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쿠팡."
말을 들은 도베르만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임자도 매일 그런걸 떠들곤 했죠. 인터넷으로 시키기만 하면 하루 만에 물건이 온다던 쇼핑몰이 있다니. 솔직히 그런 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도베르만과 적당한 체격의, 아니 그와 비교해서는 덩치가 조금은 작을지도 모르겠는 남자가 마련된 단독주택에 들어왔다.
"...그런 게 있으면 밖에 나가지 않고도 집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건강에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집의 보일러라던가, 어떤 인터페이스를 만져 이런저런 것들을 조정한 도베르만이 나를 보며 웃었다. 정장의 외투를 벗어 팔에 걸친 그가 나를 이끌었다.
"집 안을 둘러보시겠습니까. 본인에게 마련된 주택이니 마음껏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현관에 내딛는 첫발. 그 걸음이 그렇게도 어색했다.
"혼자 생활하시는 것에 걱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사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자주 들를 예정이기도 하고. 원래는 제가 생활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베르씨가 생활하던 곳이라고요?"
"예, 제가 원래 살던 곳은 여기서 조금 먼 곳이라서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어두컴컴한 제 방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와 본 게 얼마 만이었던가. 히키코모리로 살았던 은한강은 자조했다. 전체적인 화이트톤의 인테리어와 베이지 색의 조명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인테리어가 제 취향대로 되어있긴 한데, 원한다면 바꾸셔도 문제 없습니다."
"아뇨... 괜찮은데요."
"그렇습니까."
베르가 기분 좋게 웃었다.
배치된 화분들에는 식물들이 싱그럽게도 자라고 있었다. 드문드문 꽃이 핀 것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흰색의 꽃이었다.
"...저 화분은 키우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맡은 일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 편한 일들이 아니라, 심신의 안정을 찾을게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말한 도베르만은 화분 하나의 잎사귀를 손으로 슥 훑었다. 이파리에 먼지 하나 쌓이지 않고 잘 관리된 모습의 화초가 인상적이었다. 옆에 주사기처럼 꽂혀있는 건 영양제 같은 건가.
"그냥 멍하게 물을 주고 있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꽃에서는 어떤 향기가 났다. 바닐라 향 같기도 하고.
베르가 멋쩍게 웃었다.
"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버렸군요. 오랜만에 집에 사람이 들어오니 기분이 좋아져서 말입니다. 그냥 제가 혼자 있는걸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의외네요..."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도베르만은 정장을 벗어두고 간단한 외투를 걸쳤다. 맨투맨과 비슷해 보이는 후줄근한 검은색 후드 집업. 회사에서는 깍듯한 모습만 보였던 그였는데, 대조적으로 편해 보기는 모습이었다. 이 편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하고, 얼굴도 편해보이는 것 같고.
"그 전에, 낮에 있었던 일은 다시 한번 사과해야겠습니다. 어물쩍 넘겨버리기엔 너무 심한 꼴을 보였군요."
낮에 있었던 일. [신입 외교관을 위한 3번 서울 외교법]을 읽지 못했던 나에게 베르가 크게 화를 냈던 일이었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맞았다. 낙서처럼 시커멓게 칠해진 문서가 인수인계 문서라니. 내가 위장취업을 했다는 것과는 별개로 황당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전임자의 장난이었나 봅니다. 2번 서울에서 오신 외교관은 그런 문서를 읽을 수 있다고 그랬었거든요. 전 바보같이 그런 말을 믿었나 봅니다."
베르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은한강은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니요! 아니요... 그렇게까지 고개를 숙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전후맥락 신경 쓰는 것도 잊고 화를 내버렸다는 게 너무 부끄럽습니다."
"괜찮아요... 전, 음. 그러니까 베테랑 외교관이니까요. 익숙합니다."
"그런가요. 상당히 겁먹으신 줄 알았습니다."
사실 이곳에는 황당한 일들 투성이었다... 드디어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나 싶었는데 그 회사가 있는 곳이 이세계와 비슷한 또 다른 서울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달 간격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같았다.
중요한건 내가 이 곳, 수인들의 세계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겁을 먹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외교관은 침착하게 대응하겠지.
은한강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최대한 어색해 보이지 않게.
"이런 게 외교의 묘미니까요."
도베르만의 표정이 미묘했다. 잘못된 대답을 한 건가. 베테랑 외교관은 이런 말 하지 않는 건가. 그런 건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위장취업이라는 게 들키면 안 되는데. 나 쫓겨나는데.
"어, 그. 그러니까... 제가 외교를 가볍게 본다는 건 아니고, 그냥 제 경험상. 느낌으로..."
긴장하자 말이 횡설수설 나왔다. 도베르만의 표정이 변해갔다. 미간은 좁혀지고, 동공은 좁아진다. 다른 나라에서 암살된 외교관 뉴스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굉장히 무례한 언행을 했다고 했었나. 젠, 젠장.
그리고 곧.
푸핫, 그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생각보다 재밌는 분이었군요. 강단이 있으신 겁니까 없으신 겁니까. 아수라백작이라도 보는 것 같습니다. 자신감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둘 중 하나만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 그건 아무래도 환경이 많이 다르니까요..."
"그렇겠죠. 제 전임자도 그랬었습니다. 처음에 많이 당황하셨었죠. 저희 같은 수인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오셨다니. 사실 저희 세상에서는 한강씨 같은 인간이 굉장히 판타지 같은 존재인데 말이죠."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인데..."
잘생긴 도베르만이 앞에 있었다. 이게 판타지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런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신이시어, 이게 꿈이 아니길. 은한강은 양손으로 뺨을 짝, 짝. 때렸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행동을 하시는군요."
"이렇게 하면 긴장이 풀려서요..."
"하하. 긴장하셨던 겁니까."
도베르만은 오른편 서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겼다.
"저희 해야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회사 소개는 자처하고 저희끼리의 이야기가요."
"저희끼리요?"
"네.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게 많거든요. 그렇지만 우선..."
베르가 꺼낸 것은 장바구니였다. 가운데에 귀여운 인간 캐릭터의 얼굴이 그려진 큰 사이즈의 에코백. 어떤 굿즈 같아 보였다.
"장을 보러 가볼까요."
베르가 웃으며 나를 다시 현관으로 이끌었다.
어색한 저녁의 공기가 청량하고 시원했다.
* * *
길을 걷는 동안 한국식 초롱 모양의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는 게 보였다. 분명 이곳도 한국이었는데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난 그런 게 꽤 마음에 든 것 같다. 계속해서 눈길이 가는걸 보면.
우리가 사는 곳도 이렇게 전통적으로 잘 꾸며져 있으면 좋았을 텐데.
"당분간 같이 지내게 될 겁니다. 저는 한강씨의 적응을 돕고, 업무를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게 되어있으니까요."
"...베르씨가요?"
"음,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제가 부담스러운 거라면 교체를 요청하셔도 됩니다. 다른 곳에서 고위급 파견을 요청해야 해서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 사람도 충분히 역할을 수행하실 겁니다."
베르가 어색하게 웃었기에 나는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 베르님은 인사과... 라고 들었어서요. 외교 업무에 꽤 깊게 관여하시는 것 같아서..."
"아, 제가 외교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인사과는 말 그대로 사람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거니까요. 적응을 돕는 연장 업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보디가드 겸 통역가를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그런 파트너제입니다."
"파트너제요?"
"우린 이제 한 팀인 겁니다. 앞으로 거의 모든 업무를 함께하게 될 테니까요."
베르가 이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마주쳤다.
도베르만치고는 털이 유난히 복슬복슬해 보였다.
잠시 뒤 꽤 커다란 마트가 나왔다. 대형마트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의 마트가 적당한 거리에 있었다. 주변에서는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수인들도 보였고, 가족으로 보이는 무리가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도 보였다.
종종 인간인 한강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수인들이 있었으나 베르가 한강의 손을 잡고 주변인들에게 인사하니 그런 시선은 금방 흩어졌다. 베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없었다면 저런 시선을 계속 마주해야 했었을까.
"마트치고는 꽤 고급스러운 것 같은데요. 아울렛처럼 꾸며져 있네..."
"하하, 막 고급스럽다고 할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곳에 들어온 베르와 한강은 장을 보기 시작했다.
마트의 물품은 원래 살았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널려있는 노랗고 붉은 파프리카라던가, 하얀 그물무늬를 가진 멜론이라던가. 다양하게 팔고 있었다.
"음, 이 사과는 꽤 맛있네요. 여기."
"아, 네."
베르가 이쑤시개에 꽂힌 사과 한조각을 건넸다. 원래 먹던 것과 다르게 생기지 않은 사과였다. 먹어보니 아삭하고 과즙이 입안에서 튀는 게 꽤 맛있었다.
"...이거 되게 맛있는데요."
"마음에 드신다니 좋군요."
시식 코너에서 사과를 집어먹은 베르가 알맞게 익은 사과 한봉지를 담으며 말했다.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십니까? 제가 한번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베르씨가요?"
"이래 봬도 요리를 꽤 잘하거든요. 원래 처음 만난 파트너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게 관례이기도 하고."
베르는 꽤 두꺼운 고기를 집으면서 식재료의 상태를 살폈다.
포장 상태를 살피더니 내려놓고 옆에 있던 고기를 대신 골랐다.
"한강씨가 어떤 요리를 좋아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베르가 이쪽을 보며 슬쩍 웃었다.
잘생긴 도베르만이 그렇게 웃으니 심장이 조금 아렸다.
이곳에서 오래 지내고 싶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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