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일단은 넘어가고 생각하자.

“별거 아냐.”

빠르게 내뱉고 나니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말투가 너무 날카로웠나, 싶었던 까닭이다. 불과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다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지.

“어, 음. 그래.”

막상 녀석은 별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지만.

목을 가다듬은 내가 시선을 올렸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녀석은 손가락으로 코끝을 쓱쓱 문지르는 와중이었다. 털이 한 올 한 올씩 일어나기 시작하는 꼬리. 시선은 마치 딴청이라도 피우듯 내 반대편, 저 멀리로 떨어트린 채였다.

“그리고.”

공격적인 말투에 당황이라도 했나 싶었지만, 아니었음을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방학 때 뭐 할 거냐?”

이어지는 녀석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나는 눈만 껌뻑였다. 녀석의 저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방금처럼 말꼬를 트기 위해 아무렇게나 던져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인지. 태도나 표정을 보아하면 전자보다는 후자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조금 우습기도 했다. 다른 친구도 아니고, 내가 처한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최호범이 아니던가. 그런 녀석이 내가 방학에 무얼 할지도 유추하지 못한다니. 기껏해야 가게 구석에 처박혀 종일 감자나 깎을 텐데.

“글쎄?”

입술 바깥으로 꺼낼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깨를 으쓱한 내가 말을 이었다.

“딱히 생각해 둔 건 없는데.”

“그, 그래?”

최호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덤덤한 반응과 다르게, 양옆으로 접힌 짐승의 귀는 위쪽을 향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바탕에 흰 점이 찍힌 뒷면과 달리 앞면은 솜털로 부숭부숭했다. 하늘을 향해 쫑긋 솟아오른 꼴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안도감인지, 기대감인지. 어쩌면 둘 모두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다만 목을 부여잡고 헛기침을 내뱉어대는 최호범을 흘끔거리기나 할 뿐이었다. 미묘한 불안감을 머금은 채로.

그렇게 십여 초.

“어디, 음. 놀러갈 계획도 없고?”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물음이었다.

이번엔 조금 갑갑하기도 했다. 녀석은 과연 진심으로 이런 소리를 꺼내는 걸까. 방학을 맞이했답시고 하하 호호 놀러갈 계획을 짤 여유가 내게 있다고 믿는 걸까. 꾀죄죄한 시장 골목에서 비루하게 지내는 나에게. 입에 풀칠하면서 살기도 버거운 나에게.

아마 그렇겠지.

녀석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음을 알았기에 더욱 화가 났다. 이것이 결국엔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바라보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던 까닭이다. 줄곧 숨기고 싶었던 내 더러운 밑바닥을,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물음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투명하고 깨끗하게.

가난과 열등감, 그리고 분노에 찌든 자신을.

“……없지.”

나는 웃기나 했다.

최호범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또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할 따름이었다. 눈을 마주하지 않았음에도 녀석이 나를 흘끔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험악한 겉모습과 달리 서투르고 멋쩍고, 또 어수룩한 눈으로.

그러고도 또, 몇 초.

“나 방학에…… 경기 있는데.”

한참이나 어물쩍대던 녀석이, 드디어 본론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보러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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