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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짤 보고 갑자기 땡겨서 씀...앱에서 작성

Or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1.01 01:01:43
조회 255 추천 11 댓글 7
														

결혼할 때는 그렇게나 절차니, 양식이니 철저하게 따지더니.
끊을 때는 이렇게나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법원, 동사무소에 각각 서류 한 장 접수하는 것으로 혼인 관계가 끝날 줄 미리 알았더라면 반차를 내는 게 아니라 점심시간에 조용히 다녀오는 건데.
괜히 쓴 반차만 아깝게 생겼다.

법적으로는 이제 남남.
하지만 수인관계라는 것이 어디 법대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던가.
혹시나 하는 희망에, 하지만 겉으로는 체면치레인 척 애써 무덤덤하게 말해본다.

“점심 먹고 들어갈래? 여기 근처 파스타 맛있었다며. 뭐였더라? 바질 오일 파스타였나?”

대답이 없다.
힐끔 돌아보니 역시나.
옆자리의 그녀는 나는 바라보지도 않고 손만 꼼지락거린다.
남편…, 아니, 전남편 차 조수석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거북한 눈치다.

‘그래도 마지막 식사는 하고 싶었는데.’

미련이 남는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더 빤히 보았다.

뒤통수에서부터 목덜미까지 길게 늘어뜨린 새하얀 털이 은은하게 향기롭다.
유난히 선명한 오드아이와 스물 후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연분홍빛을 띤 코, 적당히 모난 턱선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 터키시 앙고라인 채 털끝 하나 달라진 점이 없다.
티끌조차 묻지 않고, 갓 내린 첫눈처럼 새하얀 채로.
…주변 수인들한테 언뜻 듣기로는 집안이 대대로 그렇다나?
확실히, 상견례 때 보았던 장모의 모습도 별반 다를 것이 없긴 했다.
긴 장갑이 어울리는 분이었지, 아마.
교장인 아버지도 눈처럼 새하얀 수염이 퍽 어울려서, 별명이 간달프란다.

“…아냐, 나 못 먹을 것 같아. 시간도 없고.”

“…그… 래?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집에 갈 거지?”

“아냐, 일하러 가야돼. 나 점심시간에 잠깐 나온 거라서.”

“…나는 반차 썼는데.”

“…….”

“태워다줄게.”

“아냐, 어차피 코앞인데. 그냥 좀 걷고 싶어.”

설마 했는데 세 번 연속으로 퇴짜를 맞았다.
솔직한 점이 예전에는 참 좋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장점이 아닌 것 같다.
…아니, 솔직하다기보다는 주도면밀하다고나 해야 할까.
어쩐지 차에 타고 나서 안전 벨트도 안 매더라니.
이혼하자마자 혼자 휙 떠나는 게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아쉽다.
정말 아쉽고, 섭섭하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제 와서 붙잡을 자격도, 명분도 없다.
원하는 대로 보내주는 수밖에.

“…그래…. 그러면 뭐…. 조심히 들어가고.”

“…응. 오빠도 힘내.”

기다렸다는 듯 내리려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야.”

“…어?”

“하나만 묻자. …내가 그렇게 못 참아줄 정도야?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는데?”

잠시 대답이 없다.
그저 내 얼굴만 빤히 들여다보는 그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그걸 왜 모르냐’는 듯 묘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내 마지못해 대답해주기를.

“변했잖아.”

“어디가?”

“오빠 그때랑 똑같은 게 하나도 없잖아. 내가 좋아하던 모습이 하나도 안 남았는데, 어떻게 같이 살아?”

“…….”

“좋아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같이 사는 건…, 사기잖아. 오빠한테나, 나한테나.”

너무 솔직해서. 그리고 또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내 표정만 보고도 속마음이 훤히 비쳐 보였는지,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뿐사뿐 멀어져갔다.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룸미러에 비친 내 얼굴이 유난히 서글프다.
코부터 이마까지 온통 새까맣지, 머리털은 누리끼리하지.
새파란 두 눈을 빼고는 샴이 아니라 머리만 누렇게 염색한 턱시도라고 우겨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초라한 몰골이다.
분명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눈두덩이 쪽은 그나마 하얬는데, 서른 살이 된 지금에 와서는 하얀 털이라고는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아도 단 한 가닥조차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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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지만 그 여자 말대로다.
지난 시간 동안 달라진 것은 나밖에 없다.
괜히 핸들에 엎드린 채 멍하니 앞만 내다보고 있자니, 이제는 생판 모르는 남도 밖에서 신경을 긁어온다.

“아저씨! 차 빼!”

“…….”

“차 빼라니까! 딱지 붙고 싶어? 어?!”

“가요. 간다구요.”

확실히, 어디든 가긴 가야 한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반차를 썼으니 회사에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여자 흔적이 남아있는 텅 빈 집구석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카페에 죽치고 있을까?
…아니, 그것도 정답은 아니지 싶다.
이 시간대에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으로 바깥을 돌아다녀 봐야 농땡이 치는 회사원으로만 보일 테고.

일단은 액셀을 밟았다.
갈 데도 없으면서 차를 몰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자니, 당장 떠오르는 곳이라고는 한 군데뿐.
정답인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는 수밖에 없다.
거기 말고는 달리 갈 곳도 없으니까.

* * *

“어서오세요~!”

도어벨이 울리자마자 녀석 특유의 살가운 인사부터 들려왔다.
오픈한 지 7년이 다 되어가는 카페인데, 번 아웃은 녀석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어떻게 된 게 인사가 늦어지기는커녕 점점 빨라져서, 오늘은 가게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인사가 끝났으니 말이다.

워낙 단골이 많은 데다 하필이면 점심시간이라 카페는 발을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향긋한 커피 내음이 증기처럼 자욱한 가운데, 혼자서 바쁘게 커피를 내리는 새하얀 손길이 멀리서도 선명했다.

커피를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 뒤에 엉거주춤 몸을 숨기고, 재빨리 구석으로 향했다.
얼굴을 알아보기 전에 자리부터 잡고 싶었는데, 하필 녀석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탓에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어? 뭐야? 시암이 형?”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나도 너더러 도견이라고 부르면 창피하지 않겠냐고, 대학 시절부터 수십 번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

녀석은 도견, 성은 인씨.
대학 시절에 만난 1년 후배다.
하필이면 리트리버 수인인 탓에 이름으로 많이도 놀림 받았지만, 그때마다 헤헤 웃으며 받아넘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간만에 똑바로 마주 본 리트리버 특유의 멀끔하고 새하얀 각진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부럽다.
외모도 외모지만, 대학 시절에 비해 조금도 달라진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달까.
당장 밀려든 주문만으로도 정신이 없어 보여, 대충 고개만 끄덕여주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기 바쁜데, 원두를 내리는 와중에도 내 쪽을 빤히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이 유난히 따가웠다.

요새 카공족이니 뭐니 말이 많다마는 그것도 유명 브랜드에서나 있는 일이지, 동네 카페에서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자리가 많이 남아있긴 해도 음료도 없이 뻔뻔스레 앉아있자니 주변 눈치가 보여, 손님이 얼추 빠져나가 한산해진 뒤에 주문하려 했건만.
그 속내마저 읽히고 말았다.
미처 주문하기도 전에 음료 두 잔이, 그것도 마침 딱 원하던 메뉴로 눈앞에 놓였다.

“흑당라떼 따뜻한 거, 라지 사이즈. 맞지?”
“…메뉴 맞힌 건 그렇다 치고. 라지 사이즈랑 핫인지는 어떻게 알았대?”

“메뉴야 만날 이것만 시키니까 당연히 아는 거고. 밖에 비 오니까 당연히 핫이지. 사이즈는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내 마음?”

“…테이크 아웃이면 어떡하려고 매장 컵으로 가져와?”

“형 원래 엄청 바쁘잖아. 앉으라 해도 앉지도 않고, 커피만 가져가면서. …근데 그런 사람이 어깨도 축 늘어져 있고…, 귀랑 꼬리도 축 처지고. 그럼 커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마시러 왔다는 거 아닌가?”

“……”

“그것도 아니면…, 설마 나 보러 왔나?”

장난스레 던져온 말인데 그게 정곡이었다.
사실은 여우로 태어났어야 할 놈이 리트리버 껍질만 쓰고 태어난 게 아닌지, 가끔은 진지하게 의심스럽다.
괜히 뜨끔해서 테이블만 내려다보고 있자니, 녀석은 제 음료를 휙휙 저은 것도 모자라 내 몫의 음료까지 대신 저어주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하얗고 까맣게 나뉜 레이어가 금세 잿빛으로 섞여드는 가운데.
녀석은 기어이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속을 긁었다.

“형, 오늘은 좀 일찍 갈까? 날도 으슬으슬하니 오늘은 빨리 지지고 싶은데.”

“…어디를?”

“무슨 소리야? 사우나 안 갈 거야?”

“안 가.”

“에헤이, 또 시작이다. 형은 다 좋은데 끈기가 너무 없다니까? 우리 거기 다닌 지 아직 1달도 안 됐는데 벌써 그만두면 하얘지려던 것도 도로 까매지겠다. …그러지 말고, 내가 따로 알아봤거든? 근데 샴 고양이 수인은 꾸준히 3달 정도는 다녀야 몸이 적응해서 털이 하얘진다는….”

“효과가 있든 없든, 안 간다고.”

“어…? 왜…? 형수님이 괜찮대? 아니면….”

“…형수는 무슨.”

“…어…?”

“남남이야 이제. 더 얘기할 것도 없어.”

한바탕 퉁명스레 쏟아낸 뒤에야 속이 시원했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은데, 아직 식지도 않은 라떼를 마시려니 맛도 모르겠고 혀가 얼얼하기만 하다.
기껏해야 빨대로 찔끔찔끔 혀끝에 찍어 맛이나 보던 그때.
맞은편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녀석이 지나가듯 한마디 툭 던져왔다.

“그래도 다행이네. 애가 없잖아. 만약에 있었으면 형이나 그분이나 둘 다 고생했을 거야.”

“너는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냐?”

“현실이 그렇잖아. 형이랑 그분, 둘 다 딱 서른인데. 새 인생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 아닌가?”

“…하긴. 걔는 그렇겠지? 그렇게 하얗고 예쁜데 뭐가 아쉽겠어.”

“형도 그래.”

“…뭐?”

“형도 충분히 괜찮다고.”

“…….”

“너무 착해서 자기만 못난 수인 만드는 심정은 나도 아는데, 그러지 마.”

“…….”

“…아니면, 혹시 지금도 계속 좋아해? 그래서 이렇게 우울한 거야?”

“7년이야.”

“…어…?”

“같이 지낸 세월이 7년이라고. 떨어질 정은 벌써 다 떨어졌지. 그런데 그 공백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채우고 덜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가? 7년이면 충분한 건가?”

애초에 위로라든지 동정을 받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속 시원하게 털어놓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는데, 녀석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또 누구한테 말했어? 나 말고.”

“…아직은 너 말고는 없어.”

그 대답에, 녀석은 이 와중에 특유의 눈웃음까지 그윽하게 지어가며 장난처럼 대꾸해왔다.

“뭐야. 그럼 진짜로 나 보러 온 게 맞았네?”

“…뭐?”

“마음도 헛헛하고, 날도 으슬으슬하고. 그래서 나 보러 온 거 아니야? 그래도 나랑 제일 친하니까.”

“…….”

얄밉긴 해도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인상만 쓴 채 묵묵히 앉아있자니, 녀석은 지나가듯 한 마디 던지며 문가로 향했다.

“오늘은 문 일찍 닫아야겠네.”

“뭐…? 왜? 설마 나 때문에?”

“때문이라고 말하면 내가 마음이 좀 그렇지. 날도 별로고, 형 기분도 별로 같은데. 오늘 같은 날에는 전세 영업해야지.”

“하지 마. 저녁까지 한참 남았는데.”

“지금 아니면 안 돼. 일찍 문 닫으려면 손님 없을 때 미리 닫아놔야 안 미안해서.”

곧장 문가로 향한 녀석은 영업 종료 팻말을 돌려놓은 것도 모자라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까지 닫았다.
그 자체가 워낙 인기가 많아 저녁 무렵까지 찾아올 손님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 매출을 나 때문에 통으로 날리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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