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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라가 쓴 무협소설

RUS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12.07 12:34:43
조회 130 추천 0 댓글 1
														
차를 내왔습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날은 더더욱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차가 식지 않게끔 부리나케 달려 온 시종을 보며 아진은 작게 미소 지었다.

벌써 한(翰) 왕야(王也)의 궁에 들어 온지도 꽤 오랜 기간이 되어 가는데,

아직 본래의 목적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필시 귀가 잘못 된 것이 아니라면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앞으로 제자가 될 아이는

응당 나와서 절을 한 후 정식으로 자신을 스승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허나 애시 당초 궁 안에 머무는 모든 식솔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앞으로 제자 될 녀석은 현재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도

코빼기 하나 내비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 왕야가 늘 상 말하는 그 '빌어먹을 녀석'이 때마침 아진이 입궁하기로 한 날 출가 한 것이라 들었다.

미리 계획을 짜 놓았을 가능성이 컸지만 어릴 때부터 수련해 온 도가(道家)계통의 수련을 하며 인내심을 길렀다.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진 역시 여길 나가지도 그렇다고 계속 눌러 있기도 뭐했다.


결국 상황이 이쯤 난처하게 되자 왕야는 그제 서야 사병들을 풀어 아들을 찾아오게끔 지시했으니

아진에게 노력이라도 하는 척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악양(岳陽)의 소문난 기재인 동시에 천재인 그를 아들의 스승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 수조차 셀 수 없는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간신히 뺏어온 아진이었다.


한 왕야의 조카뻘 되는 황제 역시 그를 노렸으나 조용히 눈을 감아주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온갖 희생을 치루며 이 자리에 앉혀 놓았다.


근래에 아들의 행동도 철이 든 것 같아 잠깐 주위를 풀었더니 그새 빠져나갈 줄이야...

평소라면 한 며칠 버티다 못해 다시 돌아올 것이 분명하였으나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무려 석 달. 석 달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으니 아무리 못난 아들이라도 걱정이 될 것은 당연지사.

결국 탐색 조와 정보를 담당하는 안 부총관을 시켜 아들을 데려오라 명하게 되었다.


아들과의 진정한 사제의식을 치루지 않는 한 아진에게는 언제든 스승을 포기할 권한이 있었으므로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는 불안하기만 했다.


아진이 누구던가 아무리 평민이라 하여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꼽아보며 기준에 맞는 제자를 데려올 수 있는 자였다.


나이가 어린 것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또한 한 번 황제를 알현한 이후로 그의 신임을 듬뿍 샀으니 원하기만 한다면야 태자의 스승도 될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황제도 그러기를 바라였고, 얼마 전에 책봉된 태자는 총명하고 진정한 제왕의 기질을 타고 났다 하니

잘만 가르치면 아진의 이름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도 있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귀족으로 신분 상승은 물론이요 태자가 황제의 위에 오르면 아진 역시 탄탄한 관리직을 짊어질 것이

틀림없으니 확실히 맥을 집자면 아들의 스승이 되기보다는 태자의 스승이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리로 아진을 보내자니 하나뿐인 외동아들의 미래가 막막했고 여기 두자니 아까운 재능을 썩히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하여 궁 안에 있는 모든 서관(書官)을 개방해 놓고 아진의 마음대로 뽑아 보게끔 했으나 그것으로도 무언가가 부족했다.


게다가 요즘 들어 아진의 기미가 심상치 않을 것을 보니 마치 여길 떠나려는 작정 같았는데 차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기필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아들을 찾아야만 했다.


오늘도 왕야는 그렇게 시름시름 앓아가면서 눈앞에 쌓여있는 서류를 힘없이 끄집어냈다.


그리고 약 두시진 뒤, 문 밖에서 힘찬 병사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야, 왕야!"

 

얼마나 기다려 온 목소리인지 모른다. 너무 들뜬 나머지 꿈인지 생신지 분간을 못하며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달려 나가자

거기엔 헤지고 머리에 기름이 끼인 하민이 씩씩거리며 눈을 부라렸다.


당장 때려잡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뭘 잘했다고 저리 건방진 태도로 구는지는 모르겠다만 우선 깨끗이 씻겨 놓고 최대한

아진에게 좋은 인상으로 보이게끔 해야 했다.


"어디서 눈을 치켜뜨느냐! 썩 가라앉지 못할까!"

"......"

"어허, 이놈 보게. 누가 네게 그리 가르쳤더냐 대체 뭐가 불만인 겐지 원.

  거기 둘! 이 녀석 좀 데려가서 볼 만 하게끔 만들어 놓아라."


큰 호통과 질책을 퍼부었음에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찬 왕야는 그대로 휙 돌아서서

다시 집무실로 들어갔다.


쾅! 하는 거친 문소리와 함께 양 팔을 시종들의 손에 묶인 채 욕실로 향하는 하민은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여기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독기어린 시선으로 힘껏 힘을 내어 시종 둘을 떨어트려놓긴 했지만

여간 벅 차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끝내 체력이 받쳐주질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그의 몸을.. 누군가가 힘겹게 들어 올려 주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눈앞의 광경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악양의 소군자라고 불렀으며,

자신의 아버지는 그를 아사(我社)라 불렀다.


그것이 아진과, 하민의 첫 만남이었다.


"하민..."


비로소 만난 두 사람이었으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제대로 된 인사를 건내기도 전에 하민이 먼저 지쳐 쓰러진 것이었으니, 옆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시종들이 나와

눈 속에 파묻힌 그를 부축하여 의회당(醫會堂)으로 옮겼다.


한동안 아팠던 사람이라던가 몸 상태가 안좋은 환자도 없었으므로 그동안 마음을 푹 놓고 있던 의원들과 수발 시녀들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으며 오랜만에 의회당에 불이 켜졌다.


이미 해가 질듯 말듯하여 어둑어둑한 저녁이라 최고로 불씨가 오래간다는 외국에서 들여온 밀랍으로 불을 켰는데

그제서야 간신히 알아 본 하민의 얼굴은 초췌하다 못해 뼈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껏 수차례 집을 나간 사건이 있었으므로 잡혀올 때마다 종종 간단히 치료를 하거나 요양을 하면

금방 회복이 되었으나 지금 상황을 그때완 전혀 달랐다.


'간단히'회복할 수준이 아닌것은 비록 의(醫)에 지식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상태가 얼마나 침중한지는 의회당 안의 모든 이들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한동안 일을 게을리 한 황 의원에게 하민의 귀환은 마른하늘에 불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당장 구할 약재는 차치하더라도 침을 놓는 것에 있어 감을 중시하는 의원이 잠시 동안이라도 침을 놓게 된다면 

굳어버린 손은 달리 돌릴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마당에 자금성에 나가있는 의회당주를 불러올수도 없는 일이었으므로 결국 하민을 치료할 사람은

그 하나밖에 없었다. 실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당주의 말만 믿고 그간 하인들을 부려먹으며 매일을 편안히 넘겼으나

지금은 모두가 지켜보는 터였다.

 

여기서 실력의 미숙함이라도 보인다면 아무리 돈을 들여 끌어들인 당주라도 방도는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결국 황의원은 온몸의 열을 식히려 얼음주머니를 데는 시늉을 했고 한동안 안절부절하던

모든 시녀들도 한시름 놓았는지 옆에서 정성스럽게 간호를 시작했다.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시녀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의회당에 일평생을 담아 왔던 여러 고참들은

하민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분명 현재는 한 왕야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이 분명했다. 그것도 돌아가신 왕비마마의 직계 자손이니

세상 모르고 편히 살았을 법 하건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 소연마마에겐 두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첫째가 하운 , 둘째가 바로 하민이었다.


하운이야 주위에서 뭐라하든 자신의 할일을 척척 알아 하며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니 그를

단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하운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또한 출신도 나무랄데 없고 남들을 압도하는 패기나 그에 맞춘 판단력도 만만치는 않았으니 하운은 어릴적부터

한 왕야댁의 자랑이오, 내세울 만한 가장 큰 인물이었다.

 

바로 그 밑에 있던 하민 역시 언제나 자신을 챙겨주는 형을 좋아하고 따랐으며 약간 자유분방하긴 해도 차남이란 이유가

그것을 모두 감싸주었으니 걱정 될게 없었다.


허나 하민이 10살 되던해, 일은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그간 틈틈이 하던 아침훈련과 검술덕분에 굳게 다져진 하운의 체력이 어느날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것은 생명의 위기를 가져왔던 것이다.


당시 왕야는 황제의 직속 의원을 직접 불러다가 치료하게도 해보았으나 모두 다 허탕이었다.

심지어는 자존심을 굽히며 고려까지 사신을 보냈으나 그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달뒤 하운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이승과 이별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충격으로 왕비 또한 오래 지나지 않아

이승을 하직하게 되었다.


한 왕야는 예상외로 일찍 이성을 되찾아 하민에게 본격적으로 후계 교육을 시키기에 이르렀으나 어릴 때부터

그런것에 전혀 익숙치 않은 하민이었기에 부자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거기다 어느 스승이나 과거의 하운과 자신을 비교하니 오죽이 자존심이 상했으랴.

왕야에게 매번 말해보아도 언제나 싸움의 어투만 오갈뿐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런 다툼은 결국 3년이 넘어서도 끊이질 않아 하민은 그때부터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5년의 인생치고는 너무나도 애달픈 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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