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어느 것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꿈이었다.
햇볕에 갓 말린 뽀송한 이불의 느낌이기도 했고, 목제가구에서 흐르는 은은한 향기이기도 한 느낌이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옛날에 살던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꿈.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꿈속의 나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날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와 자살하신 아버지.
그렇게 원망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었지만, 이 두 사람이 있는 나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지금의 내가 초라해질 정도로 말이다.
역겨웠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이들과 같이 있으면서.
나를 냉정하게 버리고 간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어째서 저쪽의 나는 저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당장이라도 웃지 말라고 나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몸 전체가 심해로 가라앉듯 쉽사리 움직일 수 없을뿐더러, 목소리 또한 거품이 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점차 몸에 힘이 빠지며 비 맞는 모래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이 감기는 시선에는 나를 비웃고 있는 저편의 내가 보였다.
-
“꿈 한번 지독하네.”
산범이 잠에서 깨자마자 내뱉은 말이었다.
변함없이 천장에 자리를 잡은 얼룩, 제자리를 지키는 물건과 가구들, 쓰레기통에 쌓인 다 쓴 콘돔 뭉치와 이불보에 잔뜩 묻은 손님과 그의 애액, 그리고 어김없이 지끈거리는 엉덩이와 허리는 현실에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아주 고맙게도 말이다.
일어난 김에 늘 하던 대로 방 청소나 하기로 했다.
쓸고 닦고 버리고.
이젠 익숙해진 일상이다.
금방 정리를 마친 산범은 거실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고리를 잡고 돌려 당기자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스르르 문이 열린다.
그리고 한발 내디딘 호랑이의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털 뭉치 하나.
방에서 나온 산범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지웅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아이가 온다고 했지?
생각보다 일찍 온 탓에 그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그였다.
“어… 어어?”
얼간이 같은 소리를 내며 호랑이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곰.
산범은 그런 그에게.
“안녕?”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인사를 못 들은 건지 지웅은 끔뻑끔뻑 눈만 깜빡이며 산범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두 번쨰로 보는 그의 알몸.
변함없이 앙상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마른 몸.
이런 궂은일을 하기엔 너무나 연약하게 보이는 몸이었다.
산범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얼굴을 조금 구겼다.
그리고 그의 코앞까지 다가가 고개를 세워 그를 올려다보았다.
“안녀엉~”
능글맞게 다시 인사를 건네는 산범.
“아… 안녕하세요….”
그제야 지웅은 고개를 슬쩍 피한 채 인사를 받아주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건 덤이었다.
그 모습에 만족한 산범의 꼬리가 살랑살랑 요망하게 흔들렸다.
“어쨰서 알몸으로…?”
“어제 일 끝나고 바로 잤거든.”
“그… 안 부끄러우세요?”
“돈만 주면 보여주는데 뭐가 부끄러워?”
그 말에 지웅의 미간에 조금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한 산범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너도 봤잖아. 내 알몸.”
맞는 말이기에 입을 다물었다.
호랑이는 남창이다.
돈만 주면 누구에게나 몸을 허락하는 남자.
이런 그에게 수치심이란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돈만 준다면 수치심이고 뭐고 뭐든지 할 사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웅은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걸까?
하고 싶은 충고가 태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웅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여기 오는 건 미호 씨의 가드닝을 돕기 위해 오는 것일 뿐.
아무리 그를 좋아한다고 해도 나 따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남자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다루던 그의 자유였기에 함부로 충고해줄 자격 또한 없기도 했다.
현실은 무척이나 차갑고, 냉정했다.
그러기에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요.”
-
뒷내용조금더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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