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고층 건물? 상상할 수 없다
최근 이사하기 위해 집을 찾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몇 년 살아야 할 집이니 위치, 넓이, 구조, 채광, 환기, 주차 등 무엇 하나 소홀하게 볼 수 없더군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베이터’인데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새로운 취미로 캠핑을 시작했습니다. 캠핑을 다니다 보면 아무리 간소하게 짐을 챙겨도 자동차 트렁크를 가득 채우더라구요. 기본적인 텐트, 의자, 테이블만 챙겨도 한가득입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필요해요. 2~3층처럼 아무리 저층이라도, 짐을 옮기기 위해 몇 번 계단을 오르내리먄 금세 지치더라구요. 그래서 엘리베이터는 꼭 필요합니다.
일하는 사무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강남역 인근의 11층 건물 최상층에 있습니다. 여름 전에는 운동삼아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운동과 출퇴근은 엄연히 다른 일이죠. 만약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직원 모두 다른 건물로 사무실을 옮기자고 요청했을 겁니다. 고층 건물일수록 엘리베이터의 유무는 매우 중요하죠.
출처: 픽사베이
그만큼 엘리베이터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이동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엘리베이터를 만든 것은 160여 년 전입니다. BC 200년경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가 개발한 ‘도르래’는 다양한 형태로 이용되었는데요. 그러다 줄이 끊어져 추락하거나 다치는 일 없도록 안전장치를 만들면서 지금의 엘리베이터 형태로 자리잡았죠.
현재 엘리베이터와 가장 비슷한 구조의 장치를 만든 사람은 오티스(E. G. Otis)입니다. 지난 1853년, 오티스가 낙하방지장치를 발명하면서 세계 최초로 안전한 엘리베이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오티스의 이름을 붙인 엘리베이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오티스는 밧줄이 장력을 이기지 못할 때 철로 만든 두 개의 톱니바퀴로 멈출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개발해 안전을 보완했습니다.
이후 엘리베이터는 수력 또는 수압을 이용하던 형태에서 증기 기관을 거쳐 전동기에 의해 작동하는 방식으로 변화했습니다. 현재 이용하는 전동기를 활용한 동력 발생 엘리베이터는 1880년 독일의 기업 ‘지멘스’가 제작했죠. 안전한 엘리베이터를 전기로 동작할 수 있도록 제작한 이후, 고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바뀌었습니다.
도르래, 출처: 픽사베이
확실히 엘리베이터는 편리합니다. 그런데, 오래 기다려야 할 때가 많더라고요.
그렇죠. 고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 수마저 부족하다면, 기다림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빨리 올라가고 싶은데, 상층에서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면 답답할 때가 있죠.
이에 업체들이 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분당 60~105m를 이동하는 제품을 중속 엘리베이터로, 분당 200~300m를 이동하는 제품을 고속 엘리베이터로 분류하는데요. 고속 엘리베이터는 주로 15~30층 가량의 고층 아파트나 고층 빌딩에 적용합니다.
지난 2020년 5월, 현대엘리베이터가 분당 1,260m로 이동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개발을 성공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 속도였죠. 엘리베이터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금속 로프와 달리 중량은 1/6에 불과하고, 전력 사용량도 줄일 수 있는 탄소 섬유 벨트를 활용해 개발했습니다.
로프에 따라 엘리베이터 속도와 전력 사용량이 달라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160여 년 전 개발한 첫 번째 엘리베이터 이후, 로프 또는 벨트를 사용하던 기존 방식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로프식 구동방식을 사용하죠.
로프식 엘리베이터 구조, 출처: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로프식 엘리베이터는 기본적으로 도르래와 로프(벨트), 승객이 탑승하는 ‘카(Car)’, 평형추(균형추)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는 통로 가장 위에 고정 도르래를 설치하고, 도르래에 두꺼운 로프를 연결한 뒤, 전동기로 로프를 풀었다 감으면서 카를 이동시키죠. 로프의 다른 쪽 끝에는 전동기 부하를 줄이기 위해 카와 비슷하거나 1.5배 정도 무거운 평형추를 연결합니다. 평형추 무게는 최대 정원의 40~50% 정도이고, 로프 장력은 최대 정원 무게의 약 2배 이상으로 설계하죠.
때문에 로프의 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죠. 품질 나쁜 로프를 사용하면 소음과 진동도 발생하기 때문에 탑승객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 로프는 일반 로프보다 높은 장력을 지니면서, 가벼워야 하고, 늘어짐도 적어야 합니다. 고층 건물 속 엘리베이터를 매달고 있는 로프는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로프가 길어질수록 로프 자체 무게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가벼워야 하죠. 설혹 늘어나기라도 하면, 엘리베이터가 최하층 바닥에 닿거나, 각 층에 정지할 때마다 위아래로 출렁거려 고장날 수도 있죠.
무한정 로프를 늘릴 수도 없습니다. 로프가 견딜 수 있는 한계 때문에 초고층 빌딩의 경우 엘리베이터를 여러 개 설치해야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828m)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를 오르려면 43층, 76층, 12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하죠. 로프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을 감안해 길이를 500m 이내로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늘어나고, 엘리베이터 여러 대를 설치하기 위해 공간과 비용 등도 부담해야 하죠.
부르즈 할리파, 출처: 부르즈 할리파 홈페이지
그래서 로프를 없앤 ‘무로프 엘리베이터’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로프 없는 엘리베이터요?
무로프 엘리베이터에는 자기부상열차와 비슷한 기술을 활용합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곳은 독일의 ‘TK엘리베이터(이하 TKE)’인데요. TKE는 티센그루프그룹에서 지난 2020년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분사해 설립했습니다. 전 세계에 약 140만 대의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글로벌 기업이죠. TKE 엘리베이터는 수직뿐만 아니라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고, 향후 대각선 방향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TK엘리베이터 홈페이지
지난 2017년, TKE는 세계 최초로 무로프 엘리베이터 ‘멀티(MULTI)’를 공개했습니다. 멀티는 로프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부상열차에 사용하는 리니어 모터 구동 방식을 적용한 새로운 형태의 엘리베이터였죠. 기존 엘리베이터 대비 수송량은 50% 이상 높고, 에너지 사용량은 60% 적었습니다. 또한, 승강로 하나에 엘리베이터 여러 대를 운용할 수 있었죠. 그만큼 건물 내 승강로 공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멀티에는 리니어 모터, 트윈 기술, 목적층 지정 시스템 등 3가지 기술을 사용합니다. 트윈 기술은 엘리베이터 두 대를 동시에 운행하는 기술인데요. 일반적으로 고층 엘리베이터와 저층 엘리베이터 두 대를 하나의 승강로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사용합니다. 목적층 지정 시스템은 엘리베이터를 호출할 때 승강로 위치에 상관 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배정하는 기술로 승객 편의성을 높인 기술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술은 리니어(선형) 모터입니다. 리니어 모터는 N극과 S극으로 고정되어 있는 영구자석과 전류 흐름에 따라 N극과 S극으로 바꿀 수 있는 전자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서로 마주하는 면에 영구자석과 전자석을 직선으로 길게 설치해 마주 보는 자석 사이에 밀어내는 힘과 당기는 힘이 발생하는 자석의 성질을 활용해 추진력을 얻는 것이죠. TKE는 승강로 벽면에 기차 레일처럼 리니어 모터를 설치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수직으로 내려온 후, 수평으로 이동하려는 탑승객이 있다면 선로가 자동으로 회전해 수평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방식도 적용했죠.
TKE의 무로프 엘리베이터 멀티 구동 모습, 출처: TKE 홈페이지
현재 TKE는 독일 로트바일(Rottweil)에 있는 테스트 리서치 센터에 멀티를 실제 운용 사이즈로 설치하고,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적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상용화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유럽 승강기 협회(European Lift Institute)로부터 멀티의 구동 개념과 안전 관련 승인을 받았으며, 구성 요소의 설계 인증을 앞두고 있습니다. 해당 작업을 모두 완료한 뒤, 2023년 말까지 유럽 승인을 모두 받아 프로토 타입의 업데이트 버전을 공개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우리나라도 무로프 엘리베이터를 연구하고 있나요?
아직까지 무로프 엘리베이터 관련 기술 연구는 미진한 상황입니다. 지난 2008년, 한국전기연구원이 자기부상기술을 이용한 클린 리프트 기술을 개발했고, 관련 기술을 이전받은 자동화 설비 전문 기업 에스에프에이가 중국의 LCD 제조사 BOE와 LCD 운반용 클린 리프트 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하긴 했는데요. 다만, 최대 50m 높이에 설치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현재 해외 기술과 비교해 많이 뒤쳐져 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관련 기술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습니다. 지난 2015년, 코리엘리베이터가 엘리베이터 여러 대를 순환시킬 수 있는 웜 모터 방식의 무로프 자기부상 엘리베이터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아직 상용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정부 차원으로 관련 기술을 활발하게 개발하지 않았으나, 지난 2020년, 충청북도에서 승강기 산업 거점 조성을 위해 2030년까지 4,500억 원 투자 계획을 밝혔습니다. 승강기 관련 기술 기업 유치, 승강기 특화단지 조성, 승강기 직업교육원 설립, 승강기 산업진흥원 및 안전체험센터 등과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기부상 승강기, 초고속 승강기, 고장 발생 예측 승강기 등의 기술을 개발한다고 전했죠.
출처: 충청북도
향후 민관이 협력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글로벌 엘리베이터 산업을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무로프 엘리베이터 상용화를 위해서는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요?
엘리베이터는 160년이라는 역사 동안 다양하게 변화했습니다. 오늘날 엘리베이터는 지하층부터 초고층까지 편한 이동을 돕는 이동수단으로 발전했죠.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현대사회에서 필수 설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엘리베이터는 인명 사고 소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로프 없는 자기부상 형태의 엘리베이터를 초고층 빌딩에 도입하면, 많은 사람이 안전 문제를 의심할 수 있죠. 생명과 직결된 이동수단이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만큼 안전성 검증 및 평가 과정에 대한 기준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도심 내 많은 건물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역할은 점차 확대되며 수직적 도시형에 가까워지고 있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하철처럼 한 통로에 엘리베이터 여러 대가 이동하는 방식의 신개념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무로프 엘리베이터는 건물 내 이동이라는 기존 경험을 보다 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혁신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김아람 책임연구원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라는 전문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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