투자에 특화됐고, 이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회사다. 21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고 올해가 지나면 3천억 원 이상의 펀드를 운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VC 중 하나다”
ㅡVC 업계는 장기간에 걸친 안정적인 수익을 기반으로 투자자의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지 않나? 단기간에 빠르게 신뢰를 쌓을 수 있던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VC 업계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3명이 공동으로 창업을 했다. 설립 초기부터 검증된 운용인력을 보유한 것이다. VC의 투자금은 보통 외부에서 오기 때문에 그 회사에 투자금을 잘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중요하다. 전문성이 있는 인력들을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다”
ㅡ뮤렉스파트너스가 운용하는 펀드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과거 투자분야는 주로 B2C(소비자에게 물건 및 서비스 판매)기업이었다. 뮤렉스파트너스의 첫 펀드는 1인 가구와 관련이 있다. 1인 가구의 성장을 보면서 그 중심에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고 판단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성장하는 이커머스 등에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1인 가구들은 혼자 살기 때문에 반려동물 산업도 커질 것이라고 봤다. 그 다음은 한국에서 자산이 가장 많은 시니어 세대가 IT와 연결될 거라고 판단하고 액티브 시니어펀드를 조성했다. 이들은 IT에 친숙하고, 주로 소비하는 영역이 부동산과 디지털헬스 쪽이다. 지금 우리가 집중하는 건 B2B(기업간거래) 기업이다. IT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은 모든 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다. 모든 회사가 IT역량을 갖추기 어려우니 이러한 IT기술을 아웃소싱하고 있고, 아웃소싱의 핵심은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이다. 이처럼 투자의 패러다임은 고정된 게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각 산업에 맞춰져서 변화한다.
뮤렉스파트너스는 기업간거래를 뜻하는 B2B에 집중하고 있다, 출처=셔터스톡
뮤렉스가 가설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집중 투자 분야를 선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투자를 하면서 가장 성과가 좋았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타 VC 펀드는 좀 더 포괄적이고, 넓은 컨셉을 잡는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더라도 포커스 대상이 잘못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포커스를 할 때 중요한 건 시장 상황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가설을 발전시키면서 최적의 투자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 가설과 함께 우리의 전문성과 시장 기회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투자를 한다”
ㅡ일반적으로 VC는 장기수익과 단기수익 중 어느 곳에 더 초점을 맞추는 편인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VC는 장기투자로 간다. 국내 VC펀드들은 보통 운영 기간이 8년 정도 된다. 4년은 투자 기간이고 그 이후는 회수 기간이다. 해외는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이다. 우리도 포트폴리오를 짤 때 최소 3~4년 이상의 투자 기간을 생각하고 있다”
ㅡ최근 스타트업 투자 동향을 보면 성장성보단 수익성이 투자의 중요한 지표가 됐다. 앞으로도 이런 경향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나?
“2010년대 이후 기업들은 성장에 집중했고, VC들도 성장성을 중심으로 투자를 했다. 국내와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 모두 시장 선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모바일 생태계가 정착이 되고, 투자 패러다임도 변하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수익성과 성장성을 모두 가져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스타트업 중엔 성장을 위해서 일정 부분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시장에서 1등이 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거지만 지금은 플랫폼 경쟁도 심해서 쉽지 않은 목표이고,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치니 성장이 수익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VC들은 회사가 서비스나 제품을 팔면서 *공헌이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 이 회사가 실제로 시장의 지배력을 가질 수 있을지 등을 더 많이 검토할 것이다.
과거엔 시장 선점을 위해서 많은 마케팅 비용과 소모성 비용이 들어갔다. 이젠 기술 개발과 회사의 내재적 가치를 올릴 수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장의 요구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공헌이익은 매출액에서 재료비, 연료비, 소모품비 등의 변동비(매출 증감에 따라 변하는 비용)를 뺀 금액을 말한다. 물건 A를 만들 때 변동비 1000원이 들어갔으면, 매출에서 1000원을 뺀 금액이 공헌이익이다. 기업의 총공헌이익과 임차료 등의 총고정비가 같아지는 지점이 손익분기점이다.
ㅡ소프트웨어와 모바일 산업엔 성장주들이 많이 있지 않나? 뮤렉스파트너스가 운용하는 펀드도 최근 변화가 있었을 거 같은데.
출처=야놀자
“뮤렉스파트너스의 포트폴리오엔 야놀자, 무신사가 있다. 큰 성장을 일궈냈고 이젠 수익도 내는 기업들이다. 과거 모텔 시장은 디지털 전환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예약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소비자가 모텔을 모바일, 온라인으로 이용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케팅을 통해서 야놀자를 알리고, 다양한 프로모션을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모바일 생태계가 시작됐을 땐 소비자에게 가장 쉽게 접근하는 이커머스, 배달이 먼저 플랫폼화가 됐다. 이러한 분야를 영어로 ‘low hanging fruit(가장 따기 쉬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과일)’라고 하는데, 이런 분야는 대부분 플랫폼화가 됐다. 더 위에 달린 과일, 부동산이나 자동차 같은 고관여 제품과 서비스의 플랫폼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구매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는 고관여 제품과 서비스 산업에선 디지털 전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아무리 광고를 많이 해도 고관여 제품은 구매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술 연구에 투자를 하면서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놀자도 B2C와 함께 호텔과 숙박시설의 ERP(전사적자원관리)솔루션을 제공하는 B2B 사업도 운영 중이다. 최근 들어 성장성과 수익성을 모두 챙기는 기업들은 이렇게 제품을 고도화해서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물론, 우리가 투자한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중엔 아직 수익을 만들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들은 제품을 고도화하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다만, 과거처럼 일회성 마케팅 비용보단 제품 고도화에 투자를 해, 클라이언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면 매출과 함께 수익도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ㅡ최근 투자를 한 분야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이제 자사의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정보 보안에도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엔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할 엔지니어도 부족하기 때문에 보안을 자체적으로 구축하기보단 SaaS 솔루션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투자를 진행하는 회사들은 이러한 보안 솔루션 업체들이었다. 그 다음은 풀필먼트 (Fulfillment,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 분야다. 모든 회사가 쿠팡처럼 풀필먼트를 자체적으로 구축할 수는 없으니까, 풀필먼트 사업을 하는 곳에 투자를 하고 있다”
ㅡ투자를 집행하는 사례들을 들어 보니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역량이 중요할 거 같다. 이러한 흐름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글로벌 트렌드가 가장 먼저다. 가장 선도적인 시장인 미국 시장이 어떻게 변하는지가 큰 인디케이터(Indicator)가 된다. 미국 시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그리고 국내에 들어올 때 항상 같은 양상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기업을 만나면서 국내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흐름을 파악한다”
ㅡ주가가 저평가된 가치주를 찾아서 투자를 하는 ‘가치투자’가 한동안 붐이었다. 본인만의 투자 원칙을 세우는 것도 중요할 거 같은데, 혹시 투자 원칙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
“첫 번째는 창업자의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에 확신을 가졌을 때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걸 지양한다. 미래와 회사의 성장을 예측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창업자의 비전을 듣고 충분히 공감을 하고서, 투자하는 걸 넘어 이 사람과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투자를 한다. 기업을 처음 만나고 최소 6개월 정도 지나야 투자를 하는 편이다. 6개월 동안 정말 많은 걸 볼 수 있다.
둘째, 포트폴리오의 10개 기업 중 3~4개가 크게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6~7개도 잘되도록 서포트하는 것이다. 투자한 기업 중 일부가 10~20배 단위로 가치가 상승하는 건 사실 운의 영역에 가깝다. 투자자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잘 맞춰서 손실을 피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려고 한다. 창업을 처음부터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기업들과 VC가 같이 노력해서 성장의 방법을 찾아내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다. VC와 창업자는 각각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어서,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VC가 제시하는 답이 항상 옳다고 할 수도 없고, 이런 협의를 거치고 나서 마지막 결정은 회사 대표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창업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시장엔 항상 업앤다운 (UP & Down)이 있다. 시장이 안 좋을 때도 포기하지 않으려면 대표가 확신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창업자가 이러한 역량을 갖고 있는지 알려면 그 사람을 많이 봐야 한다. 창업자가 자신이 말한 비전을 달성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건 쉽지 않지만, 이 사람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를 확인해볼 순 있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팀과 사업을 만들고 있는지를 보고서 신뢰의 여부를 결정한다”
ㅡ최근 들어 기업들의 성장 속도는 정말 빨라졌다. 투자를 숙고하는 기간이 6개월이라면 조금 길지 않나?
“과거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 구글의 초기투자 제안에 응하지 않았던 교수님께서 “자신은 그게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에겐 투자 스트라이크 존이 있는데, 그 투자는 그걸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스트라이크 존은 본인에게 가장 자신이 있는 투자 영역을 말한다). 투자를 해서 성공한 케이스는 정말 많이 들린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따라갈 순 없다. 내가 믿을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ㅡ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VC로서 시장 환경에 대한 변화가 체감되고 있나?
“지금은 시장에 불확실성이 짙다. 시장이 불확실하면 투자의 속도도 느려진다. 코로나19가 시작됐을 때도 시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증시가 폭락하고 투자도 줄었다. 과유동성이 공급되고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니까 투자도 활발해진 것이다. 지금도 스태그플레이션(경기불황과 물가상승이 같이 오는 상태)의 공포로 미래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크다. 다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심히 살펴보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든 점진적 경기회복이든 경기 전망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투자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
ㅡ그럼에도 스타트업에겐 성장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자들은 지금 같은 시점에서 어떤 스타트업을 원할지 궁금하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스타트업이 해야 할 일은 마일스톤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보여주는 것, 출처=셔터스톡
“펀딩 시장에 나온 초기 기업들은 비교적 영향을 적게 받는다. 경기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오히려 잠재력 있는 초기 기업 투자가 더 활발해질 것이다. 다만, 이미 투자를 여러 차례 받았고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회사들의 투자 유치는 더 어려워질 것이고, 이를 위해선 직전 라운드에서 투자를 받으며 세웠던 마일스톤(milestone)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계획대로 꾸준히 성장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성장을 위해서 자산화되지 않는 비용을 늘리겠다는 결정은 예전만큼 투자자들의 이해를 받기 어렵다”
ㅡ일반 투자자 중에는 국민연금 포트폴리오를 따라가는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다.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다 보니 VC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VC가 투자한 많은 기업들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VC들은 많은 기업들과 만나면서 갖게 되는 정보가 많다. 일반 투자자가 그런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 개인이 특정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면 그 분야를 투자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라고 본다”
ㅡ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뮤렉스파트너스에 대한 신뢰를 쌓고 싶다. 해외에선 어떤 투자자가 투자에 참여했는지가 중요하다. 이처럼 창업자들에게 뮤렉스파트너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 매우 좋은 레퍼런스로 작용하는 날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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