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정연호 기자] 우리 정부가 딥테크 스타트업(첨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펼친다. 이들 기업은 신산업의 핵심 기술을 개발해,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생존에 난항을 겪는다. 기술 개발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해서, 수익을 내기도 전에 도산한다. 이에 정부가 나서 딥테크 스타트업들의 기술 연구, 상용화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딥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올해 본격 추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범부처 스케일업 연구개발(R&D) 투자 전략’을 발표했다. 5년간(2023년~2027년) 15조 원을 투자해 ‘딥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기업)’ 10곳을 만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앞으로 기업에 초기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 펀드가 확대되고, 여러 정부 부처의 R&D 투자 전략을 분석, 강화하는 스케일업 국가기술전략센터도 신설된다.
현재 공개된 범부처 스케일업 R&D 투자 전략 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이다. 10개 신기술 분야에서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뽑아 지원하는 사업이다. 5년간 민관이 함께 2조 원을 모아 투입한다.
중기부는 우선 두 가지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하나는 초격차 5개 분야(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에너지, 로봇)에서 150곳의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혁신분야 창업패키지’다. 이들에게 3년간 기술 사업화 자금(최대 6억 원), R&D 자금(최대 5억 원)을 지원한다. 대출 보증, 수출 지원 등의 혜택도 준다.
초격차 스타트업 1000+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딥테크 스타트업 육성 정책
다른 하나는 첨단 기술 스타트업을 뽑고, 지원하는 ‘딥테크 팁스’ 다. 팁스(중기부가 주관하는 기술 창업투자 프로그램) 운영사가 3억 원 이상 투자한 스타트업 중에서 선발한다. 연내에 120곳의 스타트업이 선정된다. 이들은 3년간 R&D 자금(최대 15억 원), 기술 사업화와 해외 마케팅 비용을 1억 원씩 받는다.
이러한 육성 정책이 나온 이유는 딥테크 스타트업 상당수가 생존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에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 창업 초기 3년~5년간 수익을 내지 못해서 그렇다. 기술 상용화에 오랜 시간이 걸려서,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딥테크 스타트업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이 주로 질병, 기후 위기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해서다. 또한, 대다수가 모빌리티, 우주항공, 인공지능(이하 AI) 등 신산업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다.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려면, 우수한 딥테크 스타트업이 있어야 한다.
생존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두드러진 약진을 보이는 국내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있다. 이들은 우수한 기술로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정부의 목표는 이러한 우수 딥테크 스타트업이 더 나오도록 돕는 기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루닛의 ‘루닛 스코프’는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바이오마커(단백질, DNA, RNA 등의 생체 정보) 기술로 평가받는다. AI로 암조직 세포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현재 자궁경부암, 위암, 대장암 등 16개 암을 분석한다. 암 환자에게 어떤 면역항암제가 잘 반응하는지 알려준다. 사람이 발견하지 못하는 면역 세포도 AI가 찾아내 분석한다. 덕분에 특정 면역항암제가 암 환자에게 잘 맞는지 판단할 때, 정확도가 사람보다 높다.
의료진이 루닛 스코프를 통해 암 조직 슬라이드를 분석하고 있다, 출처=루닛 제공
인투코어테크놀로지는 플라스마(초고온 상태에서 음전하 전자와 양전하 이온으로 나눠진 이온화 기체) 가스변환장치를 개발했다.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를 분해해 플라스마로 만드는 장치다. 플라스마는 메탄올, 친환경 수소, 항공유 등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플라스마 가스 변환장치, 출처=인투코어테크놀로지
국내 모빌리티 산업에서 딥테크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곳은 스트라드비젼이다. 자율주행(운전자 조작없이 자동차가 스스로 운행하는 기술)에 필요한 AI영상인식 솔루션 ‘SVNet’을 만들었다. 차량의 카메라 영상을 AI로 분석해, 다른 차량, 보행자, 차선 등 주변 대상을 인식하는 솔루션이다. 경량화된 AI를 사용해, 저사양 반도체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13곳이 자사의 50개 차종에 적용할 정도로 정평이 난 기술이다.
스트라드비젼의 객체 검출 기술, 출처=스트라드비젼
지난 25일 누리호 3차 발사의 성공 이후로, 우주항공산업에 관심이 쏠린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이 분야 딥테크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연내에 독자 개발한 액체 로켓을 제주도에서 발사할 계획이다. 국내 유일한 메탄 액체 우주로켓이다. 메탄 액체 엔진을 쓰면 기존 로켓과 달리 재활용이 가능해, 로켓 발사 비용을 낮출 수 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자체 개발 중인 소형 우주발사체에 쓸 엔진을 검증하고 있다, 출처=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최근 AI 산업에서 주목받는 기술은 업무 자동화다. 이제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는 AI와 만나 복잡한 작업도 사람 대신 수행한다. 단순한 일만 자동화했던 과거와 다르다. IT운영관리 스타트업 인포플라는 RPA와 AI를 활용해, IT시스템의 관리를 자동화했다. IT장비에 생길 과부하를 예측하고, 웹 사이트의 장애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포플라는 오픈AI의 초거대 AI 언어모델 GPT를 활용해, RPA 스크립트를 생성하는 기능도 만들었다. 누구나 쉽게 RPA 스크립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IT장비에 발생하는 부하를 예측하는 인포플라의 아이톰스, 출처=IT동아
이처럼 경쟁력 있는 딥테크 스타트업이 나오려면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산업계가 정부의 딥테크 육성 정책을 반기는 것이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딥테크 스타트업들 정부 지원 덕분에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딥테크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후속 투자유치도 중요하다. 육성 정책에서 투자 유치를 위한 다양한 기회도 제공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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