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거지흙수저점붕이소설............4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2.07 02:53:00
조회 381 추천 18 댓글 6



“당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운동장을 멀거니 바라보던 내가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한쪽 무릎을 꿇고 신발을 갈아 신는 최호범이 보였다. 덩치가 어찌나 커다랬는지, 일어서 있는 나와 높이 차이가 그렇게 크게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안 갔어. 심부름 해야지.”

“아쉽겠네.”

“어, 아니. 별로.”


세상 칼같이 돌아온 부정이었다. 의아했던 나는 최호범을 멀뚱멀뚱 보았다. 시선이 맞닿자 주둥이를 느릿하게 뻐끔거리는 호랑이 한 마리.


“……재미없거든.”


방금과는 달리, 한참을 뜸들인 대답.


“그냥 남들 가니까 따라가는 거지.”

“그래?”


이건 또 의외였다. 저렇게 재미없다고 치부하기엔 곧잘 들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야 물론 따라가 본 적은 없고, 건너서 들었다고 해야 할까. 주로 녀석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반 늑대,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간다고들 했다.


“막대기로 공 때리는 게 뭐가 재밌어.”

“야구도 비슷한 거 아냐?”


허를 찔린 듯, 최호범이 침묵했다.


“그건…… 음. 그렇긴 한데.”


그러곤 이렇게 읊조렸다.


녀석 나름의 배려인 듯싶었다. 면전에서 고까운 티를 내기엔 아무래도 조금 그랬을 터이니 말이다. 체육마다 종목 불문 날아다니는 녀석이 당구 같은 걸 재미없다고 싫어할 리가 없긴 하지. 나 같아도 냄새나는 시장 골목보단 당구장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결론지은 나는 머쓱하게 웃기나 했다. 운동화를 갈아 신은 녀석은 자리에서 어영부영 일어서는 와중이었다.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는 꼴은 언뜻 흐리멍덩했지만, 어쩐지 이쪽을 향한 두 눈동자만은 묘하게 또렷했다. 뜻 모를 기대감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시선까지도 배려일까?


“가자.”


부질없는 의문이었다. 가방을 고쳐 멘 내가 교문을 눈짓했다.


바깥은 무척이나 더웠다. 이제 완연한 여름임을 알리려는 듯 매미 소리가 귓전을 우렁차게 때려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졌음에도 전혀 누그러질 생각이 없는 햇볕. 한참이나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에선 아지랑이가 부옇게 일어났다.


에어컨 바람으로 빵빵했던 교무실, 하다못해 선풍기라도 튼 교실에 비한다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실내보단 훨씬 나았지만 말이다. 탁 트인 공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담임과 독대했던 아까와 달리 숨쉬기가 묘하게 편했다.


“…….”


그러니까, 내 옆에 있는 누구만 아니었다면.


터벅터벅 걷다 말고 옆을 흘끔 보았다. 키 차이가 제법 났던 탓에 보이는 것이라곤 두툼한 가슴팍과 팔뚝 정도가 전부였다.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고 보폭을 바싹 맞춰 걷는 호랑이 하나. 등줄기 아래쪽에 달린 꼬리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구렁이처럼 꼬부라졌다.


한 학기 동안 녀석에게 나름 익숙해지기야 했다마는, 이렇게 단둘이서 있는 상황엔 또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어릴 때나 지금이나 녀석에겐 친구가 굉장히 많았고, 말주변도 재미도 없는 나는 항상 주변에 묻혀가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대화를 주도할 능력도, 그러할 의지도 내겐 없었다. 나는 다소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앞을 보았다. 왜 굳이 같이 돌아가야만 했던 걸까. 혼자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럼 서로 편했을 텐데. 녀석은 지금 당구장에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너는…….


“그게, 흠. 음. 그런데.”


속으로 읊조리던 내가 어깨를 움찔했다.


“교무실은 왜 갔어?”


그러다 헛기침까지 내뱉었다.


반쯤 잊고 있었던 불쾌한 경험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싱글벙글 웃던 대머리 담임. 말끝마다 붙는 차상위계층. 42만 4천 원. 제주도. 부모님 사인을 받았다니 어쩌니, 가고 싶으면 선생님이 추가로 지원을 해 줄 수 있니 어쩌니, 어쩌고저쩌고.


곧이곧대로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녀석 앞에서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호범네 아주머니가 우리 가게에 곧잘 온다는 사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숨기든 말든, 2학기가 되면 어머니가 필연적으로 수학여행의 존재를 알게 되리라는 사실까지도.


“아무것도?”


일단은 넘어가고 생각하자.


“별거 아냐.”


빠르게 내뱉고 나니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말투가 너무 날카로웠나, 싶었던 까닭이다. 불과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다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지.


“어, 음. 그래.”


막상 녀석은 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목을 가다듬은 내가 시선을 올렸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녀석은 손가락으로 코끝을 쓱쓱 문지르는 와중이었다. 털이 한 올 한 올씩 일어나기 시작하는 꼬리. 시선은 마치 딴청이라도 피우듯 내 반대편, 저 멀리로 떨어트린 채였다.


“그리고.”


공격적인 말투에 당황이라도 했나 싶었지만, 아니었음을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바, 방학 때 뭐 하냐?”


이어지는 녀석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

2526


추천 비추천

18

고정닉 11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타고난 드립력으로 사석에서 만나도 웃길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5/02/10 - -
3268573 온리제리콘 맘에 든다 [2] 아다요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0 51 0
3268572 오늘새벽은 유독 글이 없군 [2] 아기늑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0 39 0
3268570 햄부기북스딱스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5] 하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55 53 0
3268567 묵직레몬부랄쥐어짜서정자전부짜내기 [23] 야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49 82 0
3268561 겜 껐는데 이제 뭐하냐 [2] 아다요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34 56 0
3268560 아 생각해보니까 커피 마셨네 [4] 늑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32 60 0
3268557 대낮부터 뭐하는 짓이냐 [16] 시타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8 106 0
3268554 햄부기 먹고싶다 [3] 인트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3 35 0
3268548 요즘 새벽마다 겁나 우울하네 [11] 아기늑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8 93 0
3268546 남자는 훈도시만 입어도 돼. ㅇㅇ(118.235) 02:55 77 0
3268545 오 무슨 부랄하나가 계란만하네 [12] 야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2 156 0
3268543 커마 재밌다 [2] 아다요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1 62 0
3268540 조금만 더 안자고 기다리면 에펙 업뎃 해서 기다리는중…………… [7] 언양불고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5 56 0
3268538 부랄계란보다크신분 야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1 70 0
3268537 곰 그려왔음 [11] ㅋㄹㅌㅎ(220.71) 02:41 446 23
3268536 내 애정 갤러는 어딨지... 하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9 44 0
3268533 자기 싫다 [5] 늑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6 37 0
3268532 먹던 단백질 보충제가 가격 너무 뛰었는데 추천해주실분 [5] 곰곰히생각해본곰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34 46 0
3268530 내 애정 갤러는 지금 자겠지 [6] 아기늑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7 65 0
3268526 걍 겜 끄고 쳐자야하나 [2] 노브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9 55 0
3268524 깃털왁싱 정면으로 받다가 기절하는 꼬꼬수인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17 51 0
3268521 유부남보지가뭐이러노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9 96 0
3268520 자야되는데 잠이 안와.... [2] GTX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9 57 0
3268519 새벽은 광고에 잡아먹히는 시간이구나 [7] 빵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8 57 0
3268516 남자끼리 알몸으로 있으면 기분 좋을듯 [2] ㅇㅇ(118.235) 02:05 108 0
3268515 이기는법을까먹은새끼 [4] 노브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4 58 0
3268514 지금 생각나는 게 있음... [4] 사컨의지평선너머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1 58 0
3268513 저약간조현병온거같음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0 70 0
3268510 와이씨 누웠는데 잠 안 오는 거 머냐 사컨의지평선너머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6 31 0
3268509 나는저사람이될수없는걸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54 40 0
3268508 이번주 체인소맨도 맛잇구나 하아.. [1] ㅇㅋ(211.234) 01:54 69 0
3268503 하씨 머리 위로 넘어가서 벽지에 튀었네... [4] 사컨의지평선너머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43 61 0
3268500 퍼리그림 연습했던거 올림 [13] Tighnar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5 576 15
3268499 결말좆박아도완내기vs걍튀기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5 69 0
3268497 대만 씨발 다좋은데 [13] 스몰더남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4 115 0
3268496 뭔가 현타 옴 사컨의지평선너머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3 38 0
3268495 수인도 털을 깎는구나 [1] 냐스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1 61 0
3268494 꼴리는이름생각나는거없어서졸업앨범뒤적거리는중...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9 70 0
3268491 알몸에이프런비늘근육수인이 만들어준 하이라이스가 먹고싶구나. ㅇㅇ(119.204) 01:27 47 0
3268490 영원히 2월이 안 끝나면 좋겠다 [8] 타케모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7 71 0
3268488 개빡챠서 누웠어요 [1] 샤벳상어둥글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5 49 0
3268487 기분에따라서나는적을골라싸우는소년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4 31 0
3268486 자니? 잘 지내지? [6] 빵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3 52 0
3268484 남자들보고자섬... [4] 스트린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6 83 0
3268483 미칬다고 이 시간까지 안자는기가 [4] 암이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6 47 0
3268480 파충류는그리기넘어려운거삼 [3] H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2 78 0
3268478 딱 9만원만 게임에 질러도될까.... [2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9 71 0
3268475 ㄴ 화이트데이기념 페레로로쉐 10개 뿌린다네요 [4] 암이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4 58 0
3268474 엑부챠그렷슴 [12] H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4 499 28
3268472 모데엉아는수인 [4] CLOUDLESS32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1 54 0
뉴스 tvN편성표, ‘프리한19’부터 ‘유퀴즈’까지 예능·드라마로 시청자 공략 디시트렌드 02.1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