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남시현 기자] 지난 2022년 9월,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KESIA)는 중기부 주관 민간주도형 예비창업 지원 프로그램 ‘시드팁스(Seed TIPS)’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다. 2022년 처음 추진한 시드팁스는 전문성을 갖춘 민간 운영사가, 창업팀 구성부터 시드 투자 유치까지 창업팀의 초기 단계 성장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민관 협력 창업 프로그램인 기존 팁스의 이전 단계 지원 프로그램으로 투자 유치 이력이 없는 예비창업자 또는 극 초기 창업 기업을 선발해 사업화 자금, 보육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 초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 시드팁스는 인포뱅크, 프라이머 시즌 5, 스파크랩, 앤틀러 등 4개 기관이 민간 운영사로 참여했다. 이에 IT동아가 이번 시드팁스에 참여, 선발된 스타트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동산 오준식 대표를 만났다. 출처=IT동아
부동산은 아닐 부(不)와 움직일 동(動), 그리고 자산을 의미하는 낳을 산(産)을 합친 단어다. 움직이지 않는 토지나 건물 등의 자산은 부동산으로 분류하며, 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재산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은 동산으로 부른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집과 부동산을 동의어로 여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오준식 대표는 집이나 건물같은 부동산의 자산도 유연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의 아닐 부를 흐를 유(流)로 바꾼 ‘유동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다.
고정된 자산인 부동산의 가치를 움직이는 것이 ‘과제’
유동산은 토큰 증권을 활용해 부동산 자금조달 단계 중 선순위 대출에 개인이 투자자로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새로 건물을 지을 때 및 기존 건물에 대해서 부동산 및 권리관계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때 상환순위가 높은 선순위 대출에 투자하는 것이다. 비교적 안전 투자면서 수익률도 은행 이자보다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투자 규모가 수백에서 수천억까지 나가기 때문에 개인이 아닌 기업, 기관 등으로만 이뤄졌다. 하지만 유동산은 금융사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다수의 개인 투자자를 모집해 자금을 조달한다.
오 대표가 홍콩 OMA 설계사무소에서 재직했을 당시. 제공=유동산
2020년을 전후로 유행했던 부동산 조각투자와 비슷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자금 조달 방식이나 규모를 고려하면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다. 오준식 대표가 왜 부동산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지부터 우선 물어봤다. 오준식 대표는 미국 코넬대에서 건축학과 전공, 경영학을 부전공한 이후, 홍콩 OMA 설계사무소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부동산 금융에 대해 일할 기회가 생겼고, 한국투자증권의 부동산 PF 그룹으로 옮겨 3년가량의 경력을 쌓았다. 엘리트 코스를 밟던 그가 잘 나가는 증권회사를 나와서 갑작스레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의외의 사건 때문이었다.
오 대표는 “작년 5월, 한국투자증권에서 수 천억 원 규모의 부동산 PF를 진행했는데, 참여 기관 중 한 곳에서 600억 규모의 선순위 대출을 개인 고객 대상으로 모집하겠다고 했다. 지점을 방문해 신청하는 조건임에도 하루만에 800억을 모았다. 당시 금리가 높지도 않았던 시점인데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가능성이 보였다”라고 말했다. 확신을 가진 오 대표는 지난해 10월 회사 생활을 접고, 12월에 뜻을 함께하는 여섯 명의 팀원들과 함께 유동산을 설립했다.
수익 모델, 즉 유동산의 선순위 대출이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를 물었다. 오 대표는 “3천억 원대 건물을 짓는다고 할 때, 한 기관에서 전체 자금을 조달하는 게 아니라 은행이나 보험사 등 여러 기관이 나눠서 금액을 투자한다. 초반에는 영업력을 앞세워 자금을 할당받아볼 예정이다. 이 시장은 0.1~0.2% 차이로 자금의 조달 출처가 갈리기 때문에 충분히 지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위험 부담은 없는가에 대해서는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부동산 중에서도 선순위 대출은 가장 손실이 없는 투자 방식이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공동으로 투자한 기관들과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충당금도 쌓을 예정이다. 손실이 없을 순 없겠지만 가능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선순위 대출만 고집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KESIA로 아이디어가 현실화, 3월엔 샌드박스 신청 예정
아이디어는 인상적이지만 아직 유동산의 서비스는 구상 단계다. 현행법상 선순위 대출에 필요한 금액을 개인들이 취합해서 마련하는 것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있지 않아서다. 오 대표는 “유동산의 사업이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의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야 한다. 현재 부동산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분할해서 거래하는 건 가능하지만, 선순위 대출은 직접 투자라서 대상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초에 국내 대형 증권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3월 중으로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오준식 대표가 사업 개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IT동아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은 분명하지만,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오 대표는 “엑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추천으로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의 시드팁스 사업에 지원했고, 사업 모델의 혁신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선정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규제로 인해 사업이 회색 지대에 있긴 하지만 아이디어의 혁신성에 평가 기준을 둔 KESIA 덕분에 지금의 상황까지 올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업을 믿는 만큼 포기하지 않고 시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이사와 노태준 파트너의 멘토링도 사업화에 기틀이 되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을 시작한 만큼 모르는 부분이 많다. 다행히 프라이머가 적극적으로 사업에 대한 통찰력이나 본질 등에 대해 알려주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 프라이머는 투자사를 넘어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고, 꾸준히 함께 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시드팁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발판이자 나아가는 길
오 대표는 시드팁스 프로그램 덕분에 아이디어가 사업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출처=IT동아
오 대표가 꿈꾸는 목표는 혁신금융서비스 그 이상이다. 오준식 대표는 “지금까지 대형 증권사 등과 업무 협약과 비즈니스 모델 구현에 집중했다면, 앞으로 혁신금융서비스로 인정받고 글로벌 핀테크 회사로 사업을 키워나가고 싶다. 금융사인 만큼 싱가포르 등 해외 진출도 생각하고 있으며, JP 모건 등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핀테크 기업을 꿈꾼다. 일하는 방식에 혁신을 가져다주는 부동산 전문 증권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유동산의 미래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시드팁스 프로그램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남겼다. 오 대표는 “시드팁스는 사업화의 가능성이라는 일념 하나로 유동산이라는 플랫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유동산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도, 앞으로 나아갈 발판도 모두 시드팁스 덕분이다. 향후에도 2기, 3기 등으로 꾸준히 기회가 마련되길 바라며, 우리 역시 도움이 되는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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