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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추가외전.........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0.27 10:26:53
조회 144 추천 13 댓글 6

고비다.


별안간 잠에서 깬 영윤이, 불현듯 떠올린 생각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가 무섭게 고통과 현기증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침대에 누워 있었음에도 온 세상이 빠르게 휘돌았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얼굴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몸뚱어리. 모피 아래 실핏줄 하나하나가 세차게 맥동하는 감각.


이리도 지독한 감기는 또 난생 처음이었다. 오한으로 벌벌 떨던 영윤은 끙끙대며 실눈을 떴다. 감으나 뜨나 별 바뀌는 점 없이 어두컴컴한 시야. 세상 모두가 잠들었는지 고요하기 그지없는 창밖. 아무래도 아침까진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모양이었다.


바싹 말라붙은 입술과 다르게,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분명 자기 전에 옷을 갈아입은 기억이 있음에도 말이다. 제 치수보다 장장 세 사이즈나 큰 속옷은 보송보송했던 질감이 무색하게도 세상 볼품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러다 미라가 되는 게 아닐까.


냉소적인 혼잣말도 잠깐이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한 영윤이 이마를 짚고 나지막이 신음했다. 조금 움직임과 동시에 귀신같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몸뚱어리. 결리고 욱신대고 시큰대고, 성하지 않은 부분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도로 드러눕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별안간 강렬한 갈증이 느껴졌던 탓이었다. 온종일 땀을 비처럼 쏟아냈기 때문일까. 퉁퉁 부은 걸로도 모자라 사막처럼 말라붙기까지 한 목구멍이 마실 것을 달라며 아우성을 쳐댔다.


영윤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이어서는 콧물을 크게 빨아들이며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몸살기로 흐리멍덩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몇 없었다.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옥탑방, 그 사이마다 배어든 고요, 먹먹하리만치 짙은 어둠.


머리맡, 탁상에 놓인 주전자와 유리컵.


끓여두겠다던 차가 아마 이것인 모양이었다. 목 축이러 냉장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영윤이 반색하곤, 이내 손을 뻗었다. 주전자 손잡이를 그러쥠과 동시에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뜨뜻한 열기. 아직 식지 않은 모양이었다.


보리차 몇 모금을 홀짝이니 그제야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깨를 바르르 떤 영윤은 이내 자리에 도로 드러누웠다. 무거운 머리통을 푹신한 베개에 뉘이니 어지럼도 차츰 잦아들었다. 영윤은 아기처럼 웅크리고 이불을 눈가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곤 옆을 보았다.


밤눈 밝은 고양이가 태건을 보았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쓴 보람이 있게도 곤히 잠든 상태였다. 비록 자세만은 상당히 자유분방했지만 말이다. 이불을 뻥 걷어차고, 팬티 한 장 달랑 걸치고는, 제 쪽으로 몸을 돌려 코를 고는 멍멍이 한 마리.


영윤의 시선이 아래로 기울어졌다.


태건은 한쪽 팔뚝을 침대 위에 얹어둔 채였다. 침대 높이가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보니 이 정도 거리라면 거의 바로 옆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면 서로 따로 자는 의미가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우물쭈물하던 영윤이 팔을 뻗었다.


조심조심 움직이던 손은 이내 태건의 손을 맞잡았다. 맞잡았다기보다는 제 손바닥을 상대의 손등에 포갠 것에 가까웠다. 짧게 친 밤색 털, 그 아래로 느껴지는 까끌까끌한 굳은살. 운동선수답게 잘 발달되어 툭 불거진 손뼈는 기묘한 굴곡을 형성했다.


손을 올려놓은 그대로 영윤은 눈을 감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으슬으슬 떨리던 몸이 지금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맞닿은 살갗을 통해 들어오는 온기 덕택인지,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안정감 덕분인지. 둘 모두인 것 같기도 했다.


어째서일까?


몽롱한 정신이 뜻 모를 의문을 표했다. 영윤은 눈을 감은 채로 지난날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기도 했다. 작년, 이보다 훨씬 열악했던 환경에서는 잔병치레 하나 없었는데. 매일 편의점에서 밤을 새도 감기는커녕 몸살 한 번 걸리지 않았는데.


그래서일까.


어쩌면 그때의 자신은 줄곧 버텨 왔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널따란 세상에 홀로 남겨져 부러지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을 것이다. 부러진다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으리라고, 일어날 때까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괜찮구나.


만일 그렇다면, 지금의 아픔은 그 반동이리라. 그간 막연하기만 했던 긴장과 공포가 할퀴고 지나갔던 상처가 아무는 과정일 터였다. 불타오른 잔해 속에서 작은 새싹이 트듯,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희미한 흔적만이 남고 말겠지.


아파도 괜찮구나.


추레하게 콧물을 빨아들이면서도 영윤은 새삼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그때의 자신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이었다. 무조건 버텨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부러지고 넘어진다고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감기 좀 걸린다고 뭐가 대수일까?


푹신한 이불과 베개.


부드러운 죽과 따뜻한 보리차.


그리고 이렇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읊조리던 영윤이 하품했다. 머리는 어지러워도 마음은 어쩐지 후련했다. 끝내 희미한 미소까지 지은 영윤은 손에 힘을 슬그머니 주었다. 큼지막한 손등에 깍지를 끼고, 따뜻한 체온을 난로 삼으며, 입속으로는 혼잣말인지 숨소린지 모를 무언가를 속닥였다.


“……아픈 것도.”


아픈 것도,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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