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들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이다.
사실, 남이 뱉어낸 침을 맞는것과 팔에 바르고 있는게 기분이 나쁠법도 아니, 기분이 나쁜게 맞지만 이상하리만치 지금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태범이가 나를 생각해서 제딴에는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해준거라 생각해본다면야...
"그, 그렇구나. 그건 몰랐네."
"혹시 기분나쁘신건 아니십니까? 그게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오해를 하니까..."
태범이는 이미 내 상처를 자신의 침으로 덮어놓고 이제와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원래 상처에 침바르면 덧난다던데...
"그래도 남들한테는 최소한 이유는 설명해주고 침바르는게 좋겠다. 잘못하면 고기에 침발라둔다고 오해하겠어"
"그, 그런말씀을 하시면..."
피가 철철 흐르는 정도는 아니고 가벼운 찰과상 정도이기에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 바를 약이 있다면 숙소로 돌아가서 물로 씻어내고 바르셔도 됩니다"
태범이는 저도 이제는 멎쩍은지 뒤통수를 손으로 벅벅긁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아냐. 특별히 약도 없는데 일단 돌아가자."
머쓱한 대화를 종료하고 이제는 밤이 깊었으니 숙소로 돌아가려 움직이니, 무릎쪽에서 시큰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찰과상은 아니지만 무릎 안쪽이 순간적으로 지면과 부딫히면서 멍이 들었던 모양이다
"형. 제가 업어드릴게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던지, 이를 눈치챈 태범이가 넓은 제 등판을 내게 내보이며 쭈구려앉았다.
제아무리 녀석이 선의로 등을 내보였다지만, 이를 덥썩 무는 선배가 어디있겠는가.
"아니야 태범아. 괜찮아. 나 충분히 걸을 수..."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손사레치는 내게 어느새 제 등을 바짝 대더니, 순식간에 내 정강이에 손을 집어넣더니 그대로 들고 일어나버린다.
"으에?"
꼼짝없이 태범이 등에 들린채로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반강제적으로 태범이의 등판에 머리를 파뭍게 된 나는 본의 아니게 녀석의 등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버리고 말았다.
"흡!"
코끝에서부터 시작되어 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오는 호랑이 체취.
평소에도 활발한 호르몬 분비 탓에 강한 체취를 가지고 있는 수인들이니, 어쩌면 메스꺼움이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과는 달리 느껴지는건 평범한 사내의 냄새였다.
다만, 풀내음이 살짝 섞여 있다고 해야할까. 과거 야생에서 살아왔다는 존재들의 후손답게, 자연스럽게 녹아 깃들어 있는 자연의 향기였다.
'부드럽네'
태범이 등판에 맞닿은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폭신폭신한 느낌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런닝만 입고 있어 훤하게 드러나보이는 녀석의 등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파뭍은건 부드러운 털에 심취할 수 밖에 없는 본능일지도 몰랐다.
예상보다 푹신푹신하고 보드라운 털들에 생각없이 얼굴을 비비고 있는 나를, 태범이가 마치 개구쟁이 동생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려보고 있던건 후일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었다.
"편하십니까?"
"아!"
머리위에서 울리는 태범이의 굵은 목소리에 그제서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았고, 아이들같은 행동을 했다는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 그러니까 이건..."
"괜찮습니다."
"어?"
"형이라면 괜찮아요. 원하시면 좀 더 부비셔도 됩니다."
"아냐. 미안 그냥 나도 모르게"
난 머쓱해져서 태범이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채 궁색한 변명거리를 찾다가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라면 한번쯤은 상상해봄직한 부드러운 털에 머리를 비비는 행위를 상대의 허락도 없이 했으니까.
물론 태범이가 괜찮다 하다지만, 녀석과 나의 관계를 고려해볼때 자의에서 비롯된 괜찮음이 아닐수도 있다.
"... 처음입니다."
"응?"
"누군가를 등 뒤에 태운건 형이 처음입니다."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남들에게 등을 보이기 싫어하는 호전적인 성격의 맹수들이 누군가를 등에 태운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 들은 바 있다.
등을 내준다는 것은 언제든지 공격받을 수 있는 취약지를 남에게 내보이는 것과 같으니까.
이런 맹수계 수인들과는 가족이나 연인사이가 아니라면, 등에 올라탈 수 있는 일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 그래? 고마워. 그래도 걸을수 있으니까 내려주지 않을래?"
"......"
하지만 태범이는 묵묵부답인 채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발 한발 내딛을때마다 묵직한 체중의 태범이의 몸에서 울리는 진동이 내게 가감없이 전달됐다.
제 등에 누군가를 태우는게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첫 경험을 내게 내준다는 것은 과연 어떤의미일까.
그만큼 우리가 신뢰있는 선후배 관계라는 뜻이겠지.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말없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별들이 이곳 저곳에서 제 모습을 밝게 드러내고 있었다.
태범이는 계속해서 걷는 내내 말이 없었다.
어찌보면 이것저것 부탁만 하는 나인데, 등까지 내어주는 태범이를 볼 낯이 있기는 할까.
무심하게 걷는 것과는 달리 꼬리는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기분은 나쁘지 않아보이는 것이 위안삼을 만한 내용이었달까.
난 태범이가 걷는 동안 녀석의 등 위에서 밤하늘의 경치를 감상했고, 태범이도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밝게 빛나는 별빛을 보곤했다.
둘 다 말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숙소 한켠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사람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이제는 누군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민망하기 그지 없을 것 같아 태범이에게 서둘러 내려달라고 말을 했다.
"고마워 태범아. 이제 내려주지 않을래?"
"네. 일단 약부터 찾아야..."
"야 태범이 너 지금 이시간에 어디 다녀오는거야?"
"!"
미처 태범이 등에서 내리기 전에, 숙소 문이 열림과 함께 마지막까지 태범이에게 술로 덤볐던 늑대학생이 어기적거리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술이 깰만한 시간은 아니었으니,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로 소변이 마려웠던건지 한손은 바지춤 사이에 집어넣은 상태였다.
마치 제 안방인마냥 편한 모습이 평소 거리낌 없는 성격을 그대로 내보이는 듯했다.
"어? 그, 그냥 잠이 안와서 바람이나 쐴 겸 근처 산책좀 하고 왔어."
"그으래? 하아아암... 나 오줌쌀건데 누구 보는 사람 없는지 망좀 봐줘"
"야 회랑아. 화장실은 저기잖아"
"아 몰라... 거기까지 가기 귀찮아. 어자피 이건 다 거름인데..."
회랑이는 말리는 태범이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바지춤을 내렸다.
태범이 어깨너머로 보이는 회랑이의 묵직한 소중이는 그 커다란 자태를 숨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내보였고, 녀석은 긴 주둥이가 찢어지듯이 하품을 하면서 오줌줄기를 발사했다.
'몸도 나름 다부지더니 물건도 꽤 크네...'
무심코 회랑이의 고추를 보면서 잡생각까지 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호랑이 등에 안겨서 늑대가 오줌싸는걸 구경하고 있는 팔자라니.
마치 고양이 앞의 쥐가 된 마냥, 조용히 태범이 등 뒤에서 매달리고 있던 난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아 시원하다... 오늘따라 오줌이 왤케 마렵지. 술에 뭐라도 들었나. 태범이 너도 오줌마려우면 여기서 싸. 엄청 시원하다?"
"난 이따가 화장실 갈거야. 새벽이라 쌀쌀한데 어서 들어가자."
태범이는 최대한 어색한 상황에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회랑이를 숙소로 되돌려보내려 노력했다.
"후... 남태범 부끄러워 하기는. 우리중에 자지도 제일 큰놈이 내놓는걸 제일 숨긴다니까."
"... 뭔소리냐. 이게 술이 덜깼나 갑자기 잡소리를해. 빨리 들어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대화전개에 태범이가 당황해하는 것이 여력했다.
목소리부터가 희미하게나마 당황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털이 뻗치는게 등판에 안긴 내게는 직접적으로 느껴지는걸.
"맞잖냐. 너 그거 흉기야. 하긴 네 등치에는 그정도는 되는게 당연하겠지만. 누구하나 깔리면 진짜... 고생이긴 하겠다."
실실 웃으면서 태범이를 올려보는 회랑이 탓에 태범이는 부끄러웠던 것인지 이내 날 받치고 있던 손을 놓고는 녀석을 등떠밀기 시작했다.
넓디 넓은 태범이 뒤에 가린 나를 회랑이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하... 시끄러 어서 들어가."
"왜왜. 우리들 다같이 볼 꺼 다 본 사이인데, 이런말만 하면 엄청 부끄러워라해. 다른건 다 잘하면서도 자지얘기만 하면... 읍!"
솥뚜껑같이 두꺼운 손이 늑대의 주둥이를 막아버렸고, 회랑이는 입이 봉해져 더는 말을 남발할 수 없게 된 채로 태범이와 함께 숙소안으로 사라졌다.
하긴, 아직 팔팔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니까.
저런 대화를 스스럼없이 한다는 것은 녀석들이 상당히 친하다는 뜻이겠지.
숙소 문 앞에 텅그러니 놓여진 짐짝처럼 서있던 나였고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잠시 시간이 흐른뒤에 들어가야만 했다.
"후우.. 그나저나. 태범이... 저녀석도 물건이 대단하긴 한가보네."
시간을 때우는 동안 문턱에 주저앉아 달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태범이 소중이에 대해 중얼거린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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