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에 퇴근 하란다

뭔 일로 일찍 퇴근 시켜주나~

집에 가서 스팀게임 할 생각에 설렌다

요즘 게임 하나 제대로 꽂혀서 삼 주 째 퇴근하고 두 시간 씩 바치고 있다

오늘도 일하면서 하루 종일 딴 생각에 힘들었다

어디 맵부터 밀까

퍽 뭐부터 찍지? 갑옷 룩딸용 언제 나오려나

일하다 말고 틈틈이 공략 검색해 보고 행복했다

일찍 보내 주니까

가는 길에 거래처 사모님들 픽업 좀 하란다

그럼 그렇지.... 

스크린 골프 끝난 아지매들을 수거해서

술집에 버리고 가는 사이드 퀘스트다

메인퀘만 편식하면 안되니 후딱 깨고 집에 가야지....

퀘스트가 선행적으로 끝나면 재미가 없다

'XX대리님 집에 바로 가야해요? 금요일인데?'

= 나도 술 한 잔 하고 가라는 좆소어다

= 정확히는 우리 좀 재밌게 만들어 봐 라는 좆소어다

다른 데는 이런 일 상무가 해서 술상무라고 부른다던데

난 평생 상무 직함 달 일 없는 술대리다

게임 사수를 위해 술은 안 마시는 조건으로 합석했다

처음엔 아지매들 짓궂은 얘기도 재밌었다

내가 어디 가서 추파 맞을 와꾸도 아니고

또 언제 구멍 있는 브라자를 주제로 얘기 나눠보겠나

근데

이 씨ㅣㅣㅣㅣㅣㅣㅣㅣㅣ발 2시간 내내 천박한 대화 듣고 나니

표정 관리가 안됐다

스물 세 살 처음으로 인력소 나가

뭣도 모르고 일당으로

같이 일한 형님이랑 술 마시고 느꼈던 그 기분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어디까지 떨어졌길래 이러고 있지

이제는 가라고 눈치를 준다

거절도 안 했다

인사하고 빠져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표출되지 못한 분노가 머리와 입 안을 맴돌았다

집에 들어와 한 시간 째 의자에 앉아만 있다

무기력함을 느낀다

오늘 분명 게임 할 생각에 하루 종일 설렜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그냥

그냥